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사랑의 진정성, 진정성의 정치성: 케이팝 걸그룹 ‘진정성’의 문화적 조건

이소윤 | 시카고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국내 음악 방송이나 음원 차트 1위가 과거와 같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된 최근, 유독 화제가 되었던 1위 소식이 두 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2016년 그룹 우주소녀 (스타쉽 엔터테인먼트)로 데뷔한 후 약 9년만에 발매한 첫 솔로 앨범 ‘gonna love me, right?’의 타이틀곡 ‘body’로 음악방송 1위를 한 다영, 그리고 2022년 데뷔 후 약 3년 8개월 만에 첫 정규 앨범 Blue Valentine (블루 발렌타인)의 타이틀곡 Blue Valentine으로 첫 멜론 TOP 100 1위를 달성한 그룹 엔믹스 (JYP 엔터테인먼트)다.

다영 더쇼 1위 장면

2025년 10월 23일 자 SBS 더쇼에서 곡 ‘body’로 첫 1위를 한 다영은, “정말 많이 사랑받고 싶었는데, 사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소감과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그간 크고 작은 시상식에서 팬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아이돌을 수도 없이 보아왔지만, 다영의 수상 소감을 보며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음악방송 1위라는 것은 결국 감정, 노동, 에너지, 정동이 시장의 논리 속에서 응축되어 수치화된 결과로 치환된 것이지만,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노동, 일, 윤리, 인종, 젠더 등 다양한 주제로 케이팝을 탐색해 왔지만, 무의식적으로 사랑을 가벼운 주제로 치부하고, 간과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가 <사랑은 왜 아픈가>에서 지적하듯, 사랑을 연구한다는 것은 절대 지엽적인 일이 아니며, 오히려 현대성의 핵심과 기초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본 글에서는 다영과 엔믹스의 사례를 통해 케이팝 속 ‘사랑’과 ‘진정성’이 어떻게 얽혀 있는가를 짚어 본다.

사랑받을 자격

진정성은 대중음악 연구에서 오랫동안 핵심적인 논쟁거리였다. 그러나 진정성이 본질적이고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져 왔다. 미국의 컨트리 음악 속의 진정성이 사실은 1920~30년대 산업적 수요에 의해 철저히 기획, 연출되며 컨트리 음악의 제도화와 상업적 성공을 이끌었음을 밝혔던 리처드 피터슨의 논의처럼, '진정성'이라고 하는 것 또한 생산자와 수요자의 교섭에 의해 구성되는 사회문화적 산물이다.

케이팝 아이돌이 글로벌 대중 문화 속에서 가시성을 획득해감에 따라 그들은 다양한 진정성 논쟁의 중심에 놓여 있는데, 한국적 맥락에서 이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작동한다.

첫째, '케이팝 영역' 내부에서 그들의 음악, 무대, 팬덤에 대한 태도 등은 끊임없이 검증받는다. 아이돌의 음악적 진정성은 특히 의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예쁜 댄서'라는 표현이나 '진짜 가수가 아니다'라는 평가 절하가 그 예다. 수많은 립싱크 논란과 이에 대응하는 '라이브 인증' 문화는 아이돌의 전문성과 진정성이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드라마, 뮤지컬, 영화 등 그들의 본령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영역을 '침범'할 때 전문성에 대한 의심과 더불어 인기로 쉽게 자리를 얻었다는 반감에 직면한다. 과거 아이돌이 연기에 도전할 때 '아이돌 발연기'라는 비판을 받곤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케이팝 아이돌은 이처럼 여러 장르와 매체를 횡단하는 존재이기에, 각 영역에서 요구되는 전문성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비판에 특히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아이돌이라는 ‘업’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흔히들 아이돌이 되기 위해 거치는 연습생 과정을 보컬, 댄스, 연기, 무대 매너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통해 ‘멀티테이너’를 길러내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케이팝 아이돌이 되는 과정은 대중, 특히 청소년에게서 사랑받을 일종의 '자격'을 취득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자격(증)과 달리 이는 법적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며, 케이팝 산업이라는 장 속에서 규정된 자격 요건을 위배했을 때 회수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더욱이 그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서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보컬이나 댄스 실력은 성공을 담보하지 않으며, 외적인 매력과 성격, 노력하는 태도, 성실함, 그리고 흔히 스타성이나 끼라고 불리는 요소들 또한 중요하다.

사랑은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취와 노력, 올바른 태도를 통해 '획득'해야 하는 것이며, 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언제든 철회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작동한다. 물론 ‘탈덕’의 과정은 당연히 그렇게 무 자르듯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팬덤 내부에서는 조건적 사랑과 무조건적 지지가 끊임없이 경합하고 있다. 팬들은 이러한 모순을 협상하며 자신만의 팬심을 구성해나간다.

