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상반기 최대 히트작 눈물의 여왕 : K-드라마의 저력, 텍스트의 힘을 살펴보다

정영희 | 고려대학교 정보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2024년 4월말 종영한 tvN의 드라마 “눈물의 여왕”을 향한 해외 반응이 뜨겁다.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의 ‘글로벌 TOP10 시리즈(비영어)’ 부문 랭킹(5월27일~6월2일) 10위를 기록하여 13주 연속 TOP10에 랭크인 했다. 지난 3월, 미국 타임지(TIME)는 ‘낡은 관습을 타파하는 신선하고 볼만한 K-로맨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가 K드라마에서 흔히 기대하는 것을 비틀고 신선하게 접근한 드라마”라고 평가했을 정도. 일본의 한 매체는 “눈물의 여왕”이 “제 5차 한류 열풍을 견인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국내에서는 최고시청률 24.8%를 보이며, tvN의 드라마로는 역대 최고 시청률 기록했다.

“눈물의 여왕”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이유는 다양하다. 텍스트적 요인만 본다면, 극이 속전속결로 전개되어 답답함이 없고, 성 규범과 계급질서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전복하여 경쾌하고 가벼운 웃음을 만들어 낸 점도 있다. 재벌이 너무 쉽게 몰락하는 설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경우도 있지만, 빠른 전개는 수용자에게 스토리의 핵심 요소를 더 명확하게 전달했고, 쇼츠나 릴스 같은 짧은 콘텐츠에 익숙한 수용자의 기호도 잘 공략했다.

상반기 최대 화제작

한국 드라마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케팅과 유통의 힘을 무시할 수 없지만 텍스트적 소구점이 없다면 불가능한 현상이다. “눈물의 여왕”은 장르적으로 로맨스물이지만, 결혼생활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로맨스의 장르 관습을 통해 구성된 결혼자를 위한 성장 서사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기혼자가 주인공인 경우는 대부분 불륜이 소재였기 때문에 부부 로맨스를 다룬 이 드라마는 신선했고, 시청자들은 결말이 정해진 안전한 로맨스를 꿈꿀 수 있었다.

드라마 초반에는 가부장적 사회의 전통적인 성 규범과 성별 고정관념을 의도적으로 파기하여 시청자의 주목을 끌었다. 국내 언론도 남녀 간의 성역할이 뒤바뀐 몇 개의 에피소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 가운데 남자 주인공 백현우(김수현 분)를 포함하여 사위들이 1년에 15회나 되는 처갓집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아내의 가문에서 아내의 혈육에게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상황을 코믹하게 다룬 에피소드가 주목을 끌었다.

이는 대부분의 한국 며느리들이 놓인 상황을 성별로 전치(轉置)하여 보여준 것인데, 전통적인 가부장적 관념 속에 놓인 여성의 역할을 남성이 하게 함으로써 결혼가족문화의 성별 편향성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또한 ‘당신 눈에서 눈물 나지 않게 해주겠다. 나만 믿어라’라는 청혼 멘트를 여성이 말했고, ‘우리 집처럼 이상한 데 혼자 놔뒀던 것도 잘못했다’는 사과의 말도 여성이 꺼내기도 했다.

가부장제의 전복

아내가 재벌가 딸이고, 남편은 아내 집안 회사에 고용되었다는 경제-위계적 설정은 여성을 남성 우위에 둔 질서를 자연스러워 보이게 만들고, 그 결과 남녀 간 성별 위계가 전치된 듯한 착각도 만들었다. 남성의 외모를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여자(홍해인, 김지원 분), 남편과 아들을 유학 보낸 기러기 엄마(백미선, 장윤주 분), 아내 혈통을 친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전향적인 남자(홍수철, 곽동연 분), 며느리는 아들의 짝일 뿐 나의 소유가 아니라는 시어머니(전봉애, 황영희 분) 등 곳곳에 성역할과 성별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기호들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수철을 둘러싼 에피소드에서는 남편이 낳아온 아이를 아내가 키우던 과거의 가부장적 관념이 완전하게 전도되었다. 이를 본 국내 시청자들은 ‘봐라, 여성(혹은 남성이) 이리 살았었다’는 넋두리를 내뱉음과 동시에 일종의 쾌감을 느끼고, 해외 수용자들은 한국을 젠더 감수성이 발달한 선진화된 성평등 국가로 인식하게 한다.

그렇게 시작했으나 드라마 중반 이후에는 시청자들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봐 왔던 익숙한 방식으로 로맨스의 서사가 진행되었다.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전형인 ‘완벽한 남성의 여성 구하기’가 시작되었고, 드라마 곳곳에서 가부장적 사회의 전통적인 성역할과 성별 고정관념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전개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비판적인 시청자와 전통적인 관계를 지지하는 시청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신선한 익숙함’ 즉, 로맨스 드라마에서 기대하지 않은 것과 기대해 온 것 모두 확보된 것이다.

성 규범과 성별 고정관념 이슈가 가볍고 코믹하게 전시된 것처럼, 계급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눈물의 여왕”에서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재벌가와 서민가의 계급 융화가 하나의 주제가 되어 다수의 에피소드를 구성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재벌가가 서민의 공간에서 겪는 여러 가지의 에피소드를 통해 상류계급의 규범, 질서, 관습, 습관, 생활양식을 비틀고 희화화하였다. 상류계급의 규범이 기준이 되어있는 현실 속의 질서를 조롱한 것이다.

