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한국 사회 '긁은' 대치맘과 판교 사투리: '민첩' 하기보다는 '애자일(agile)' 한 사회의 유머
이소윤 | 시카고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2025년 5월 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코미디언 이수지가 여자예능상을 수상했다.
2008년 SBS 공채 10기로 데뷔한 이수지는 개그 프로그램 <웃찾사>의 폐지 이후, 2012년 KBS 공채 27기로 <개그콘서트>에 합류해 코미디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조선족 보이스 팀장 ‘린자오밍’ 캐릭터를 통해서였는데, 이후에도 뛰어난 관찰력과 연기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인기를 쌓아왔다.
그런 그녀가 화제의 중심에 선 계기는 올해 초, 본인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 업로드한 한 영상 덕분이었다. 영상의 제목은 ‘[휴먼다큐 자식이 좋다] EP.01 ‘엄마라는 이름으로’ Jamie맘 이소담 씨의 별난 하루(20250204 방송)‘로, 2025년 5월 말 기준 약 870만 뷰를 달성한 상황이다.
대치맘 긁은 이수지
이 영상 속에서 이수지는 대한민국 사교육의 상징, 대치동의 ‘열혈맘’으로 변신해 옷차림, 말투, 라이프스타일까지 완벽하게 재현하며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수지가 가상의 자녀 ‘제이미(Jamie)’의 학원 픽업, 과외 선생님 면담 등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모습,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말투 등을 세밀하게 고증한 것에 대해 시청자들은 ‘실제로 자신이 알고 있는 대치동 학부모와 똑같다,’ ‘디테일이 대단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수지가 ‘대치맘’의 옷차림을 재현하기 위해 영상에 입고 나온 몽클레어 패딩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입혀졌고, 영상이 화제가 된 후 중고 거래 플랫폼에 저렴한 가격의 매물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즉, 영상의 파급력이 온라인을 넘어 현실에서도 나타나면서, 패러디의 대상이 된 사회적 집단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유튜브 시청에서 1분 이내의 쇼츠가 중심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10분을 넘어가는 영상이 이 정도의 관심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에 더해 ‘긁?’ 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짧고 빠른 도발과 탐색의 교환이 인터넷 문화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이수지의 대치맘 패러디 영상은 비교적 긴 호흡으로 기획된 묵직한 유머의 힘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수지의 영상은 우리에게 웃음 이외에도 생각할 거리를 여러 가지 제공한다.
이 글에서는 입시 문화와 문화 자본으로서의 영어가 한국 컨텐츠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를 짚어 본다.
학원물의 역사
그동안 한국의 교육열과 입시 문화를 다루는 컨텐츠는 많았다. 국민 화제작이었던 JTBC의 <스카이 캐슬>부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7세 고시’를 다룬 ENA 채널의 <라이딩 인생>까지. 물론 한국형 로맨스 코미디 요소를 버무려낸 정경호, 전도연 주연의 <일타 스캔들>이나 위하준, 정려원 주연의 <졸업> 같은 드라마들도 있었지만, 한국의 학원물은 넷플릭스의 등장과 함께 점점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로 진화해 왔다.
최근 씨네 21에서 낸 기획기사 ‘한국 학원물에는 왜 평범한 학생이 사라졌나’에서도 폭력, 계급, 그리고 생존이 주가 되는 한국 학원물의 트렌드를 지적하고 있다. 학교 내에는 ‘먹이 사슬’이 존재하고, 학생들은 부모의 계급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포식자 또는 피식자로서만 존재하며 생존을 위해서라면 성매매, 마약 거래 등 범법 행위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학생들은 계급적 갈등에 짓눌리거나, 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납작해진다. 이 속에서 학생 개개인의 정체성 탐색이나 명문대로 대표되는 제도권 교육 바깥의 진로 모색에 대한 내용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물론 이수지의 대치맘 패러디 영상도 그 주제 의식에 있어서는 기존의 학원물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수지의 경우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계급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아이가 배변 훈련에 성공했다며 배변 훈련 과외 선생님 등록을 취소해야겠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이나 제기차기라는 영역에서까지 과외를 구하는 모습은 교육의 신자유주의화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의 모습을 자극적이기보다는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이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이수지의 대치맘 영상 속 구현되는 문제 의식은 조선시대 탈춤의 그것과 닮아 있지 않나 싶다. 가장 잘 알려진 탈춤 중 하나인 <봉산탈춤>의 경우 조선 후기 양반 중심의 신분제 사회가 해체되면서 가장 활성화되었고, 서민이 양반 계층의 허위 의식과 무식함을 폭로하며 민중 의식을 고취하는 중요한 예술적 창구로서 작용하였다.
