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돌려막기 30년...제자리걸음 K팝 인프라: 1만명 수용하는 '아레나' 건설이 안되는 이유

정길화 | KOCAF 이사, 동국대 특임교수


“.... 국내서도 대규모 K팝 공연을 할 수 있는 아레나형 공연장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내 대중음악콘서트 시장은 연평균 약 40% 증가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국내에서 1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실내 공연시설은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단 1곳이며 그나마 연 가동률이 거의 100%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실정에서 공연기획사들은 공연장 대관을 위해 대기하거나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등 많은 불편을 겪는다"며 "국내외 정상급 뮤지션들이 마음껏 그들의 열정과 창의성을 펼치려면 고품격 대중문화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레나(arena)와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다가 위와 같은 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제목은 “K팝 전용공연장 건립 추진 본격화”. 기사가 보도된 날짜는 2012년 2월 28일이다. 관련 사진으로는 2월 9일 프랑스 파리 베르시에서 열린 KBS 2TV 뮤직뱅크 파리 공연 모습이 함께 실려 있다. 위 기사의 추상같은(?) 기세로 보면 K팝 전용 아레나가 곧장 건립될 것 같은 형국이다. ‘토건공화국 대한민국’이라는데 음악 공연장 하나 세우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널린 게 빈 땅이고 마음만 먹으면...’ 뚝딱뚝딱 지을 것만 같다. 12년이 지났으니 못 되어도 지금 최소한 4-5개의 공연장이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런가...

성장과 부족

"프랑스 파리"를 떠올리니 또 생각하는 것이 2011년 6월 SM엔터테인먼트가 제니트 드 파리(Le Zenith de Paris)에서 펼친 ‘SM타운 라이브 월드 투어 인 파리’ 공연이다. 이날 공연에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 등 SM의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출동했다. ‘왜’ ‘쏘리쏘리’ ‘훗’ ‘루시퍼’ ‘피노키오’ 등 각 가수의 히트곡으로 합동 공연이 이루어졌다. 이들은 프랑스는 물론 주변 나라에서 운집한 팬들을 들었다 놓았다. SM의 파리 공연은 한류와 K팝 역사에서 큰 변곡점이 되었던 행사다. “K팝이 세계로 발화한 순간”으로 꼽힌다.

SMTOWN Live '10 World Tour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열린 SM의 세 번째 콘서트 투어라고 한다. LA, 상하이, 도쿄, 파리, 뉴욕...으로 이어진 이 일정에서 특히 화제가 된 것이 파리 공연이다. 당시 나는 M본부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으로 브라질 상파울루에 있었는데, 파리에서 대박이 난 이 공연이 뉴스로 보도가 되자 브라질 등 중남미의 K팝 팬들까지 덩달아 난리가 났다. 사실 그전까지 라틴 아메리카의 K팝 팬덤은 ‘은둔형 오타쿠’에 가까웠다. 유럽 중심부에서 K팝 공연이 대성황을 이루자 팬들이 일제히 커밍 아웃을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SM 파리 공연은 국내에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류가 유럽에서도 통한다니... 그야말로 K팝의 실체와 파워를 목격하고 인식하지 않았을까. 그런 분위기 속에서 “K팝 전용 공연장 건립 추진....”과 같은 이슈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공연이 열렸던 ‘제니트 드 파리’만 해도 1984년에 오픈한 다목적 실내 아레나다. 규모는 9천 석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더니 비로소 K팝 전용 공연장의 필요성을 깨달았을까. 아레나형 공연장이 공론화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그동안 건립된 것은 올해 초 미국 리조트 기업 모히건이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리조트’에 개장한 1만 5천석 규모의 아레나가 유일하다.

아레나(arena)는 사전적으로 ‘스탠드 등을 설치하여 중앙을 볼 수 있게 해놓은 경기장 · 공연장 등’을 말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주로 1만 석 미만은 홀(hall)급, 1만 석~2만 석 규모를 아레나(arena)급이라 하며, 3만 석 정도는 슈퍼 아레나(super arena)급, 그 이상은 스타디움(stadium)급이라고 한다는데... 일단 여기서는 1만 5천석 규모 정도의 음악 전용 공연장을 염두에 둘 수 있겠다. 어원적으로 보면 라틴어 ‘아레나(harena)’는 원래 ‘모래’라는 뜻으로, 검투사들이 싸우면서 흘리는 피를 흡수하기 좋도록 모래를 깔아놓는 데에서 지금의 뜻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뭐 이 정도는 TMI로 돌리자.

