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디지털 원주민'으로 전락한 오늘날 10대 청소년, 그리고 폭력의 순환 : 넷플릭스 최신작 '소년의 시간(ADOLESCENCE)'
홍지영 | 남네바다 주립대학교(CSN) 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고작 13살.
아이도 어른도 아닌 사이에 걸친 미묘한 시기의 '제이미'는 체구가 왜소하고 조용한 소년이었다. 그는 무뚝뚝하지만 남성다움의 표상인 아버지를 유독 따르고 갈망했다. 이런 아버지 역시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를 이해하고 나름 극복하려 노력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조용하게 받아들이는 것 처럼 보이는 아이가 실제로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 어른들이 성장했던 환경과지금 아이들이 자라는 디지털 세계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드라마의 4개 에피소드를 시청하는 내내 깊이 몰입했다. 이렇게 마음을 무겁고 복잡하게 만든 드라마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프랑스의 영화학자 앙드레바쟁이 『영화란무엇인가』에서 주장했듯, 롱테이크는 현실을 왜곡없이 보여주는유일한 방법이다.
이 시리즈가 한시간짜리 에피소드 4개를 모두 롱테이크로 촬영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치 우리에게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제이미'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지금이라도 살펴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롱테이크에 맞춰 연기한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력과 함께, 카메라가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관객인 나를 그 공간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실제 시간과 동일한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 감각이 몰입감을 높이고 긴장감을 지속시켰다.
이 작품은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현대 사회 남성성의 위기, 인셀(Incel : 비자발적 독신남) 문화, 소셜미디어의 악영향 등 복합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다. 제이미의 행동은 '순간의 실수'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누적된 자존감 문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열망, 온라인 공간에서의 왜곡된 여성관, 그리고 충동조절 능력의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드라마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현실 사회에서 '폭동'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더욱 심각하다.
불안한 남성성
첫 장면부터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 할법한 친숙한 소년 '제이미'의 모습이펼쳐진다. 미성숙한 신체와 순수해 보이는 외양은 관객으로 하여금 즉각적인 공감과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특히 경찰과 대면하는 순간, 극도의 공포로 자제력을 상실한 모습은 과연 "진짜 살인자일까?"라는 의문을 부여한다. 심지어 유치장에서 공포에 떠는 저 갸나린 소년이 살인을 저질렀다는게 쉽게 믿기지 않는다. 주인공의 나이를 13살로 설정한것도 탁월했다. 머리는 커서 많은 것을 알지만, 겉으로는 순박한 소년의 모습을 띄고 있는 나이가 바로 그 때다.
제 2장에서는 시선이 확장되어 오늘날 청소년 집단의 실상을 정밀하게 해부학처럼 조명한다. 가장 주목할만한 현상은 그들의 도덕적 무지 상태다. 타인의 고통을 오락거리로 전환하는 행태, 권위에 대한 일방적 거부, 또래 동조 압력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등은 단순 일탈이 아닌, 윤리 기반의 근본적 결핍을 시사한다. 이러한 도덕 공백은 사회 구조상 필연성을 안고 있다. 성과 중심주의, 경쟁 메커니즘의 내면화, 자극 역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미디어 환경 등... 기성 세대가 만든 생태계가 청소년의 도덕 발달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점은 그들에게서나타나는 '죄책감의 부재'다. 타인에게 해를 입히고도 진심어린 후회보다는 책임 회피 전략 모색에 몰두하는 것이다.
제3장은 극의 중추적지점으로, 이전까지 순진무구한존재로 인식되던제이미의 다면적정체성이 급진적으로표출된다. 외형적으로는 여전히미성숙한 아동의모습을 유지하나, 그의 언어적, 행동적 표현양식은 왜곡된성인 남성성의모방을 명확히드러낸다. 특히 반항적자세, 지적 우월성의과시, 성경험의 허구적과장 등은 13세라는 과도기적 정체성의혼란을 적나라하게투영한다.
비자발적 독신남
이 작품에서 주목할 설정은 '인셀(Incel)' 개념이다. 인셀(Involuntary celibate)은 비자발적 독신주의자로, 연애나 성관계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이루지 못하는 남성의 커뮤니티와 그 정체성을 말한다. 단순 신조어를 넘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밀접히 연결된다. '여성의 80%가 남성의 상위 20%에게만 관심을 보인다'는 인셀 커뮤니티의 왜곡된 통계는 작품 내에서 두 차례나 언급되며, 이는 소위 '매력적 소수'에 속하지 못한다고 자각하는 남성들의 패배감, 피해 의식, 그리고 궁극적으로 여성 혐오로 발전하는 과정을 정밀하게 보여준다.