비록 이수지의 영상은 대치동, 사교육, 입시 문화 같은 한국적인 문화 코드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며, 해외 시청자를 염두에 둔 컨텐츠는 아니기에 국내에서 주로 화제가 되었지만,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한국 특유의 해학과 풍자가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방증한 바 있다. 최근에는 탈춤 또한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2022년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한국의 탈춤이 보편적 평등의 가치, 신분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가진다고 평하면서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강남스타일, 기생충, 대치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우스꽝스러운 말춤, 슬랩스틱 코미디, 그리고 B급 감성으로 무장했지만 그 본질은 강남에 대한 애증과 비판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곡이다. <강남 스타일>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싸이는 검은색 선글라스와 수트, 그리고 명품으로 치장한 ‘강남 오빠’ 스타일을 과장되게 연기하며 스스로가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 싸이 본인이 바로 전형적인 ‘강남 스타일’의 삶을 살아왔지만, 가요계에서는 엽기 코드를 내세우며 비주류의 길을 택해 왔다는 점에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풍자와 해학의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는 텍스트로 이해해볼 수 있겠다.
한편 <기생충> 속에서 사모님 ‘연교’ (조여정 분)의 말투나 ‘기정’ (박소담 분)의 학력 위조에 너무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모습 등은 상류층의 위선과 무식을 드러낸다. 또한 <기생충>에서는 냄새나 공간의 수직적 배치 등 여러 요소를 통해 미묘한 계급적 정체성과 갈등을 날카롭게 연출하며, 다른 계급의 공존이라는 문제를 숙주-기생충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봉준호의 <기생충>, 그리고 이수지의 대치맘 패러디가 공통적으로 주는 시사점은 결국 웃음 창출을 위해 특정 집단과 거리를 두더라도, 화해나 공존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완벽하게 배타적인 거리두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비판에서 끝나지 않고, 갈등의 화해와 조정의 국면을 보여 주어 ‘화해’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탈춤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AI의 출현과 인구 감소, 후기 산업화라는 변화 속에서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지탱해온 “고학력 = 성공” 이라는 공식은 깨져 가고 있다. 최근 의대 증원 관련 논란 등으로 인해 엘리트층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커져 가고 있고, 계엄 사태 이후 대한민국은 양극화의 양상이 더욱 심화되는 모습이다.