아레나에 대한 논의는 무성하다. 명색이 ‘K팝의 종주국’이라면서 변변한 공연시설 하나 없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있어 왔다. 기존의 대형 공연장은 대부분 스포츠 시설로 콘서트를 하려면 매번 무대, 음향, 조명, 좌석 등을 리세팅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변변한 시설로는 예의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으로 시작한 1만 5천석 규모의 케이스포돔(KSPO DOM)이 있다. 이 경우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들이 실내 콘서트를 할 수 있는 공연장으로 이용하고 있으나 각종 행사 등으로 가동률에 여유가 없다는 것은 12년 전에도 나왔던 얘기다. K팝의 메카라는 서울에, 아니 한국에 아직도 K팝 전용 공연장 하나가 없단 말인가. 아레나는 기본적인 인프라(venue)가 아닌가.

난관과 시도

경기도의 주도로 고양시 장항동에 건립한다고 하던 CJ라이브시티의 'K팝 아레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무산되었다고 한다. 실망한 일부 도민들은 ‘이유를 알려달라’는 청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소식으로는 해당 부지를 다시 매입하기 위한 1523억 규모 'K-컬처밸리 추경예산'이 경기도의회를 통과했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얼마 전 이 일대를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인근 아파트에는 “CJ라이브시티 백지화 결사반대, 고양시민 두 번 죽이는 경기도는 각성하라”는 엄중한 내용을 담은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다. 또한 하남시는 미사리에 'K-스타월드'를 조성하고 여기에 2만석 규모로 라스베이거스식 ‘스피어’ 공연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여러 사정으로 전도가 불확실하다고 한다.

한편 도봉구 창동에 들어서는 ‘서울 아레나’는 지난 7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공간은 서울 최초의 K-팝 중심 복합문화시설로 창동역 인근 5만㎡ 부지에 들어설 예정이다. 최대 2만800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1만 8천269석 규모의 K팝 중심 음악 전문공연장으로, 최대 7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중형 공연장, 영화관, 상업시설 등과 함께 구성된다고 한다. 2027년 공연장이 완공되면 관람객 연 250만 명 유치가 가능하다는데 귀추가 주목된다. 그 외 금세라도 전용 아레나를 만들 것 같았던 유관 기관들은 그동안 다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최근 K팝의 위세가 지구촌에 확장되면서 대중음악 공연시장의 현실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문체부 산하 예경(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예술통합전산망으로 집계된 2023년 공연 총매출액은 1조2696억원으로, 국내외 가수 공연을 더한 대중음악 분야 매출(5765억원)은 전체에서 가장 큰 45.4%를 차지했다고 한다. 성장 가능성이 실제로 확인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 것일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Explained”에 따르면 K팝의 기원을 ‘서태지와 아이들’(1992)부터로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언 32년의 역사가 흘렀다.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경기도의 주도로 고양시 장항동에 건립한다고 하던 CJ라이브시티의 'K팝 아레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무산되었다고 한다.
국내 유일하게 건립된 아레나형 공연장인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리조트’
2027년 준공되는 '서울아레나'

의견과 논의

지난 7월 초 뜻한 바 있어 ‘K팝 전용 아레나’에 관하여 페이스북에 한 차례 포스팅을 한 바 있다. 여기서 필자는 그린벨트 등 규제의 문제, 예산 등 재원 확보, 또는 지자체 간 과잉투자의 우려 등이 있겠지만 "K팝과 한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의 부재"가 근본 원인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적시해 보았다. 즉 “한류 위기설, 한류 소멸설이 끊임없이 나오는 와중에 누가 K팝 전용 공연장 투자를 결정할 수 있었겠는가. 급하면 올림픽주경기장, 고척돔, 킨텍스 등으로 돌려막았고... 그러는 사이 어영부영 30년의 세월이 지난 것이다. 지금도 논의의 한편에서는 ‘공연장이 완성되기 전에 K팝 붐이 사그러들면 어떡하나...’ 하는 초조함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포스팅했던 것이다.

또한 “정히 실기(失機)를 걱정한다면 K팝에 한정하지 말고 이를 포함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공연장을 건설할 수는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복투자를 우려하나 본데 지금 ‘똘똘한 하나’도 제대로 없는 상태에서 중복 운운 하는 것은 반지빠르다.” 등의 의견을 올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여기에 강호제현의 각종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백화제방의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다. 본고에서는 아레나에 대한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 댓글 중 유의미한 내용을 익명으로 정리해 본다. 문맥상 일부 순서와 표현을 재구성했음을 밝힌다.

