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 "케이팝 산업의 위기는 어디서 오는가?" ... 하이브와 어도어 사태를 통해 본 ‘業(업)’으로서의 케이팝

이소윤 | 시카고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장장 반년에 걸쳐 진행되어 온 하이브와 어도어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9월 10일 어도어와 여러 차례 협업해 온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은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현 어도어 경영진의 거짓말 및 협박을 폭로하며 법정 공방을 예고했고, 그다음 날인 11일 뉴진스 멤버들은 직접 준비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본인들의 처지를 소명하며 민희진 전 대표의 복귀를 요구했다.

악화일로(惡化一路)

민희진의 첫 기자회견이 있었던 4월 25일을 기점으로 이 사태는 케이팝의 영역에 한정된 사내 정치나 이권 다툼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논의로 번졌다. 이 사태 속에는 젠더 갈등, 경영진과 실무진의 갈등, 세대 갈등, 특정 취향 공동체와 일반 대중 간의 갈등 등 한국 사회가 현재 직면한 수많은 갈등의 양상이 혼재되어 있다. 이 가운데 어떠한 갈등을 핵심으로 보는가에 따라 국내외 대중은 이 사태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고, 새로운 사실과 사건이 추가됨에 따라 입장을 재정의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논의를 생산하고 있다.

뉴진스 멤버들의 라이브를 본 국내 대중의 주된 반응은 다음의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 모양새다. 하나는 뉴진스 멤버들의 ‘미성숙함’을 안타까워하며 그들이 악수를 두었다거나 ‘주제넘은’ 행동을 했다는 평이다.

다른 하나는 전속계약을 비롯한 아이돌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조직으로부터의 자력 이탈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들이 ‘항의’를 택한 것에 깊이 공감하며 이를 지지한다는 평이다. 어딘가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나는 뉴진스 멤버들의 라이브가 배드민턴 협회의 부조리를 폭로한 안세영 선수의 기자회견과 너무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세영과 뉴진스

학계에 몸담고 있는 청년 여성인 나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자 한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사회학도다. 케이팝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쓰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공언했을 때 나는 왜 이 연구를 한국인 여성인 내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나 한국학과가 아닌 사회학과에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받았다.

이는 여전히 서구 중심적인 사회학의 장르적 관습에 도전하는 행위였고, 문화 연구의 영역에서 아직도 인문학은 텍스트와 그 수용을, 사회과학은 텍스트의 생산을 포함한 사회적 맥락 (컨텍스트)을 연구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인식이 강한 미국의 학계 분위기에 반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원래 하던 포퓰리즘과 도시화에 대한 연구를 편안하게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내가 하고자 하는 케이팝 연구의 사회학적 정당성을 입증할 것인지. 나는 후자를 택했다. 이건 피할 수 없는 ‘내 싸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뉴진스 멤버들이 이 사태를 ‘본인들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입장에서 목소리를 냈다고 본다. ‘악수(惡手)’여도 둘 수밖에 없는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민희진의 기자 회견과 뉴진스의 라이브에서 낭만을 느낀 이유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나는 하이브와 어도어 사태가 하이브의 주가 하락이나 뉴진스라는 "슈퍼IP(지적재산권)"의 불투명한 미래 같은 단기적인 손해를 떠나 케이팝 산업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를 논하고 싶다.

뉴진스 맴버 5명이 9월 11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4월 25일 있었던 민희진 전 대표의 첫 기자회견 장면
뉴진스는 특히 케이팝 여성 소비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피해갈 수 없는(inevitable)"

필자는 지난 해부터 한국의 대중음악 산업 취업 준비생들에게 A&R (아티스트 & 레퍼토리), 마케팅, 신인개발, 공연기획 등 특정 직무에 대한 실무 교육 및 취업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러 학원에서 수업을 직접 듣고, 학생들의 취업 스터디에 참여하고, 아이돌 앨범 가상 기획안을 쓰는 등의 다양한 현장 조사를 통해 케이팝 산업 속 직업 교육과 일 경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취준생’들은 어떻게 보면 케이팝 산업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 중 일부가 케이팝 산업의 노동 인력으로 진입하고, 궁극적으로는 케이팝 산업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이기에 나는 그들의 삶과 생각, 그리고 특히 케이팝 산업에 대한 태도에 주목해 왔다.

여러 학원의 운영자, 강사진 및 수강생들의 활동을 관찰하고 또 그들을 인터뷰한 결과, 한 가지 일관된 발견은 어느 곳이나 여성 수강생의 비율이 약 90%로, 정말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여러 작사가 학원의 경우도 학원에서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하는 수강생들의 인터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여성 수강생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 과정에서 나는 간호사 같은 전문직, 공무원, 출판이나 공연 등 다른 문화예술 계통 쪽 직업에 종사하다 온 분들도 심심찮게 만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그분들에게서 나는 한국의 관료제와 조직 생활에 대한 환멸과 동시에 자아실현과 (적지만) 고정된 수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케이팝의 기획사 시스템 속에서 잡고자 하는 2030 청년 여성의 ‘코리안 드림’을 본다.

여성들의 '코리안 드림'

이 코리안 드림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취준생들을 인터뷰할 때 그들의 입사 희망 회사와 롤모델을 물어보면 높은 확률로 JYP와 민희진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JYP가 올해 상반기에 엔터사 중 유일하게 ESG 평가 A등급을 받은 회사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다. 민희진 역시 그녀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강력한 여성 롤모델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놀랍지 않다.

이에 더해 내가 여러 학원에서 만난 케이팝 기획사 취업을 희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준생이기 이전에 케이팝의 팬이다. 그들은 민희진이 프로듀싱에 깊게 관여했던 SM 엔터테인먼트의 2~3세대 아이돌을 누구보다 깊게 향유한 사람들이며, 그들의 팬심은 케이팝 산업 속 직무에 대한 관심, 때로는 일종의 소명 의식으로 전환되며 그들을 취업 준비의 길로 이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이브와 어도어 사태는 강 건너의 불이 아니다. 아무리 대형 아티스트가 소속되어 있더라도, 실무진과 창작자, 그리고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이 없는 회사에서 박봉과 고강도 노동, 그리고 잦은 ‘현타’를 무릅쓰고 장기근속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는 하이브뿐 아니라 높은 이직률과 경력직 품귀 현상이라는 공통의 문제를 겪고 있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케이팝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그곳에서 아이돌로든, 제작자로든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몇 년 사이 케이팝 산업의 위기론도 꾸준히 대두되어 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케이팝 산업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더 강력한 마케팅 전략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지배 구조와 조직 문화를 개선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감 없이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과 지속 가능한 동반 성장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끝)


작성일: 2024년 9월 17일

글쓴이 이소윤(So Yoon Lee)은 케이팝, 도시화, 포퓰리즘을 중심으로 아시아 신자유주의의 사회문화적 함의를 연구하는 시카고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학생으로, 케이팝 산업의 역학과 생산에 대한 분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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