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케이팝은 '정신'일까 '물질'일까: 뉴진스 하니 팜(Hanni Pham), 국정감사 증언대 위 불길한 징조
정 호 재 | 아시아비전포럼 미디어헤드
케이팝은 종종, 21세기 정치경제적으로 급성장한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 문화상품’이라 묘사된다. 여기서 핵심은 문화이자 상품이라는 점이다. ‘한국 문화’라고 호명될 때, 예를 들어 한글이나 한복, 판소리와 비빔밥 등이 언급될 수 있는데, 이 같은 한국의 기저(基底) 문화는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상업화 되지만, 대중에게 ‘저작권 있는 상품’이라는 뚜렷한 인식을 주긴 어렵다. 사용자의 필요와 무의식에 의해 선택되고 소비되는 일종의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 앨범과 같은 현대적 문화상품은 기획자가 특정 의도를 가지고, 막대한 자본을 들여 가공해 낸 ‘독점적 권리의 상품(商品)’이 된다. 여기엔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여러 요소가 녹아 있는데, 당연히 판매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한번 히트하면 복제가 쉬워 제조업에 비해 수익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이 같은 저작권 기반의 문화상품은 패권국이나 여기에 근접한 강대국의 특권에 가까웠지만, 최근 교통과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그 장벽이 낮아진 것도 현실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군사력이나 거대한 인구 배경 없이 글로벌 문화상품 시장에 진입한 좋은 사례가 되기도 하고.
0. 예술인가, 상품인가?
필자가 뜬금없이 ‘정신(情神)’이냐 ‘물질(物質)’이냐는 낡은 이원론(二元論)으로 질문을 던진 배경은, 최근 케이팝 내부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하이브 vs. 어도어” 혹은 “하이브 vs. 뉴진스” 또는 “하이브 vs. 민희진” 사태의 갈등 포인트를 최대한 엇비슷하게라도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이라 변명해본다. 이번 사태(갈등)은 워낙 뿌리가 깊고, 심지어 공개할 이유 없는 기업 내부의 비밀스러운 약속이나 계약 내용을 밑에 깔고 진행되기 때문에, 외부인이 갈등의 기원과 본질을 파악하기 까다롭다. 그래서 무언가 대립적 틀거리로 문제를 제기해 본 것이다.
양측의 갈등은 뉴진스 데뷔 이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공식적으론 2024년 4월말 하이브가 자회사 “어도어”에 대한 감사권 발동을 공개한 직후 세상에 알려졌고, 이후 양측의 충돌은 유례 없을 정도로 진흙탕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안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법률가의 개입 없이는 손쉽게 알기 힘들 정도의 복잡한 지분 내용, 소송전으로 비화된 카톡 대화내용 공개, 하이브라는 거대 멀티 레이블 엔터회사의 경영전략, 그리고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구두(verbal) 약속’ ‘법적 계약’ 그리고 ‘옵션과 경영권 약속’이라는 복잡한 사안 때문이다. 여기에 진영 논리에 휩싸인 미디어의 편향된 해석과 양측 팬덤의 후퇴 없는 “적극적 개입”도 그 복잡성을 더 꼬아 놓았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주된 관점은 “뉴진스-민희진 찰떡궁합인데, 그래서 더욱 아깝다” vs. “막말하며 덤벼드는 민 대표의 태도와 탐욕이 납득 안된다”라는 양분된 태도으로 정리될 정도로, 양측이 잔뜩 날선채로 최소한의 합의점도 못찾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선 최근 등장한 하나의 사건을 중심에 놓고, 양측의 고민과 갈등의 의미를 유추해 본다. 지난 10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에 호주 출신 멤버 하니가 증인으로 참석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1. 아시아의 얼굴로
필자가 생각하는 케이팝의 가장 위대한 점은 “한국 대중음악을 바탕으로 출발했지만 세계적 팝 흐름을 적극 받아들인 것은 물론, 멤버 구성 측면에서 아시아를 대표할만한 지역 대표성을 확립한 점”이다. 이는 과거 중화(中華)와 일제(日帝)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한, 21세기 한국문화가 이룩한 첫 "아시아적 실천"이자 "진보"라고 칭찬할 만하다.
