[현장] 2025 케이팝 러버스 클럽 취재기: 케이팝, 케이팝스러움, 그리고 케이팝하기


이소윤 | 시카고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2025년 3월 25일,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케이팝 러버스 클럽>이 명동 홈즈 레드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음악 컨텐츠 스타트업 ‘스페이스 오디티’와 A.C.E., 손호영, 포레스텔라 등이 소속되어 있는 ‘비트인터랙티브’가 공동 주관한 행사로,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케이팝 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자리가 되었다.

특히 이번 행사는 비트인터랙티브에서 새롭게 데뷔하는 남성 아이돌 그룹 ‘뉴비트(NEWBEAT)’의 데뷔를 축하하는 자리를 겸했고, 뉴비트를 탄생시킨 크리에이티브 팀과 음악 평론가 김윤하, 김영대가 함께 하는 토크 세션 및 풀밴드 라이브 공연 등으로 구성되어 장장 다섯 시간에 걸친 다층적인 케이팝의 논의의 장이 펼쳐졌다.

스페이스 오디티는 2017년 창립 이후 2019년 케이팝 팬들을 위한 플랫폼인 ‘블립’이나 팬덤 데이터 대시보드 ‘케이팝 레이더’ 등을 차례로 출시하며 케이팝 산업을 다각도로 조망하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케이팝 러버스 클럽>은 이러한 시도를 업계 관계자 간의 대화로 확장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했으며, 이는 케이팝 내부의 성찰적 움직임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가을에 열린 제 3회 <케이팝 러버스 클럽>에 연사로 참여한 인연을 계기로 이번 행사 또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이번 행사의 주요 의제 중 하나는 단연 ‘케이팝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물음이었다.

케이팝 역시 기획자, 프로듀서, 연습생, 팬, 평론가, 플랫폼 등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되고 재구성되는 문화적 실천이다. 그렇기에 ‘케이팝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케이팝의 예술계를 공고히 하는 사회적 의례이자, 그동안 당연시되었던 전제들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케이팝의 예술계를 흔들어 놓는 역설적인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기에서 학자가 해야 할 일은 인식적, 개념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논의를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명사, 대명사, 형용사, 그리고 동사라는 네 가지 언어적 차원을 통해 2025년 지금, 여기의 케이팝을 톺아본다.

명사와 대명사로서의 케이팝

‘케이팝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케이팝’이라는 단어가 국내외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줄곧 제기되어왔다. 케이팝이라는 단어 자체가 외국에서 유래한만큼, 이를 ‘아이돌 음악’과 동일시해야 하는지, 혹은 한국 대중음악 전반을 포괄하는 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두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여기에 더해, 기획사들이 글로벌 팬덤을 적극적으로 타겟팅하기 시작하면서 케이팝은 개념적 도전을 계속 받아왔다. 영어 등 외국어 가사의 비중이 높아졌고, 외국인 멤버를 포함시키거나 해외 팬싸인회·콘서트를 늘리는 등의 새로운 관행이 등장하면서, 명사로서의 케이팝은 점점 더 유동적으로 변해감과 동시에, 기존 범주 간의 위계를 더 극명히 드러내기도 한다.

예컨대, ‘케이팝’을 영어로 표기할 때 ‘Kpop’으로 쓸 것인가, ‘K-pop’으로 쓸 것인가의 문제는 단순한 스타일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정치적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영어에서 접두사와 접미사에는 하이픈(-)을 쓰지 않지만, ‘K-pop’이라는 표기는 ‘K’와 ‘pop’을 서로 동등한 수준의 개념으로 볼지, 아니면 ‘K’가 ‘pop’을 수식하는 방식으로 볼지를 묻는 기호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인식적 분리는 곧 ‘팝’과는 다른 ‘K,’ 즉 한국적인 것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케이팝과 한복, 한옥, 김치 등과 같은 전통 문화와의 연결성 또한 강조되었다. 사회학자 존 리(Jon Lie)는 저서 『K-pop: Popular Music, Cultural Amnesia, and Economic Innovation in South Korea』를 통해 이러한 경향 속에서 케이팝 속 ‘문화적 기억 상실(cultural amnesia)’을 지적하며, 근현대 한국 대중문화가 겪어온 세대적·문화적 단절을 짚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케이팝’은 과거의 연속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재구성과 편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팝은 고유 명사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그것이 의도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지난 수십 년간 끊임없는 인정 투쟁을 거쳐 왔으며, 이제는 21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대명사로 자리매김하였다. 국제 무대에서 케이팝은 한국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활용되며, 이제는 산업 내부에서도 스스로의 역사와 족적을 되돌아보며 리브랜딩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이콘,  경계에 서다

