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CAF 스페셜 포럼 진행기] “빅데이터로 본 한류의 궤적과 미래: 한류 트래커 시연 및 토론” (나탈리아 그린체바 박사)
이소윤 | 시카고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2025년 7월 16일 수요일, KOCAF의 정기 포럼이 여의도 영등포 50플러스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에는 특별히 디지털 문화 데이터 분석 및 국제 문화외교 분야의 전문가인 나탈리아 그린체바(Natalia Grincheva) 박사(싱가포르 라살 예술대학)를 초청하여 그녀가 2023년부터 주도해온 한류 연구의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필자 (이소윤, 시카고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가 진행 및 통역을 맡았다. 필자는 약 2년간 그린체바 박사의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하며, K-pop 콘서트 관련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독자적인 지도 레이어를 구축해 왔기에, 이번 포럼은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국제적 학술 교류를 지향해온 KOCAF에게도 의미가 깊은 행사였다.
본 글에서는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탄생한 애플리케이션 ‘한류 트래커(Hallyu Tracker)를 간략히 소개하고, 2년간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인 연구원의 시각에서 한류 연구와 데이터에 대한 생각을 덧붙이고자 한다.
한류 트래커의 탄생:
한류를 ‘지도화’할 수 있는가?
한류 트래커는 2023년부터 그린체바 박사가 이끌어온 “Mapping Global Impacts of Hallyu (한류의 글로벌 영향력 지도화)”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데이터 기반 플랫폼으로, 지난 약 30년 (1993년~2023년) 동안 세계 각지에서 한류가 어떻게 소비되고 확산되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도구이다. 동시에 한류 트래커는 기존 한류 연구의 방법론적 한계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동안 한류에 대한 다양한 양적 데이터가 축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합적으로 분석 및 해석할 수 있는 할 방법론적 틀은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그린체바 박사는 질적 연구나 내용 분석, 인문학적 접근은 특정 문화 텍스트의 심층적 의미나 특정 집단의 문화 수용 과정을 조명하는 데 강점을 지니지만, 빅데이터가 제공하는 거시적 수준의 통찰 또한 명실상부한 글로벌 현상으로 자리잡은 한류의 복잡한 역학을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 프로젝트는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에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사회학, 국제 정치학, 인류학, 문화/예술 경영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였고, 필자와 같은 연구원들은 한류와 연관된 각자의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전체적인 한류 트래커의 구축에 기여하였다.
이 외에도 300개 이상의 데이터셋을 개별 레이어(layer)로 지도화하였고, 정부 기관의 오픈 데이터, 세계은행(World Bank) 및 하버드 데이터버스 등과 같은 국제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보조 연구원들이 직접 수집한 데이터셋을 통합해 분석을 진행했다. 특히 누락된 데이터를 보완하기 위해 머신러닝 기반 예측 모델을 적용하여, 한류의 변화를 보다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한류 트래커는 세 가지 파워 클러스터로 구성된다:
- Reach Power(리치 파워): 각 지역의 경제적 여건, 한류 소비 역량, 한국 정부 및 산업계의 수출 전략을 종합 분석한다.
- Appeal Power(어필 파워): 한류가 지닌 문화적 매력과 가치 요소를 탐색한다.
- Engagement Power(인게이지먼트 파워): 팬 활동, 미디어 보도, 여론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류 참여의 양·질을 측정한다.
위의 지표들은 0~100 범위의 지수(Index)로 정규화되어, 국가별 혹은 도시별로 한류의 영향력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시각화 도구 또한 매우 직관적이다. 국가 단위 데이터는 색채 구분 지도(Choropleth Map)로 표현되며 색이 짙을수록 점수가 높음을 나타내고, 주요 14개 도시는 원의 크기로 수치를 보여주는 심볼 맵(Symbol Map)으로 나타난다.
사견을 덧붙이면, 주로 질적 연구 방법론을 사용하는 필자에게는 특정 국가나 도시에 대한 “스토리”를 추가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는 단순한 수치 제시에 그치지 않고, 사용자가 연구 결과와 직접 상호작용하며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된다.
방법론으로서의 ‘지도화’
지도나 도표는 흔히 연구 결과를 시각화하는 도구로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한류 트래커는 ‘지도화(mapping)’ 그 자체가 곧 강력한 연구 방법론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도화는 지도화하고자 하는 대상의 정의와 범주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기획·실행한 ‘케이팝 콘서트 지도화’ 프로젝트에서도 이 단계가 가장 까다로웠다. K-pop 아티스트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K‑pop 아티스트의 정체성은 유동적이고 모듈화된 특성을 지닌다. 멤버가 탈퇴하기도 하고, 새로 들어오기도 하며, 연차에 따라서는 솔로 활동을 더 우선시하기도 한다. 그간 K-pop산업은 다양한 장르, 다양한 아티스트 포맷을 시도하며 새로운 시도를 거듭해 왔기 때문에, 범주화가 까다로운 개별적인 사례들도 다수 존재한다.