우선, 케이팝의 성립엔 전세계 팝 시장을 장악한 “미국 팝 문화”를 발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미래가 어두웠던 아시아 및 제3세계 대중문화 시장의 절박함이 깔려있다.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 대중문화 시장을 압도한 것은 영어로 된 팝송이었고, 한국 창작자들은 이러한 미국 문화 그늘 속에서 생존을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현실적 대안은 미국의 문화를 가장 잘 알고 몸소 체화한 ‘재미교포’ 뮤지션들을 역수입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문화가 자연스럽게 연습생 제도와 맞물리면서 아시아의 유능한 인재들을 한국의 아이돌 시장에 대거 참여시키는 역내(域內) 세계화를 가장 처음 시도한 문화 장르가 된다.
여기엔 노래라는 장르가 특별하게 ‘한국어’ 구사능력과 ‘한국 문화’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들어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한국 문화를 100% 체득한 한국인이 아니라면 주연배우 자리를 따낼 수 없다. 이것은 감독이나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에서 20년을 자란 교포일지라도, 외모만 한국인이라면 한국에서 가수나 작곡가로 활약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다.
미국서 ‘교포’를 역수입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거의 같은 논리로 일본이나 중국 혹은 태국에서 인재를 수입해 아이돌 가수로 활약하게 만드는 것의 장점이다. 당연한 일이다. 케이팝의 핵심은 방송 시스템과 한국인 프로듀서들이 만들어 내는 특유의 로컬 감성이다. 외국인 멤버가 이 틈바구니에서 생존하면, 케이팝 팬들이 그 나라로 확장되는 효과를 불러왔던 것이다.
이 같은 역내 글로벌 문화는 케이팝 세계화의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는데, 케이팝 1세대를 대표하는 S.E.S의 경우 유진은 괌에서 자란 교포, 슈는 재일교포 구성으로 “물 건너 온 외국팝” 느낌을 줄 만했다. 특히 케이팝3세대(2014년~2020) 부터는 거의 모든 아이돌 그룹에 아시아계 인재들이 포진한다. SM과 JYP에는 중국인과 홍콩인 태국인 멤버들이, YG에는 영어권 출신 인재들이 대거 포진한다. 특히 트와이스에는 대만인 쯔위와 일본인 3인방(미나-사나-모모)이 있었다. YG가 최근 내놓은 베이비몬스터라는 걸그룹에는 오히려 한국인이 소수인 현실에 이르렀다.
2. 음방무대 아닌 국회에
뉴진스 하니는 2004년생으로 올해로 꼭 20살이 되었다. 멜버른에서 나고 자란 베트남계 호주인이다. 그녀는 한국으로 건너와 짧은 시간 안에 케이팝 스타로 발돋움한 것도 모자라, 어쩌다가 한국의 국정감사에까지 초청(?)되어 증언까지 하게 되었나? 아마도 외국인 케이팝 스타가 국감장에 등장한 일은 사상 최초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와 소재가 암담하고 충격적이다. ‘직장 내 괴롭힘(따돌림)’을 둘러싼 갈등이다. 하니는 하이브 내 소속 레이블 ‘어도어’의 아티스트로 2년 넘게 활약 중인데, 최근 뉴진스 멤버 5인을 향한 따돌림이 심해졌다는 것. 그녀는 증언대에서 “인간으로서 존중하면, 적어도 직장내 괴롭힘과 따돌림 문제는 없지 않을까요?”라고 울먹이면서 고충을 토로한 것이다.
직장 내 따돌림이라는 건, 한국 직장에서 장기간 근무해본 사람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만한 내용이다. 파벌에 따른 이합집산(離合集散), 이전투구(泥田鬪狗), 직급이나 서열에 따른 ‘갈굼’이나 ‘태움’ 등 말이다. 주류(主流) 조직이 아닌 팀에서 큰 성공이라도 거두면, 주변의 질시와 견제는 이만저만 아니다. 이것도 그나마 최악은 아니다. 최고 보스, 혹은 오너의 눈에 찍힌 임직원의 경우, 실적이라도 평범하면 언제라도 책상이 사라질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같은 회사 직원까지 파벌에 따라 상대방 팀원까지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눈치 주며, 심하게는 퇴사를 강제하는 일종의 “괴롭힘”이 더 큰 문제다.