#1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를 갔었는데 참 부러웠다. K팝의 핵심, 최고의 캐시카우는 결국 콘서트다. 이것을 인정하면서도 투자를 안 했다는 것에는 100% 공감한다.

#2

공연장도 공연장이지만 해외에서 몰려드는 한류 팬들을 대상으로 K팝 캠프를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숙박부터 대형 댄스룸, 메이크업 룸, 보컬 트레이닝 룸 등...모두 한 번에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3

‘K팝이 사그러들까봐’는 변명에 불과하다. 콘서트 인구가 얼마인데... 변변한 공연장도 없어서 외국 가수들이 한국은 월드투어에서 비켜가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 그냥 대중문화를 잘 모르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힘이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정책적으로 중시하지도 않고 투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4

콘텐츠 투자의 문제라기보다는 venue만 왕창 짓고 관리운영의 짐을 안고 있는 실패(혹은 곤란) 사례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런 대형 공연장은 기관장의 임기 내 완성이 어렵다. 3-4년씩 걸리는 공공시설 건설안은 한국 시스템에서는 비현실적이다.

#5

용산 정비창 부지에 100층 올릴 생각 말고 제대로 된 ‘돔 아레나’나 지었으면 한다..

#6

부산 해운대ㆍ기장 오시리아역 주변에 2030 엑스포 대비하여 문화공연장 준비해온 곳이 있다. 여기에 ‘K팝 아레나’를 만들어 다양한 문화ㆍ음악공연을 하면 좋을 듯하다.

#7

자꾸 일본하고 비교하는데, 일본 음악시장은 한국에 비해 20배 정도가 크다. 회당 수만 명 동원하는 공연을 서울에서 1년에 몇 번이나 하겠는가. 그보다 서울에는 2천석 정도의 공연장이 더 많이 필요하다. 정책, 학계 분들이 산업현장의 의견을 좀 조사하면 좋겠다.

#8

차제에 ‘아레나’를 주제로 글을 하나 쓰시는 게 좋을 것 같다.

향후 과제

보시는 바와 같이 항간에 ‘아레나 건립’에 대해 매우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집단지성으로 생각된다. 참고할 만한 내용이 다수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던 와중에 “K-아레나에서 아이브가 절찬리에 공연을 했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린가. 한국에 K팝 아레나가 없다는데.... 눈을 비비고 찾아보니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K-아레나 얘기다. 웬 K-아레나....? ‘K 하면 한국...’인데 언제 누가 일본에 'K공연장'을 만들었단 말인가. 맹렬하게 구글링을 해보니 2023년 9월에 개관했다는 ‘K-아레나 요코하마’ 얘기다.

설마 이 K가 설마 Korea나 Kankoku는 아닐테고... 혹시 요코하마가 일본 가나가와(Kanagawa) 지역에 있어, 애향심의 발로로 K를 호명한 건가... 필경 일본의 부동산 회사로 건물주인 ‘KEN 코퍼래이션’에서 K가 나온 것 같은데 홈페이지를 아무리 뒤져도 직접적인 설명은 안 보인다. KEN의 뜻도 불확실하다. 영어단어 KEN에는 ‘시야(視野)’라는 뜻이 있다. 설마 이것일까. (부동산 회사니까 그럴 수도...) 일본전문 저널리스트인 도쿄의 박철현 기자는 KEN이 오너의 이름에서 왔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K-아레나의 K가 무엇이든 당분간(도봉구 창동에 ‘서울 아레나’가 완공되는 2027년 전까지는....) 한국의 K팝 아티스트들이 'K-아레나 요코하마'에 가서 집중적으로 공연을 하면 어떨까. 그러다 보면 어느덧 ‘K-아레나’가 그냥 ‘K팝 아레나’로 인식되지 않을까... 그러면 투자 없이 편승한다고 욕을 먹을까... ^^).. 한국에 변변한 ‘K팝 아레나’가 없다 보니 일본 가나가와 요코하마에 있는 ‘K-아레나’를 보고 ‘몽상’에 사로잡힌다. (끝)

글쓴이 정길화는 1984년 MBC에 PD로 입사해 "세상사는 이야기",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교양 프로그램과 시사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었다. 2021년부터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으로 국제문화 교류와 한류 진흥을 위해 활동했다. 2024년부터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