SM 엔터테인먼트의 NCT처럼NCT 127, NCT U, NCT Dream, NCT WayV, NCT Dojaejung, NCT Wish 의 개별 유닛이 하나의 메타 브랜드이자 그룹으로 활동하는 경우에는 각각 독립된 그룹으로 정의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질문도 던져볼 수 있다. 또한 데이식스나 엔플라잉 같은 소위 ‘아이돌 밴드’나 아이유, 에픽하이 같은 아티스트들도 통상적인 K-pop의 틀로 분류하기 어려운 사례들이다.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 개별 아티스트의 소속 또한 변화를 거듭한다. 하이브는 지난 몇 년간 소스 뮤직,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등을 인수하였고, RBW 엔터테인먼트 또한 DSP 미디어를 인수한 것처럼, 기업 간의 인수 합병, 기업 구조 개편, 해외 자회사 설립 (JYP 재팬, 하이브 아메리카 등)은 K-pop 산업의 지형을 지속적으로 바꾸고 있다. 또한, 상표권 분쟁, 멤버 전원의 재계약 불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는 하이라이트 (전 비스트), 비비지 (여자친구의 멤버 신비, 유주, 엄지로 구성된 빅플랫메이드엔터 소속 그룹) 등과 같은 사례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개별 사례들에 대해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일지, 그 기준을 적용하는 당위성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주관성이 배제된 기술적인 행위가 아닌 연구자의 사전 경험과 지식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해석적 과정이다. 무엇을 데이터화할지, 범주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는 결국 연구자가 가지고 있는 전제, 문제 의식, 그리고 학문적 훈련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간 다양한 도시에서 열린 케이팝 콘서트에서 참여 관찰을 진행하고, 다양한 콘서트의 종류와 팬들의 참여 양상, 그리고 콘서트가 업계와 팬덤에 가지는 상징적 의미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아마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필자는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특히 지도를 제작하기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제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전제와 문제의식, 그리고 학문적 훈련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그린체바 박사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한류의 미래:
다자적 데이터 거버넌스와 지속 가능성
그린체바 박사의 발표가 끝난 뒤 이어진 Q&A에서는 데이터 업데이트 주기부터 한류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다자적 거버넌스의 필요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논의되었다. Grincheva 박사는 “구글 트렌드와 같이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는 데이터도 있지만, 현재 한류 트래커 프로젝트는 1993~2023년 자료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정부와 산업계가 데이터 플랫폼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음에도, 실제 사용 결과나 개선 방안을 체계적으로 관리·공유하는 후속 조치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자적 데이터 거버넌스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한류 트래커에 산업 데이터(예: 티켓 판매액 등)를 통합할 수 있다면 더욱 정교하고 뉘앙스 있는 분석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도 산업 관계자들의 공감과 지지가 필수적이다. 마침 지난번 취재한 ‘2025 케이팝 러버스 클럽’에서 필자는 비슷한 문제 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https://www.kwave.or.kr/2025-keipab-reobeoseu-keulreob-cwijaegi-keipab-keipabseureoum-geurigo-keipabhagi/) 이 행사는 몇 년 전부터 케이팝 업계 종사자들에게 소통과 상호 협력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되었으며, 올해는 팬덤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아티스트의 현재 위치와 팬 반응, 향후 마케팅 방향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케이팝 레이더 2.0’이 공개되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6B-NwSF7rEg&ab_channel=K-POPRADAR%EC%BC%80%EC%9D%B4%ED%8C%9D%EB%A0%88%EC%9D%B4%EB%8D%94).
또한 스페이스 오디티의 김홍기 대표는 “언제까지 ‘감’에만 의존하며 일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데이터 드리븐 마케팅과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필자는 이 지적에 일견 공감하면서도, ‘감’과 데이터가 과연 상충되는 개념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류를 구성하는 다양한 산업이 산업, 개별 조직 (기획사), 그리고 개인의 차원에서 ‘리스크’를 어떻게 규정하고 대응하고 있는가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며, 이러한 행동 양식의 근거가 ‘빅데이터’로만 일원화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흐름이라고 본다.
빅데이터는 팬덤의 소비 패턴·검색 트렌드 등을 “객관적”으로 드러내지만, “왜” 그런 현상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맥락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둘을 분리된 것으로 보기보다, 업계 현장의 ‘감’이나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면서 축적하는 다양한 직관, 때로는 외부자의 자문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가 이를 검증·보완하는 선순환 모델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케이팝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정성적·정량적 자료를 통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틀,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데이터를 함께 분석·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물론 한류 트래커 프로젝트의 일원으로서 약간의 ‘사심(?)’이 있음을 고백하지만, 그린체바 박사의 한류 트래커는 그러한 가능성 중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세대, 위치를 가진 학자들이 각자의 관점으로 한류를 지도화(mapping)하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며, 이번 계기를 통해 KOCAF가 그 흐름을 주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끝)
글쓴이 이소윤은 듀크 대학교 정치학 학사, 시카고 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를 거쳐 현재 시카고 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5년부터 미국에서 유학하며 한류의 성장을 관찰해 왔고, 케이팝 산업 속 직업 교육과 일 경험에 대한 박사 논문 연구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