한국의 전근대적인 직장내 상황이 20살 미만의 아이돌 그룹과 외국인 멤버를 향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충분히 가슴아픈 일이다. 사실이라면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CCTV나 혹은 블랙박스를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되지는 못했다. 회사 내 CCTV에 최첨단 마이크 기계가 달려 있지 않는 한, 건물 내 모든 대화가 오디오가 기록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이브 측은 하니가 잘못 알아들었거나, 상황을 오해했다는 입장이고, 뉴진스 측은 CCTV가 일부 지워지는 등 당시 상황을 정황이라도 증명할 장면이 일부 삭제되었다는 주장이다.
당시 사건에 충격을 받은 뉴진스 멤버 5인은 한 달 전 긴급 라이브 방송을 통해, 자신들이 아티스트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우리를 싫어하는 것 같다, 우리를 자식처럼 동생처럼 예뻐했던 민희진 대표님을 돌려달라고 항의하면서 문제가 공론화되며, 결국 국회까지 움직이게 되었다.
3. 10년 전 ‘미-사-모’
JYP의 걸그룹 트와이스는 2014년에 데뷔해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 일종의 신드롬적 인기를 끌며 케이팝의 역사에 남을 아이돌이 되었다. 2010년 이전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그리고 걸그룹 “카라”가 일본에서 큰 인기몰이를 하며 케이팝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후 ‘독도’와 ‘위안부 사과’ 문제로 한일간 정치적 갈등이 심해져 케이팝과 케이드라마의 인기가 시들한 상황이었는데, JYP는 무려 일본 인재 3人을 오사카서 모셔와 연습생으로 길러 일본으로 재수출하는 전략으로 일본 내 케이팝 붐을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미래가 불확실한 케이팝 연습생이라도 되기 위해 오디션에 참가하고 사재를 털어가며 서울로 유학을 오는 게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2010년대초 일본인 중고등학생이 한국에 케이팝 스타가 되기 위해 연습생이 된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었다. 물론 그때도 케이팝의 인기는 아시아에서 상당해 엔터 3사의 연습생이 되겠다고 찾아오기도 했지만, 보통은 엔터3사가 아시아에서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에, 일종의 장학생 개념으로 선투자하는 사례였다. 한국이 뚜렷이 중국과 다른 아시아 나라보다 잘사는 경우이기도 했고.
하지만 트와이스 일본인 3인방 ‘미나-사나-모모’의 경우는 꽤나 특이한 경우였다. 회사도 데뷔를 약속하지 못했고, 일본 정규교육을 포기하고 원격으로 검정고시를 치러야 했으며, 막상 데뷔를 한다고 해도 얼마나 큰 보상이 주어질지 그 어떠한 약속이 돼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 셋은 고등학교 졸업을 포기하고 낯선 서울로 케이팝 유학을 감행했고, 결국 10년 뒤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 케이팝 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필자가 보기엔, 이들 케이스는 한류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케이팝이 일본의 10대 소녀들을 서울로 끌어당길 정도의 매력과 포용력이 없었다면 절대로 세계적인 문화상품으로 거듭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이들 10대 일본인 소녀들의 꿈과 실력을 응원하고, 이들이 연습생으로 3~4년 넘게 고생하는 동안, 인간적인 대우와 후원이 없었다면, 이들은 절대 그 시간을 감내하지 못했을 것을 감안하면, 케이팝의 시스템의 선진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4. 저 멀리 호주에서
하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나고 자란 일종의 서양권 케이팝 팬 출신이다. 유튜브에 커버 댄스를 올리는 케이팝 댄스팀으로 활약하다가 2019년 하이브에서 연 글로벌 오디션을 합격해 주저 없이 한국 행을 선택했다. 그녀는 널리 알려진 대로 베트남계로,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기록한 케이팝에 백인 호주인보다는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 놓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에도 그녀가 2020년 10대 후반 시절에 멀리 ‘호주’에서 한국에 왔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녀가 나고 자란 멜버른과 서울의 거리는 8000km가 넘는다. 한반도 인근 중국 베이징이나 일본 오사카와는 차원이 다른 지리적 거리다. 한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호주 청소년이 한국 행, 그것도 아무런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연습생에 지망한다는 것은 웬만한 강심장 없이는 불가능 하다.