특히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SM 엔터테인먼트는 케이팝의 ‘근본’이자 대명사임을 자처하며, 매거진 B와 협업해 출간한 『The Culture, The Future』를 통해 지난 30년의 레거시를 정리하고, 창업자인 이수만이 빠진 SM 3.0 체제하에서도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산업을 이끌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이번 행사에서 스페이스 오디티 김홍기 대표와 차우진 평론가가 살펴본 <2024 케이팝 세계 지도>에서는 국내에서 인식하는 ‘케이팝’과 해외에서 인식하는 ‘케이팝’의 시차가 확연히 드러나며, 블랙핑크 멤버들의 활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2025년에도 BTS와 블랙핑크는 여전히 해외에서 케이팝의 대명사로서 인기를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보니, 두 그룹의 멤버들이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활동 범위를 넓히면서 발생하는 개념적인 문제라고도 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제니’라는 아티스트의 활동을 우리는 케이팝의 범주를 넓히는 시도로 볼 수 있을까? 아니면 기존의 팝의 문법을 따라가는 것으로 보아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경계인’으로서 존재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들을 굳이 분류하려는 시도 기저에는 결국 범주화를 통해 인식적 부담을 덜고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있다. 이와 더불어 플랫폼 중심의 문화 환경에서는 이러한 범주화가 곧 특정 아티스트나 장르의 가시성(visibility)과 수익성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례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구조적 이해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형용사로서의 케이팝

이번 케이팝 러버스 클럽 행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었던 ‘뉴비트(NEWBEAT)’의 라이브 공연과, 그들의 탄생 과정을 다룬 여러 토크 세션을 필자는 ‘생산과 생산자에 대한 정보 비공개’라는 기존의 산업 관행에 도전하는 시도로 읽는다.

특히 에스파의 "아마겟돈" 등 다수의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연출해온 ‘리전드 필름’의 윤승림 감독이 뉴비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녀는 그동안 뮤직비디오에 제작자 크레딧 삽입 등을 통해 제작자들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으며, 이번 토크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식을 분명히 드러냈다.

토크 세션에서는 획일화된 데뷔 마케팅과 쇼케이스라는 기존 산업 관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고민들 또한 공유되었다. 1인 기획사로 시작해 지금의 비트인터랙티브를 일군 김혜임 대표 역시 중소 기획사로서의 현실적인 한계를 언급하며, “남들이 굳이 하지 않는 것까지 해야 한다”라는 각오로 뉴비트의 프리 데뷔 마케팅을 위해 미국 주요 도시에서 버스킹 투어를 진행하였음을 밝혔다.

이처럼 대형 기획사가 주도하는 산업 구조라는 전제를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케이팝 산업을 각기 다른 규모와 자원을 가진 기획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실험하고 도전하는 장(場)으로 바꾸려는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김혜임 대표의 토크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자본, 인력의 한계를 상징하며 일종의 ‘멸칭’으로 쓰여온 ‘중소기획사’라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스타트업의 기동성과 신선함이라는 긍정적인 프레임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고민이 엿보였다.

새로운 진입점

비슷한 방식으로 일본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한국 신인 아이돌들을 지원하는 플랫폼도 존재한다. 이정민 대표가 설립한 FC LIVE는 도쿄와 오사카에 자체 공연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 아이돌이 일본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작년 3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정민 대표는 일본 음악시장은 신인 아티스트가 소극장 공연을 기반으로 팬층을 넓혀가는 '풀뿌리' 방식의 성장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FC LIVE는 이와 같은 문화를 기반으로 매일 공연을 운영하며 한국 아이돌의 일본 진출을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연 외에도 음반 제작, 팬클럽 사이트 운영, 티켓 및 굿즈 판매까지 전방위적인 현지화를 지원하며, 공연장 대관이 어려운 일본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도쿄와 오사카에 총 세 개의 전용 라이브 공연장을 마련해 운영 중이며, 앞으로 일본의 Zepp 공연장에 비견되는 공연장 인프라를 일구겠다는 포부 또한 밝혔다. FC LIVE의 사례는 소규모 아티스트가 장기적으로 팬덤을 확장해나갈 수 있는 경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제 '케이팝스러움'이라는 개념은 팬덤 안에서는 특정한 미학적 카테고리로, 산업 안에서는 아이돌을 기획하고, 생산하며, 유통하고, 마케팅하는 일련의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런 맥락에서 스페이스 오디티, 비트인터랙티브, 그리고 FC LIVE와 같은 사례들은 모두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산업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들은 대형 기획사의 자본력이나 방송 플랫폼의 영향력에 기대지 않고도, 각자의 방식으로 케이팝을 재정의하고 확장해 나가고 있으며, 이는 케이팝이 형용사로 기능하는 방식, 즉, 하나의 산업적 규범이나 미학으로 작동하는 문화적 형식의 지형이 다양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형용사로서의 케이팝’은 단순한 감각적 취향을 넘어, 산업 전반을 조직화하고 규범화하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실험적 시도들이 케이팝의 경계를 흔들고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가 기대된다.