특히 케이티가 제이미를 '인셀' 이란 표현으로 공격하고 비웃는 모습은 제이미의 분노가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이는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닌, 인터넷 공간의 남성중심적 여성 혐오와 피해 의식이 현실세계의 폭력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영국의 칼부림 사건 증가 추세와이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 나아가 2018년 토론토에서 발생한 차량 테러사건까지..., 인셀 현상이 가상의 위협이 아닌 현실적 위험임을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사이코패스적 일탈로축소할 수없는 복잡한사회문화적 맥락을내포한다. 개인의 심리적취약성, 가정환경, 특히 아버지와의관계, 그리고 남성성에대한 사회적기대와 규범이상호작용하는 지점에서이런 극단적행동이 발현된다는점에서, 이는 단순한개인 병리가아닌 집단적피해망상의 성격을띤다.
자아 존중감의 형성은 부모의 명시적 가르침 보다는 일상적 상호작용의 미세한 신호를 통해 만들어 진다. 제이미의 경우, 아버지의 무의식적 실망 표현이 반복적으로 누적되며 부정적 자아상을 내면화했다. 그의 아버지에게 '남성성'이란 운동능력, 신체적 강인함, 실용적 기술로 정의되었으나, 제이미는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것이다. 성적 열등감, 신체적 약점, 운동장에서의 주변화 경험 은아버지의 암묵적 기대에 미달한다는 만성적 인식을 강화한 것이다.
인정 욕구
주목할 만한 심리는 제이미가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어머니보다는 정서적으로 거리감있는 아버지에 집착하는 현상이다. 그의 심리적 세계는구금 상황에서도 아버지를 중심축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자존감 결핍이나 부성인정 욕구가 살인이라는 극단적 행위로 직결되는것은 별개의 심리적 기제를 요한다. 여학생 접촉시 무기소지와 모욕에 대한 극렬한 반응은 도덕적 지표의 부재를 시사한다.
오늘날의 청소년은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필터링 없이 선정적이고 극단적이며, 폭력적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다. 이들의 뇌가 충분히성숙하기도 전에 자극적인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도파민이 과하게 분비되고, 이로 인해 우울감, 불안감, 충동 조절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온라인 공간에서 형성되는 무논리적 자기 합리화다. '내가 화가났으니 폭력을써도 괜찮다', '내 감정이 더중요하다'는 식의 왜곡된 사고의 정당화가 그것이다.
제이미 아버지의 경우는 이같은 문제의 세대간 전이를 보여준다. 그는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학대의 사슬을 끊기위해 제이미를 때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분노표출 방식—물건 던지기, 고함치기—이 또 다른 형태의 폭력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이런 행동을 통해 제이미는 '화가 나면 타인을제 압하고 응징해도된다'는 왜곡된 인식을 내면화했다. 남자아이가 아버지의 행동 모델을 통해 자신의 남성성을 정의한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언행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드라마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회적 성찰
결론적으로, 이 드라마는 현대사회의 심층적 균열을 해부학적 정밀함으로 묘사한다. 제이미의 비극은 그 자신의 내재적 결함이나 단일 원인으로 환원할 수 없는복합적 현상이다. 가정 내 무의식적으로 전이되는 분노 표출, 취약한 자아상을 지닌 사춘기 남성의 심리적 불안정성, 인정 욕구의 좌절, 디지털 공간에서의 독성 담론의 확산, 그리고 현대 사회의 왜곡된 남성 규범이 중첩되어 비극적 결말을 초래했다.
드라마가 제시하는 '보편적 책임성'에 주목한다. 제이미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법적 책임이 일차적으로그 자신에게 있음은 부정할수 없으나, 그를 둘러싼 환경—가정,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 더넓은 사회전체—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 아이만 안전하면 된다'는 근시안적 사고방식은 결국 어떤 아이도 안전하지 않은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단순 오락거리가 아닌 사회적 성찰을 요구한다. 롱테이크라는 형식적 장치를 통해 관객을 불편한 현실속에 침잠시키며, 우리에게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현대 사회의 '디지털 원주민'으로 성장하는 청소년의 정신적, 도덕적 현실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그들이 직면한 위험을 인식하고 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세계를 물려주고있는가?
이 작품이 제시하는 해법은 단순치 않다. 복합 문제에 대한 단일 해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출발점으로서,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도덕적, 정서적 발달 환경을 제공하고, 안전한 자기표현의공간을 마련하며, 그들의 실수와 좌절에도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포용적 사랑의 중요성을이 드라마는강조한다. 결국 우리의미래는 우리가 양육하는 다음 세대의 정신적, 도덕적 건강성에 달려 있다는 뼈아픈 진실을 상기하는 것이다. (끝)
작성일 : 2025년 3월 20일
필자: 홍지영(Amy Hutchinson)
남네바다 주립대학교(CSN) 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로서, 네바다주립대학교(UNLV)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문적 연구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융합한 독창적인 방법론을 통해, 한국인들의 초국가적 정체성과 문화적 통합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