지난 30년 넘게 케이팝이 쌓아온 명성과 국가브랜드, 그리고 정교하게 짜인 연습생 육성과 평가 시스템이 없었다면 도전하기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학생이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과 비견된다. 그만큼의 가치가 있음을 한국의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쌓고 신뢰감을 많은 예비 케이팝 스타들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제 호주는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도 케이팝 스타에 도전하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하니는 뉴진스로 데뷔하자마자 센세이션을 불러왔으며, 일본에 데뷔한 올해는 ‘푸른 산호초(青い珊瑚礁)’라는 노래로 한일 양국에 일대 신드롬을 불러왔다. 뉴진스의 메인 댄서이자 청량감 넘치는 목소리와 외모로 뉴진스 팬덤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블랙핑크에는 태국인 “리사”가 있었다면, 뉴진스에는 호주인 “하니”가 있다는 얘기가 나왔으니. 그러나 오히려 노래로 성공한 이후에 이정도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니는10월 6일생이니, 이제 갓 만 스무 살이 된 것을 감안하면 드라마틱한 성인식을 치른 셈이다. 케이팝의 가장 후진적인 측면을 외국에서 온 소녀가 단박에 알아채고, 용기내에 국회로까지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5. 거대한 성공, 민희진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은, 외부인은 쉽게 예상할 수 없던 일종의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2022년 여름에 데뷔한 뉴진스는 이후 벼락보다 더 빠르게 성공을 거두며 이후 케이팝 4세대를 대표하는 걸그룹으로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내놓은 앨범마다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글로벌 명품회사들의 앰버서더는 물론,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광고모델로 모시기 위해 쟁탈전이 벌어졌을 정도다. 국내 최고 금융기업인 신한은행의 전속모델, 아이폰은 14-15-16 모두 뉴진스를 메인 모델로 썼다. 글로벌 기업 애플이 선택한 케이팝 걸그룹이 "뉴진스"라는 대목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심지어 패러디도 속출했다. 조계종의 새로운 스타 "뉴진_스님" SNL의 국립아이돌"뉴진숙" 등은 모두 뉴진스를 패러디, 혹은 오마주한 것이다. 올해 2024년의 일본 데뷔는 그야말로 파격의 연속이었는데, 데뷔 최단기 도쿄돔 입성을 성공시키며, 정식 콘서트가 아니라 양 일간의 팬미팅이었는데 9만명을 끌어당긴 것이다.
고작 걸그룹 한 개를 보유한 2년차 신생기업 ‘어도어’의 년간 매출이 천억을 돌파하고, 회사는 이들을 위해 초단기로 1인당 약 50억원의 정산금을 해주었다고 하니, 상업성 측면은 물론, 음악성, 브랜드 파워, 뭐하나 빠지지 않는 초일류 아티스트로 미래가 보장된 데뷔 최고의 2년을 보낸 것이다. 여기에는 뉴진스를 만든 민희진 PD의 공이 절대적이다. SM 출신으로 케이팝 성장의 20년 산 증인인 그녀는 자신의 딸을 키우듯 뉴진스를 만들어 냈고, 보란 듯이 초대형 걸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케이팝에서 프로듀서와 아티스트 사이의 끈끈한 유대감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케이팝 가수들의 데뷔 시점은 갈수록 빨라지고, 자연스레 연습생의 경우 중학교 2학년부터 시작할 정도로 준비기간을 감안하면 분명히 10대 청소년을 상대로 한“교육” 기능을 포괄하기에 더욱 그렇게 변모했다. 프로듀서는 마치 학부모이나 학원 선생님 같은 입장에서 하나하나 가르치고 컨셉을 입히고, 엔터업계 산업을 일일이 소개해가며 데뷔를 준비시키기 때문에, 연습생들이 바라보는 프로듀서나 사장의 위상은 선생님과 학부모를 합친 그 이상의 존재가 된다.