따라서 아이돌에 대한 여러 논란, 특히 그들의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전개되는 과정은 그들이 사랑 받을 자격을 재검증하거나 회수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이가 일반적인 근로 활동으로는 벌 수 없는 큰 금전적 수익으로 전환되는 것에 대한 박탈감이나 반감, 비판 의식이 드러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그 기저의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사랑 받아 마땅하다”라는 전제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의 변주로 읽히기도 한다.

잠시 아이돌에서 벗어나 일상 속의 사랑을 생각해보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받는 것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는 모순. 이는 비단 아이돌만의 딜레마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랑 역시 노력과 자기계발의 대상이 되었고, ‘사랑 받을 (또는 할) 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끝없는 자기관리와 이를 상품화하는 뷰티, 미용, 건강 산업이 맞물려 돌아간다. 케이팝 걸그룹은 이런 측면에서 현대 사랑의 정치경제학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장이며, 바로 그렇기에 진지한 탐구를 요한다.

진정성의 다면성: 자기표현과 자기발견

그렇다면 이러한 체제 속에서 걸그룹의 '진정성'은 어떻게 구성되고 인정받는가? 진정성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할 뿐 아니라, 동시대 활동하는 아이돌과의 비교 속에서 상대적으로 구성된다. 한때는 '실력'이, 또 다른 때는 '노력'이, 그리고 때로는 '진솔함'이 진정성의 척도가 된다.

최근 여러 걸그룹들의 라이브 논란이 불거지는 와중에, 다영은 일정 기간 부재했던 걸그룹 언더독 서사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완벽히 채워주는 존재로 부상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다영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은 0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녀가 솔로 아티스트로 성공한다거나, 그녀가 소속사 선배 걸그룹 씨스타의 ‘건강미’ 컨셉의 계승자가 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영의 서사는 설득력을 얻는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그녀의 도전은 '진짜'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미 주어진 팬덤이나 화제성에 기댈 수 없었고, 오직스스로의 변화와 노력으로 '자격'을 다시 획득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영 ‘body’ 뮤직 비디오

여기에서 다영의 <gonna love me, right?> 앨범 소개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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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영 (DAYOUNG) 1st Single Album 〈gonna love me, right?〉

- 캐릭터가 되지 않고, 자신이 되는 순간
-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다영의 이름을 다시 쓰는 시간

우주소녀, 그리고 유닛 우주소녀 쪼꼬미를 통해 경쾌한 에너지와 독보적인 캐릭터를 쌓아온 다영이 이번에는 처음으로 ‘홀로’ 무대에 선다. 데뷔 10년 차, 어느덧 익숙해진 팀 활동을 지나 다영은 스스로를 기획하고, 만들고, 표현하는 아티스트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음악부터 콘셉트, 뮤직비디오까지 앨범 전반에 걸쳐 전하고 싶은 이야기와 감정을 직접 설계하며, ‘솔로 다영’만의 색깔과 세계를 분명하게 구축해 냈다. 이번 싱글은 그 어떤 캐릭터도 입지 않은 다영 본연의 감정과 태도를 담았다. 경쾌하고 당당하며, 동시에 솔직하고 도발적이다. 무대 위에서 마주할 ‘나’를 더는 연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스포트라이트에 세운다.


‘gonna love me, right?’는 첫 솔로 앨범이자, 아티스트 다영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작업이다. 무대 위, 예능 속, 우주소녀와 유닛. 그동안 다양한 ‘다영’이 있었다면, 이번 앨범은 그 모든 이미지의 중심에서 ‘진짜 나’를 보여주는 순간이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대신 스스로를 세련되게 표현하는 태도. 솔직함이 무기고, 유쾌함이 스타일인 아티스트. ‘gonna love me, right?’는 다영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이고, 대중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다.


다영의 솔로 데뷔 서사는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자기발견의 과정으로 명확히 서사화되어 있다. 앨범 소개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캐릭터가 되지 않고, 자신이 되는 순간', '그 어떤 캐릭터도 입지 않은 다영 본연의 감정', '진짜 나를 보여주는 순간’ 같은 표현들은 그녀의 진정성을 적극적으로 구성한다. 특히 그녀가 스스로 회사에 휴가를 요청하고 미국에 건너가 직접 곡을 받아왔으며, 음악부터 콘셉트, 뮤직비디오까지 앨범 전반을 직접 기획했다는 점은 이 진정성 서사를 더욱 공고히 한다.

또한 이번에 다영의 이미지 변신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상술한 노력의 과정도 있지만, 그 노력이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났던 그녀의 몸에도 있다. 12kg 이상을 감량하며 "흥칫뿡야"를 공연했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이미지 변신을 이뤘고, 본연의 피부색을 살린 스타일링과 화장의 변화는 그녀의 진정성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다영이 그룹 활동을 거쳐 솔로로서 '개인의 진정성'을 찾아갔다면, 엔믹스는 처음부터 그룹으로서의 집단적 정체성을 구축해야 했다. 솔로는 '나'를 찾으면 되지만, 그룹은 '우리'를 정의해야 한다. 그리고 엔믹스가 선택한 '우리'의 정의는 JYP 걸그룹의 전통과는 완전히 달랐다. 원더걸스-트와이스-있지로 이어지는 JYP 걸그룹 계보는 '직관적이고 중독성 있는' 음악으로 대중성을 확보해왔다. '난해함', '선병맛 후중독', 'SMP' 등으로 수식되는 SM 엔터테인먼트와는 구분되는 지점이다.

