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침체기 한류 비장의 무기, '아이유'의 월드투어: 한류의 미래에 대한 오래 준비된 응답

오늘날 가수 아이유(IU)는 거의 모든 측면에서 완성형 케이팝 스타로서의 모델을 제시한다. 지난 17년 아이유의 모든 행보가 바로 한류와 케이팝의 “최선”이며 “최전선”이라는 증거가 된다.

Bluedot Admin

정호재 | 아시아비전포럼 미디어파트헤드


필자는 가수 아이유(31)의 팬이 아니다. 그녀의 앨범을 사본 기억이 없으며, 콘서트에 참석해본 경험 또한 전무하다. 그러니까 그녀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직접 느껴 본 적은 없다는 얘기다. 또한 그녀의 수많은 히트곡에 뚜렷한 관심도 기울이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엇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보다 세심하게 기억을 되살리면 2014년 "소격동" 2017년 "밤편지" 무렵에 그러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더랬다. 데뷔 초 ‘좋은날’과 ‘너랑 나’ 시절의 고음을 내지르는 귀엽고 야무진 아이돌로서 한때나마 그녀를 좋아하긴 했지만, 이후 감수성을 앞세운 그녀의 서정적 노래엔 애써 무심했다. 연기 겸업도 그리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못해서 본방 사수를 해보지도 못했다. "프로듀사(2015)" "보보심경*(2016) "호텔 델루나(2019) 등의 드라마는 아예 시청조차 안했다.

이렇게 밝히면 적잖은 비난을 받을 수 있겠다. 당신 같은 무지렁이가 어떻게 우리 시대 최고의 엔터테이너인 "이지은" "이지금"을 논할 수 있는가, 자격미달 아닌가, 최소한 작품 감상은 기본으로 하고 분석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1. 이웃집, 다재다능 소녀

당연한 지적이다. 필자는 성실한 평론가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애써 무심했을 뿐 지켜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유는 지난 17년간 한순간도 쉼없이 우리 주위에서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친숙한 존재를 놓고 다시금 그녀의 작품과 성과를 되짚고 칭송하는 것은 낯간지러운 일이다. 그보다는 워낙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겨운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을 의식하고 다시 살핀다면 최소 몇 년의 시간도 부족할 지 모른다.

또한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분출하는 ‘용안’을 영접한 적은 없지만, 팬데믹 이후 그녀의 첫 대형 콘서트가 열린 잠실주경기장(2022년 9월 18일)을 찾아가 현장 주변을 한 시간 가량 서성인 적은 있다. 육중한 콘크리트 기둥 사이로 희미하게 비집고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분명 듣긴 했던 것이다. 창공을 수놓은 드론으로 형상화한 “공주님” 모습까지 목격할 수 있었다. 같은 장소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았는데, 그들은 아예 의자와 돗자리를 펴고 감상을 하고 있었다.

2016년 이후 아이유 콘서트 티켓을 구한다는 건 일반인이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상의 영역은 아닌 탓도 있다. 시간과 열정 그리고 운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일종의 특혜였다. 왜 그런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다. 한국인 가운데 아이유를 모른다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다. 일종의 한국인 언어구사자 전체의 “다재다능한 이웃 사촌 소녀”의 이미지를 아이유는 뿜어낸다.

대중문화 평론가가 아닌 온전한 시청자로서 필자는 아이유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기가 너무 싫었던 경험을 몇 차례 한적이 있다. 아마도 그녀가 도시의 하층민, 하이에나처럼 등장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를 열성적으로 보고 난 이후의 태도 변화다. 어찌보면 나는 드라마 속 "이지안(李至安: 편안함에 이르다)" 캐릭터에 지나치게 몰입했던 것이다. 자연스레 그녀의 밝고 뽀대나는 역할을 차마 다시 볼 자신이 없어졌다.

2. 슬픔의 표상, 이지안

"나의 아저씨"는 한류 드라마 역사에서 손꼽을 만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대작 문학인 "카라마조프네 형제”나 "죄와 벌"의 위상에 비유해도 좋겠다 싶을 정도. 그녀가 연기한 이 작품 속 비참한 장면을 보면서 나는 크게 좌절했고, 그녀의 극적인 복권과 부활에 아이처럼 기뻐했다. 지금도 박동훈 부장을 향해 “아저씨가 행복했으면 했어요”라고 울먹이는 이지안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2023년 말, 나의 아저씨 박 부장(이선균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동적으로 “이지안”을 떠올렸다. 현실 속 그녀는 어떤 모습으로 슬퍼하고 있을 지 상상이 되니 너무도 안타까웠던 것이다. 동시에 그녀가 그 어떤 언론과도 인터뷰하지 않기를 바라지는 마음도 커졌다. 그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상황일 수 있다. 마치 드라마의 비극적 설정이 현실화되는 모양새이니 말이다.