여튼, 민희진은 능력을 입증해 냈고, 뉴진스 멤버 5명은 초특급 케이팝 스타로 롱런할 실력을 입증했다. 이렇게 인기를 초특급 스타의 경우는 회사의 보물로 우대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회사내 괴롭힘과 은따(은근 따돌림)의 피해자가 된 것일까?
6. 성공이 낳은 분쟁
뉴진스가 유명해질수록 소속사 어도어의 가치는 급상승했다. 심지어 2023년은 케이팝의 전성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엔터 회사들의 주가가 급등한 시기이기도 했다. 2023년 여름, 그리하여 어도어의 가치가 1조 원대 이상일 것이라는 . 하이브가 만들고 투자한 어도어의 지분을 대략 80% 이기 때문에, 약 18%의 스톡옵션(풋옵션)을 약속받은 민희진의 재산은 최소 1천억원이라는 계산도 나왔다. 한마디로 너무도 좋은 시절이었다. 뉴진스는 하이브가 투자해 만들고, 멤버에 대해선 7년, 뉴진스 IP에 대해서는 100년 가까운 기간 저작권을 하이브가 갖고 있기 때문에, 뉴진스를 품은 하이브의 가치도 급상승했다.
실패해도 분쟁이 생기지만, 예기치 않던 대성공에도 분쟁이 따르기 마련이다. 뉴진스가 딱 그런 셈이 되었다. 케이팝에 돈과 자본이 몰리는 시점. 당연히 2023년 최고의 걸그룹 뉴진스를 만든 어도어에 각종 투자제의가 밀물처럼 몰려왔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 확실히 민희진 전 대표는 "걸그룹 장인"이었지만, "초보CEO" 였다. 자신의 회사 폰으로 버젓이 카톡으로 투자 제안을 받고 이를 지인들과 상의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그녀는 이러한 모의를 최대한 증거를 안 남기고, “은밀한 밀실(密室)"에서 해야 하는지를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술도 안마시고 골프도 안치고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녀가 겪은 SM 엔터에서의 15년은, 그러한 조심성이 없어도 될만한 1인 중심 문화였기 때문일 수 있다. 거대 기업 하이브의 감사가 시작되자마자, 그의 폰에 남긴 기록이 하이브에 의해 공개되면서 궁지에 몰린다.
민희진 전 대표의 대규모 외부투자 유치 및 (하이브에서의) 탈주 논의가, 상상 속 장난인지, 혹은 희망 섞인 도상(圖上) 계획인지, 아니면 진지한 탈주 논의인지가 논란이 되었다. 애당초 불가능하니 장난일 수도 있고, 희망사항일 수도 있고, 동시에 시장 상황만 받쳐 준다면 실현가능한 계획일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감사"가 공식화되고, 하이브와 민희진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대표이사 해임을 결행하기에 이른다. 이사회가 움직이자 취임 전 있던 임기 약속이나 스톡옵션 계약 모두 허공에 사라지고, “배임” 행위를 놓고 상호간의 극단적인 갈등만 남은 것이다. 최근 하이브는 민희진을 다시 등기 이사로 복귀시키긴 했지만, 민 전대표가 뉴진스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위치에 서지 못할 것은 거의 확실해 졌다.
7. 기른 정(情)과 계약의 충돌
이러한 대치 속에 침묵을 지킨 뉴진스 멤버들이 확실히 정한 마음을 공개한 시점은 9월 11일 벌어진 “뉴진스 긴급 라이브 방송”이다. 하이브 측에 할 얘기가 있다고 시작된 이날의 급작스러운 게릴라 방송은, 멤버들이 입을 모아 울먹이며 “우리 대표님을 복귀시켜 달라”는, 즉 확고한 엄마(민희진)편을 들면서 본격적으로 갈등에 개입하며 사건을 사회적으로 확대시켰다. 경영권 분쟁에 아이돌 멤버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사뭇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뉴진스 5인은 자신들이 하이브에게 당한 부당한 처우들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자신들이 그룹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하면서 “하이브가 뉴진스를 위한 회사인지 의심스럽다”라고 항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하니가 받은 스탭에 의한 폭언 사건이 사례로 등장했고, 이 발언의 여파로 국정 감사에까지 불려간 것이다. 케이팝 대표 아티스트가 갑질을 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갓 성인이 된 외국인 멤버가 소속기업 스탭에 의해 부당한 처사를 했다는 얘기를 일찍이 들어본 바 없어 놀랍기만 하다.