국민 후크송 원더걸스의 'Tell Me'부터 전국을 뒤흔든 트와이스의 Cheer Up과 ‘샤샤샤’ 열풍, 그리고 데뷔 후 11일 만에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첫 1위를 달성한 있지의 '달라달라'까지, JYP의 걸그룹들은 항상 '대중성'('대중'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과연 가장 적합한 단어인지는 모르겠으나)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렇기에 '믹스팝'을 내세우며 "Change up!"을 외치는 엔믹스는 낯선 존재였다. 극명히 갈리는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엔믹스는 믹스팝이라는 실험적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가 ‘Blue Valentine’이다.

엔믹스 blue valentine 뮤직 비디오

4년이라는, 걸그룹에게는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엔믹스는 믹스팝을 세련되게 다듬으며, 단순한 장르의 '접합'이 아닌 유기적이며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믹스팝의 레시피를 찾아냈다. '대중성'과 '난해함'의 양분이 아니라 그 사이의 스펙트럼 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케이팝이 '고이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음악적 실험이 필수적이며, 이를 단순히 난해함/대중성의 이분법으로 파악하지 않고 더 세분화되게 잡아낼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이를 수용하는 대중의 역할 또한 중요할 것이다. 또한 이번에 엔믹스가 ‘Blue Valentine’을 통해 이룬 성과는 청순, 큐티, 걸크러쉬, 섹시 등의 코드화된 젠더 표현을 충실히 이행하는 형태의 '진정성'이 아닌, 믹스팝이라는 '음악적 정체성'을 고수함을 통해 보여준 진정성이라는 새로운 축을 추가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물론 이러한 실험이 가능했던 것은JYP 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 기획사의 자본과 자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엔믹스가 중소 기획사 소속이었다면, 4년이라는 기간 동안 믹스팝이라는 방향성을 고수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룹을 키워나갈 수 있었을까?

이는 케이팝 산업 내에서 진정성을 구성하고 증명하는 과정이 단순히 아티스트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기획력, 그리고 기다릴 수 있는 여유라는 구조적 조건에 의해 크게 좌우됨을 보여준다.

사랑이 멸종 위기라구요?

다영의 'body'가 보여주는 솔직하고 건강한 자기애, 엔믹스가 고수해온 실험적 '믹스팝'은 모두 '진짜 나'를 찾아가고 표현하는 여정으로 서사화된다. 나 또한 그들의 행보를 응원하며, 그들이 잘 되길 바란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과는 별개로 그들의 진정성 서사가 그들을 다른 아이돌과 차별화하는 ‘셀링 포인트’로 작용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키워드로 떠오른 "컨셉 없는 게 컨셉"이란 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기존 케이팝 컨셉 체제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획득하는 반(反)컨셉일 수도 있고, 혹은 '자기다움'이라는 새로운 생산 논리가 케이팝 산업을 확장시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진정성과 컨셉의 경계 자체가 모호해지는 것이 현 케이팝의 진화 방향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랑'—사랑의 진정성과 진정성의 사랑—을 둘러싼 복잡한 감정과 관계들이 자리하고 있다.

올해 가장 인상 깊게 들은 노래인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라고 노래하는 이찬혁은 사랑이 범람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사랑의 종말을 선언한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결혼정보회사가 호황을 누리는데, 사랑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니요?

어쩌면 이찬혁이 애도하는 것은 사랑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특정한 형태—"불이 만들어지는 사랑", 즉 계산되지 않고 최적화되지 않은 사랑—의 소멸일지도 모른다. 케이팝 산업에서 사랑은 철저히 관리되고 수치화된다. 음원 순위, 앨범 판매량, 투표 수로 환산되는 팬들의 사랑. '사랑받을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아이돌들. 진정성마저 전략이 되는 시장.

다영이 "정말 많이 사랑받고 싶었다"라고 고백했을 때, 그것은 케이팝의 본질을 다시금 드러낸 순간이었다. 사랑이 성과가 되고, 진정성이 상품이 되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모두 사랑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살아간다.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차가운 진단일 것이다.

케이팝은 이 진단의 가장 선명한 증거이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최첨단의 실험실이기도 하다.(끝)

작성일: 2025년 11월 23일

글쓴이 이소윤은 듀크 대학교 정치학 학사, 시카고 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를 거쳐 현재 시카고 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5년부터 미국에서 유학하며 한류의 성장을 관찰해 왔고, 케이팝 산업 속 직업 교육과 일 경험에 대한 박사 논문 연구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