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몸집 커진 케이팝(K-pop)의 새로운 도전: 현지화 그룹의 부상과 그 의미
하 지 수 | 위드온 뉴스
케이팝이 글로벌 음악 산업의 주요 장르로 자리 잡은 가운데, '현지화 아이돌 그룹'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주목 받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데뷔한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는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사례다. 하이브와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합작사가 선보인 캣츠아이는 다국적, 다인종, 다민족 그룹으로 케이팝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거쳐 탄생했다. 캣츠아이는 미국과 필리핀, 스위스 및 이탈리아 복수국적, 한국 국적을 지닌 멤버들로 구성되었다. 멤버들 중 절반이 영어 원어민이며, 미국에서 거주하고 활동한다.
캣츠아이의 등장은 케이팝 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아침 프로그램 "GMA"에서의 라이브 무대부터 한국 음악 방송 출연까지, 이들의 행보는 케이팝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SNS에서 화제가 된 외국인 멤버들의 챌린지와 직캠 영상은 케이팝 팬들에게 신선함과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것이 과연 케이팝인가?"라는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인 멤버가 단 한 명뿐이고 주로 영어로 노래하는 그룹을 케이팝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케이팝 그룹은 대체로 한국인 멤버가 주축이 되고 일부 외국인 멤버가 가세하는 형태였다. 캣츠아이는 이러한 기존의 공식을 뒤집었다.
케이팝 그룹 변천사
이러한 변화는 케이팝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케이팝이 단순히 '한국의 팝'이라는 지리적 개념을 넘어 하나의 독립된 음악 장르로 진화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케이팝의 본질적 요소가 희석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이는 단순한 선호의 문제를 넘어, 케이팝의 글로벌 전략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중요한 담론이 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케이팝 그룹 내 외국인 멤버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케이팝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각 세대 별로 특징적인 양상을 보여왔다.
케이팝 1세대에서는 한국계 외국인, 즉 교포 출신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H.O.T.의 토니안, god(지오디)의 박준형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랩 실력으로 당시 아이돌이 추구하던 세련된 느낌과 글로벌한 감각을 냈다. 케이팝 2세대에서는 진짜 외국인들이 영입되었는데, 중국계 캐나다인인 슈퍼주니어 헨리, 태국인인 2PM 닉쿤이 있었다. 이들은 ‘외국인’으로서의 상징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일본이나 미국, 태국 활동을 할 때 언어를 통역해주고 글로벌 팬덤과의 가교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3세대 그룹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으며, 블랙핑크 리사와 트와이스 미나, 사나, 모모 등 이들이 속한 그룹은 현지에서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한국인이 전혀 없는 케이팝 그룹, 즉 완전한 현지화 그룹이 등장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는 케이팝의 진화 과정에서 가장 급진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케이팝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획사별 현지화 전략
각 기획사의 현지화 전략은 케이팝의 글로벌 확장을 위한 핵심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하이브는 미국 시장을 겨냥해 '하이브×게펜 레코드'를 설립하고 캣츠아이를 선보이며 적극적인 현지화에 나섰다. 이들은 케이팝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미국에 이식하여 현지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일본 시장에 특화된 니쥬(NiziU)를 데뷔시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니쥬는 일본 현지에서 멤버를 선발하고 트레이닝하여 데뷔시킨 그룹으로, 일본 문화와 케이팝의 특징을 적절히 융합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JYP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과 중국 등 다른 주요 시장에서도 현지화 그룹을 론칭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NCT 시스템을 통해 독특한 현지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NCT는 다양한 국적의 멤버들로 구성된 여러 개의 유닛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유닛은 특정 지역을 타겟으로 활동한다.