상당수 케이팝 팬들은 이번 사태가, 케이팝이 처한 거대한 위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돈이나 지분 싸움은 오래된 고질적인 병폐이기는 했고, 사실은 익숙한 모습이다. 원래 돈이 되는 사업엔 분쟁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케이팝의 가장 핵심인 “아이돌 문화의 근간”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아이돌 산업의 본질은, 꿈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고 결국 무대에서 빛이 나는 순수한 소년 소녀 그 자체의 “빛남”이다. 당연히 그런 스타들의 뒤에는 수없이 많은 조력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노래를 만들어 주는 작곡가는 물론, 의상을 준비하고, 머리스타일을 만져주고, 또 브랜드를 관리해주는 기획자나 실무자 스탭들이다. 물론 “자본”의 투자 역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모두가 일심동체로 뭉쳤을 때 하나의 스타가 빛날 수 있는 법인데, 서로가 자신의 공이 결정적이며, 자신의 기여도가 크고, 너가 아닌 나의 자산이라 목소리 높이며 자신의 기여도과 향후 주도권을 챙기는 모습만 내비친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작 존중 받아야할 아이돌(아티스트)의 자리는 위축되고, 거대한 자본기업 내부의 알력에 의해 무시당하고, 차별당하는 존재로 급전직한 것이다. 하이브 건물 내에서 벌어진 '하니'에 대한 막말이 바로 그러한 사례가 되겠고.
필자는 양비(兩非)론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인데, 이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양비론으로 흐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이브와 어도어(혹은 민희진) 모두가 뉴진스를 학대하고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당연히 뉴진스를 낳은 건 “아버지 하이브”이고, 키운 건 “어머니 민희진”이지만, 막상 거대한 결과물로 돌아오니 모두가 결과물에만 눈이 멀고, 조 단위 기업가치와 수익성에만 매몰된 모양새니 말이다.
8. 아티스트인가? 상품인가?
여기서 다시금 처음의 문제제기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케이팝은 물질인가, 정신일까? 예술인 것일까, 혹은 상품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실제로 케이팝은 확실히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뉴진스 사태가 확산되자, 한국의 대부분의 미디어들은 하이브의 주식 가치를 언급하면서 이번 사태를 조망하는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BTS가 없는 하이브에서는 걸그룹이 중요한데, 어도어 실적이 좋았느니, 민희진이 잘했느니, 허장성세(虛張聲勢)이니라며 사태의 추이에 따른 주가 전망치을 끼워 넣는 보도 태도말이다. 정작 아티스트는 회사 내에서 따돌림과 멸시를 당하고 있다는데, 하이브의 주가나 어도어의 미래가 어떻게 계산기 안에 들어 올 수 있을까?
그렇다면 민희진(전 대표)는 피해자이며 죄가 없을까? 앞서 언급 대로 그렇지 않다. 민 전대표는 사실상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장본인이다. 자신이 성공시킨 거대한 성공에 도취되었는지, 거대한 스톡옵션을 받으며 자신이 서명한 “경업(競業)금지 조항”에 옴짝달싹 못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4월 25일 공개 기자회견 이후 잇다른 무리수를 선보였다. 하이브 합류 전에 받은 약속과 이후의 계약 내용이 너무 달라졌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이해는 가지만, 기업 일이라는 게 100% 신의(信義)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경제적 보상(報償)이라는 게 주어지니 말이다. 아무리 성과가 좋더라도 지분 18%로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싸움 와중에 너무도 많은 적(enemy)을 만들고 말았다. 본인이 엔터업계, 특히 팬덤의 기획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안 될 정도의 실수임에 분명하다.