드라마 초반에는 가부장적 사회의 전통적인 성 규범과 성별 고정관념을 의도적으로 파기하여 시청자의 주목을 끌었다.
'재벌가 사모'인 김선화(나영희 분)는 거주지를 잃고 용두리로 쫓겨오며 하찮은 존재로 그려졌다.

계급에 대한 비틀기 시도

‘재벌가 사모’인 김선화(나영희 분)는 딸과 서민가 아들의 결혼을 “한 바구니에 담겨서는 안 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은 것”에 비유했었다. 하지만 이들이 경영권을 잃고 거주지에서 쫓겨나면서 백현우(김수현 분)의 본가(용두리)로 들어온 순간 웃음거리가 되었다. ‘재벌가 사모님’은 소똥을 밟고, 미용실에서 뒷담화를 듣고, 과수원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반말로 응대 받는다. 호기심과 선망의 대상이었던 상류계급이 하찮은 존재가 된 것이다.

이들은 서민들과 섞여 서민의 규범과 질서에 익숙해지고 융화되면서, 생존력을 키운다. 또한 서민의 질서와 규범 속에서는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내다가 위로를 받고 본령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전개는 계급 간 융화는 상류계층이 신분하락하여 생존에 위협을 받을 때만 가능하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눈물의 여왕”이 계급 간 교류와 융합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비현실적이나 시청자들은 재벌가의 몰락과 서민의 질서 속에서 서툰 그들을 보면서 희롱하면서 ‘우리가 이겼어, 우리가 잘 살고 있는 거야’라는 승리감과 안도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눈물의 여왕”은 여성을 권력의 중심부로 이동시키고 남성을 변두리에 둠으로써 그동안 가부장적 의미를 생산해 온 드라마적 장치를 파기하고, 재벌가 구성원들을 서민의 생활공간으로 유입시켜 그들의 서툰 일상을 코믹하게 재현하면서 계급질서를 풍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시청의 즐거움을 주고, 집단과 집단, 계급과 계급질서의 허구성도 들춰내었다.

드라마 전반에는 부부 관계와 결혼 가족에 관한 에피소드를 배치하고, 후반에는 로맨스에 집중함으로써, 기혼자에게는 결혼생활에 대한 통찰을, 미혼자에게는 사랑의 판타지를 제공했다. ‘사랑이란 행복한 것을 함께 하면서 달콤한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싫어서 죽을 것 같은 걸 함께 견뎌 주는 것, 땡빚이 있어도 그보다 더 한 것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언젠가 한 사람만 남겨지게 되면 다른 한 사람이 마중 나오면 다시 같이 있을 수 있다’는 메시지는 시청자들에게 영원한 사랑에 관한 판타지뿐만 아니라 결혼과 사랑이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기혼자들은 그러한 희망 속에서 안전한 연애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눈물의 여왕”이 국내 시청자에게는 성 역할규범과 결혼가족관계에 대한 통찰이, 해외 수용자에게는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더 큰 소구점이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평가해본다.

또한 미혼자는 로맨스에, 기혼자는 결혼 이야기에 더 집중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남성 중심의 혈통에 대해 가장 파격적인 인물인 홍수철(곽동연 분)을 판단력이 부족한 가벼운 사람으로 재현하여 주변 인물로 배치한 것도 텍스트에 대한 백래시를 피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었다. “눈물의 여왕”은 가부장적 관념을 비틀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성별로 정형화된 역할을 재배치한 영리하고 치밀한 텍스트다.

여성주의 서사일까?

2015년 이후 한국의 드라마에서는 ‘여성(주의)서사’가 크게 부상했고, 해외 언론들도 한국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에 관한 서사가 크게 변화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눈물의 여왕”은 그러한 텍스트는 아니다. 로맨스 드라마의 전형적인 서사의 반복이 유발하는 지루함을 보완하기 위해 로맨스물의 클리셰와 서사에서 약간의 변주가 더해진 텍스트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K-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연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결혼과 사랑의 공존이라니, 일종의 기혼자에게 희망을 준 드라마라고 볼 수 있을까?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제작진이지만 그로부터 의미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수용자다. 따라서 텍스트 분석만으로는 해당 드라마가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내는 정확한 의미를 발견하기 어렵다. 상상하건데, 시청자의 위치에 따라(문화권, 연령, 성별, 결혼/이혼 여부 등)해석과 수용이 상이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수용자들은 K-드라마의 이러한 텍스트적 특징들을 어떻게 해석할지 매우 궁금하다. “눈물의 여왕”의 텍스트적 힘을 살펴보면서, K-드라마의 글로벌 수용 및 수용자 분석에 지금 보다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끝)

작성일 : 2024년 6월

저자 소개: 고려대학교에서 언론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수용자연구에 관심이 많다. 석사 후 3년 동안 리서치 회사에서 마케팅, 여론조사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박사 후 한국여성개발원(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객원연구원, 이화여자대학교의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의 기획이사로 활동한 바 있다. 현재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이며, 한림대와 수원대에서 매스미디어와 대중문화 콘텐츠에 관해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