케이팝 산업의 현지화 전략 채택 배경에는 뚜렷한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1억장 시대'라는 성과를 달성했지만, 이는 소수 열성 팬들의 집중 구매에 크게 의존한 결과다. 동시에 '라이트 팬' 부족과 신규 팬 유입 난항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동남아시아 등 주요 시장에서의 음반 수출 감소 추세다.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의 위상도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6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단 한 팀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고, 빌보드 어워드는 케이팝 부문을 별도로 신설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과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CCO 등 업계 리더들은 현지화 전략을 새로운 돌파구로 제시했다. 이는 케이팝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현지화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팬 층을 개척하고, 케이팝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체성 유지 딜레마
확장성을 넓히기 위한 각 기획사의 전략은 케이팝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지만, 동시에 케이팝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기획사들은 현지 문화와 케이팝의 특징을 어떻게 조화롭게 융합할 것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케이팝 산업의 현지화 전략은 양날의 검과 같다. 새로운 시장 개척과 팬층 확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정체성 희석이라는 위험도 안고 있다. 특히 케이팝이 가진 본질적인 매력과 가치를 잃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케이팝의 세계적 성공 요인은 완벽한 퍼포먼스, 장르 융합적 음악, 멤버들의 매력적인 외모, 그리고 엄격한 트레이닝 시스템에 있다. 대형 기획사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실력파'와 '독기' 있는 아이돌을 양성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왔다. 서바이벌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돌의 실력과 경쟁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데뷔 전부터 팬들의 관심을 끌고 신뢰를 쌓는 전략을 구사했다. 예를 들어, YG의 신인 걸그룹 '베이비 몬스터'는 각 멤버의 오랜 연습 기간과 치열한 경쟁 과정을 공개하며 '실력파'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최근 데뷔한 현지화 그룹들은 이러한 케이팝의 전통적 강점에서 다소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JYP의 '니쥬'는 글로벌 오디션 프로젝트를 통해 선발되었지만, 단 6개월간의 짧은 트레이닝 기간을 거쳤다. 대부분의 멤버가 전문적 트레이닝 경험이 없는 일반인 출신이었기에, 기존 케이팝 그룹에 비해 실력 면에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데뷔 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음악방송에 출연했지만, 여전히 기존 케이팝 그룹들과 동등한 수준의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초기의 성과에 비해 앨범 판매량과 유튜브 조회수가 감소하는 등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케이팝'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의 트레이닝 시스템이 각 나라에 이식된다고 해도, 연습생 선발과 트레이닝 방식의 차이로 인해 기존 케이팝과의 괴리감이 느껴진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국내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그룹들이 케이팝의 이미지를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팬들은 현지화 그룹들의 영상에 '케이팝이 아니다'라는 댓글을 달며 구분 짓기에 나서고 있다. 이는 케이팝의 글로벌화 전략과 정체성 유지 사이의 균형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케이팝의 본질적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세계 시장에 적응하는 방법, 그리고 케이팝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에 대한 업계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지화 전략이 케이팝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케이팝의 핵심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케이팝 산업은 글로벌 시장 공략과 품질 유지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현지화(Localisation), 필요한가?
현지화 전략을 통해 탄생한 케이팝 그룹들은 아시아 시장을 넘어선 글로벌 무대에서 아직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 시장에서는 현지인으로 구성된 케이팝 스타일 그룹들이 정체성의 모호함으로 인해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는 현지화 전략의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케이팝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과연 케이팝은 단순히 한국인이 만드는 음악인가, 아니면 특정한 스타일과 시스템을 지칭하는 것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BTS의 성공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BTS가 북미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기존의 케이팝 현지화 전략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 때문이었다. 그들은 '제조된 아이돌'이라는 케이팝의 고정관념을 깨고, 진정성 있는 음악과 메시지로 팬들과 소통했다. 이는 해외 팬들이 케이팝에 대해 가졌던 불편한 시선을 해소하고, 독특한 매력으로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BTS의 사례는 현지화가 케이팝의 모든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아님을 보여준다.
더불어 ITZY가 일본에서 한국의 콘셉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성공을 거둔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한국 걸그룹들은 일본 진출시 귀여운 이미지를 강조하는 콘셉트로 컴백하고는 했다. 그러나 ITZY의 일본 첫 싱글앨범에서는 틴크러쉬 콘셉트와 통통 튀는 비트를 유지하고, 이는 오히려 일본 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일으켰다.
이는 케이팝의 본질적 매력이 단순히 현지화된 버전이 아닌, 그 고유의 특성에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케이팝 업계는 현지화 전략을 추진하면서도, 동시에 케이팝만의 독특한 매력과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끝)
작성일: 2024년 9월 22일
저자소개: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문화콘텐츠 크리에이터이다. 매체 '위드온 뉴스'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