비트인터랙티브에서 새롭게 데뷔하는 남성 아이돌 그룹 ‘뉴비트(NEWBEAT)’
SM엔터테인먼트가 창립30주년을 맞아 매거진 B와 협업해 출간한 『The Culture, The Future』
‘제니’라는 아티스트의 활동을 우리는 케이팝의 범주를 넓히는 시도로 볼 수 있을까? 아니면 기존의 팝의 문법을 따라가는 것으로 보아야 할까?

동사로서의 케이팝

음악 인류학자 김정원은 저서 『음악 인류학자의 케이팝하기』에서 음악학자 크리스토퍼 스몰(Christopher Small)의 ‘음악하기(musicking)’ 개념을 차용해 ‘케이팝하기’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케이팝을 단순히 소비하는 대상이 아닌,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수행하는 일련의 문화적 실천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흔히 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음악이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진화하였다고 이야기한다. 안무와 비주얼, 노래의 조화가 중심이 되었던 지금까지의 케이팝을 보는 음악의 정점이자 종합 예술로 규정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케이팝은 굿즈, 팬덤 마케팅, 밈을 비롯한 2차 창작물 생산 등을 아우르는 공감각적 음악으로 나아가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업계 관계자와 나눈 인터뷰에서도 팬 마케팅과 관련된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의 중심이 A&R을 필두로 한 앨범 기획에서 마케터, 팬 마케터를 필두로 한 호소력 (또는 ‘소구력’) 증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5년의 케이팝은 이제 명사, 대명사, 형용사 중 어느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이 모든 차원을 포괄하는 복합적인 문화적 실천이자 정동적 경험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케이팝스러움"은 단지 스타일이나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하고 수행해내는 동사적 실천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물론, 수용자의 위치성에 따라 상술한 차원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이견은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경계 위의 케이팝

최근 케이팝 곡들의 높은 영어 가사 비중을 두고 “케이팝의 정체성을 흐린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는 미학적 판단일까, 윤리적 판단일까? 만약 이가 ‘케이팝’과 ‘비-케이팝’을 가르는 문제가 아니라, ‘좋은 케이팝’과 ‘나쁜 케이팝’을 구분하려는 윤리적 선별이라면, 우리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도 함께 질문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청소년 여성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MBN "언더 피프틴"이 방송 직전 편성 취소된 사건은, 케이팝을 둘러싼 윤리적 판단과 사회적 감수성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당 프로그램은 15세 이하 참가자들이 출연해 데뷔 경쟁을 벌인다는 기획 의도로 인해 방송 전부터 아동 보호와 성상품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고, 결국 방영을 앞두고 프로그램이 무산되었다. 이 사건은 오늘날 케이팝의 제작과 소비를 둘러싼 윤리적 책임과 사회적 요구가 점점 더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제시한 ‘이념형(ideal type)’ 개념을 빌리자면, 오늘날 케이팝은 생산자 및 수용자들이 수십년간 축적해온 기억과 경험을 통해 내면화한 하나의 규범적 형태, 즉 이상적인 이미지로 작동하고 있다. 이념형이란, 현실 세계에서 그대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복잡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비교하기 위해 구성한 개념적 도구로, 현실의 다양한 사례들은 이 이념형에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즉, 이념형으로서의 케이팝은 ‘실제’ 케이팝이기보다는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의 기준점이며, 그에 따라 어떤 콘텐츠는 더 ‘케이팝스러움’에 가깝다고 판단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념형으로부터 파생된 ‘케이팝하기’의 실천은 점차 음악을 넘어서 뷰티, 패션, 음식, 그리고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앞으로의 케이팝이 어떤 모습일지 완벽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에 대해 끊임없이 발화하고 질문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끝)

작성일: 2025년 4월 7일

글쓴이 이소윤은 듀크 대학교 정치학 학사, 시카고 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를 거쳐 현재 시카고 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5년부터 미국에서 유학하며 한류의 성장을 관찰해 왔고, 케이팝 산업 속 직업 교육과 일 경험에 대한 박사 논문 연구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