이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수지의 영상은 여성 코미디언이 제작하고, 전사회적인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기존 한국의 남성 중심 코미디 문화에 대한 저항도 겸한다고 본다. 다만, 입시 교육과 학력 사회라는 구조가 아닌, 그 구조를 재생산하는 가해자이자 그 구조의 피해자인 ‘대치맘’의 재현을 통한 풍자라는 점에서는 한계를 가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영어라는 '계급'
한국에는 영어 교육 광풍이 30년째 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아이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부인과 아이들을 영어권 국가에 보내고 혼자 한국에 남아 뒷바라지를 하는 ‘기러기 아빠’부터 한국어에 대응되는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단어를 영어나 외국어로 대체하는 의류 업계 특유의 ‘보그체’까지 한국의 사회와 언어 곳곳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서울의 3대 업무 권역인 강남, 종로/광화문, 그리고 여의도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외국어 학원들이 들어서 있고, 직장인들은 자기 계발, 이직 등을 목표로 퇴근 후나 주말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학원으로 향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만 5-6세의 어린 아이들이 대치동 소재의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일명 ‘7세 고시’를 비롯해 영어 유치원 광풍까지 부는 등, 전 연령대에 걸쳐 영어 교육열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IT 스타트업 기업들이 몰려 있는 판교테크노밸리에서는 소위 ‘판교 사투리’라고 하는 말투가 등장했다. ‘보그체’의 IT 업계 버전인 셈이다. 물론 IT 업계의 전문 용어 대다수가 영어인 것도 있지만, 민첩하게 대신 애자일 (agile), 가능한 한 빨리 대신 asap (as soon as possible), 문제 대신 이슈 (issue)처럼 한국어에 충분히 대응되는 단어가 있는데도, 굳이 영어를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업계 은어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 사원이나 취업준비생을 위한 ‘판교어 사투리 사전’까지도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영어는 단순한 외국어를 넘어, 사회적 계층과 교육적 열망, 경제적 격차를 상징하는 문화자본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영어가 한국어와 혼용될 때에 드러나는 계급적 정체성과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상당히 복합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이다.
이수지의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 보면 ‘있어 보이기 위한’ 한국어-영어 혼용은 오히려 발화자를 ‘없어 보이게’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앞서 언급한 보그체나 판교 사투리 또한 주로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며, 과도한 사대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영어에 조금 더 익숙한 젊은 세대의 경우, 한국어-영어의 혼용을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패턴도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약 28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살아라! 콸콸이에서는 앞서 언급한 판교 사투리를 K-pop 아이돌 문화와 접목해 ‘판교 사투리 아이돌’이라는 컨텐츠를 제작했다. ‘Office Love’라는 가상의 곡 속에 ‘이슈 해결 완료 바로 Merge해’, ‘너와 나 애자일하게 Forever,’ ‘슬랙 말고 지금 바로 call,’ 등 판교 사투리를 절묘하게 녹여낸 재치 있는 가사로 시청자들에게 신선함과 공감을 제공했다.
‘대기업 전무의 바쁜 일상과 사내연애를 감각적으로 담아낸 곡. 판교 전문용어를 활용한 리드미컬한 랩이 묵직한 신스 리프와 조화를 이룬다’라는 곡 소개와 마치 음악 방송을 연상케 하는 편집 또한 영상에 재미와 사실감을 더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했다.
또 하나의 예로는 최근 하나투어에서 업로드한 ‘무해한 여행’ 쿼카편을 들 수 있겠다. 이 영상은 호주에 서식하는 동물인 ‘쿼카’의 다양한 모습을 브이로그 형태로 담아냈고, 특히 저음의 원어민 성우가 영어와 한국어, 콩글리쉬가 뒤섞인 내레이션을 하며 기존 여행사 홍보 영상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했다. 시청자들은 내레이션을 모방해 비슷한 한영혼용체로 댓글을 달기 시작했고, 댓글란은 하나의 거대한 놀이터로 변모했다.
유머의 사회적 역할
다수의 연구가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유머가 다수의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유머는 약자와 강자 모두에게 무기가 될 수 있다. 그 무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각성이 필요하다. 특히나 한류 콘텐츠가 국제적인 위상을 가지게 된 지금, 웃음의 대상과 웃음을 창출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 번호마저 +82 (빨리) 인, “애자일”한 대한민국에 느린 호흡의 유머가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수지를 비롯해 유튜브를 무대로 활동하는 코미디언, 그리고 한국인에게 아직은 좀 낯설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은 우리에게 이미 길을 보여주고 있다. 웃음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그들의 유머에 마음껏 웃고 호응해주자. 사회 개혁의 실마리는 의외로 유머에 있을지도 모른다. (끝)
작성일: 2025년 6월 5일
글쓴이 이소윤은 듀크 대학교 정치학 학사, 시카고 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를 거쳐 현재 시카고 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5년부터 미국에서 유학하며 한류의 성장을 관찰해 왔고, 케이팝 산업 속 직업 교육과 일 경험에 대한 박사 논문 연구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