오늘날 케이팝 산업의 주요 지분을 차지한 하이브의 죄(罪)도 적지 않다. 거대 자본의 투자를 받게 된 하이브는 이같은 큰 몸집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혹은 디즈니나 넥슨 같은 거대 IP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부단히 경영전략을 세우고 수정하고 갱신하는 과정에서 막상 가장 소중한 ‘케이팝의 정신’을 망각한 모양새다. 하이브가 수많은 IP를 관리해야 하고, 이를 다시2차 저작물이나 게임 등 멀티유즈 전략으로 확산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결국 노래와 음악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사람이 잊은 것이다. 엔터회사, 특히 케이팝 회사라는 건 결국 청소년과 피터팬과 같이 젊게 살고픈 성인들에게 “꿈을 파는 공장”이어야 하지만, 이번 하니의 국정감사 사태로, 꿈은 사라지고 아주 평범한 “제조 공장”이라는 사실만 입증하고 말았다. 탁월한 성과를 낸 경영자 “민희진”을 포용하지 못한 것도 결정적 실책에 속한다.
필자를 포함한 케이팝 팬들의 죄도 중하다.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음방이나 빌보드에서 더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다른 아이돌 보다 더욱 빛나기만을 바랬다. 결과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면서 케이팝의 오랜 전통을 깨뜨린 게 지난 반년의 뉴진스 사태였다. 지금도 온라인 게시판과 팬덤 공간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갖은 욕설과 험담, 그리고 정치색까지 뒤섞인 온라인 대혈투가 진행중이다. "민"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면 “민 천지”, 하이브의 결정을 지지하면, “방 천지”라는 혐오 댓글이 주르륵 달릴 정도다. 21세기 현대 대중음악과 댄스의 아름다움을 상징한 “케이팝”의 하나의 정점이던 경영자-프로듀서-아티스트가, 서로가 서고를 돈과 탐욕 덩어리라고 비난하며, 끌어내리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번 사태가 케이팝 내리막의 서막”이라고 일갈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9. "화음이 있어야..."
안타깝게도 우린 모두가 잘못된 진단과 해석을 내렸는지 모르겠다. 결국 답답해진 나는 ChatGPT에 답을 구해 본다. 누가 옳고 그른지가 아니라, 어떠한 해법이 있겠는지. ChatGPT도 뾰족한 답이 없었던제, 내게 K-pop이 문화적 재화로서 갖는 정신적, 문화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격언을 하나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을 던진다.
"리듬이 화합하는 곳에서, 정신은 무언가를 초월한다; K-pop은 음악을 일종의 '정체성'으로 바꾸고 있다("Where rhythms unite, spirit transcends; K-pop turns sound into shared identity)."
인공지능(AI)이 손수 창작해 준 이 격언은 K-pop이 단순한 음악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아니라 공동체를 만드는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정말이지 놀라운 인공지능이라고 묘사할 수 있겠다. 실제로 케이팝 팬들은 역경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치를 하나로 묶어, 케이팝을 전세계 주류 장르의 하나로 급부상시켰다. 아이돌과 기획자, 그리고 팬들의 꿈이 하나로 일치한 것이다. 하지만, 주류에 진입한 케이팝은 “물질적 탐욕”에 의해 자멸하는 중이다. 국감에서 하니는 “여기에 말하지 않으면 조용히 넘어가고 또 묻힐 것이라는 걸 알아서 나왔다”며 “(가요계) 선후배·동기·연습생이 이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다”고 덧붙였다.
케이팝은 현재 침몰하고 있는 것일일까. 뉴진스는 케이팝의 미래를 보여주는 카나리아 같은 존재처럼 비친다. 뉴진스 하니가 증언대로 불러간 상황은 아주 크고 어두운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끝)
필자 정호재: 기자 출신으로 동남아시아 정치와 문화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을 주로 연구해왔다. 2020년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를 썼고, 현재는 국내 첫 아세안 중심의 아시아 씽크탱크 “아시아 비전포럼” 미디어파트 헤드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