이지안이 ‘대성통곡’했다라는 확인 안 된 전언마저 듣고 싶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녀는 당시의 비극적이고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그 어떤 반응도 내비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녀가 혜화동 장례식장을 찾지 않았다는 점을 아쉬워했지만, 그런 이들은 소수에 그쳤고, 많은 이들이 그녀의 결정을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박 부장과 이지안의 애틋한 관계는 어떻게든 보호받아야 된다고 믿는 사람이 훨씬 많았던 것이리라. 서론이 길었지만 그러니까, 필자 역시도 십 수년간 아이유의 곁에서 그녀의 활동에 함께 울고 웃은 시청자라는 얘기를 애둘러 표현한 것이다.

3. 서른 한 살의 거장

오늘 이 순간, 아이유를 글로 묘사한다는 것은 글쟁이 누구에게라도 지나치게 버거운 일이 되었다. 비평의 대상으로서의 아이유는 너무 크고 무거운 존재라는 얘기다. 그녀의 나이가 고작 31세임을 감안하면 쉽게 받아 안기 힘든 현실이다. 오늘날 아이유를 대하는 업계 모든 관계자의 반응이 대개 가요계 거인이자 거장(巨匠)을 대할 정도다. 특히 10대 20대 어린 케이팝 스타들이 “가장 롤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이 아이유”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공인된 사실이다.

업계가 그녀를 "거장"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첫 메가 히트곡 2010년 "좋은 날" 때부터 이미 완성형 연예인의 향기를 뿜어낸 장인이었을만큼, 그녀에게 "성장"이라거나 "성장통" 같은 표현을 쓴 기자나 평론가도 전혀 없었다. 동시에 이 같은 그녀의 압도적인 위상과 퍼포먼스는 그녀에 대한 글을 쓰기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왜 그럴까? 서른 살 초반이면 요즘 젊은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첫 취업을 하더라도 그리 늦은 나이라고 타박을 듣지 않는다. 2008년 대략 15살(중3)의 나이에 연예인 생활을 시작한 아이유는 이미 17년차의 중견 연예인을 훌쩍 뛰어 넘어 거장으로까지 거듭난 것이다. 천직이라고 해야할지, 천재적이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밖에도 아이유 관련 글을 쓰기 어려운 이유는 여럿이다. 크게 두가지 이유를 추가로 꼽히는데, 1) 놀라울 정도의 꾸준함과 높은 완성도 2) 한국적 색채를 갖추고 있다는 대목이다. 두 가지 이유 모두 "아이유"를 논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오늘날의 한류를 이해하는 주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

올 한해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북미 주요 도시에서 펼쳐지는 아이유의 월드투어 <HEREH>는 전세계 한류 팬들 사이에서 뜨겁고 커다란 반향을 이끌어 내고 있다. 
2022년 5만 관중이 꽉 들어찬 잠실주경기장 콘서트에서의 "드론라이트"

4. 다작(多作), 높은 작품성

아이유는 17년차라는 연예활동 시간을 중단 없이 별다른 논란 없이 활동한 몇 안 되는 예능인 가운데 한 명이다. 장르와 매체에 한계를 두지 않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데, 보통 영화에 나오는 사람은 드라마를 기피하고, 가수인 경우는 연기나 예능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아이유는 가수, 예능, 드라마, 영화, 또 최근의 플랫폼인 유튜브까지 전방위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작품을 선보이는 스타이다.

그녀의 직업이"가수"라는 점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다. 그녀가 지난 17년간 생산한 앨범과 노래의 양은 깜짝 놀랄 만큼 많다. 대략 정규앨범, 미니앨범, 드라마 OST 앨범, 피처링 앨범 등 30장에 이르고 노래의 개수는 당연하게 수백 여개에 달한다. 히트곡 수는 연도별로 수 개씩 존재하니 이것을 제대로 카운팅해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다. 요즘엔 그냥 "나무위키" 아이유 활동편을 보세요, 라는 표현이 가능할 수 있겠다.

히트한 예능 프로그램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도 부질없어 보인다. 지난 17년간 공중파 3사 예능에서 아이유를 캐스팅 안한 프로그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수로서의 아이유는 이미 “명예의 전당”급 존재감을 뿜어내며, 드라마와 영화 부분에 이르러서야 어느정도 작품명 언급이 의미가 있다. 이 같은 불평은, “대중예술인 아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지나치게 많은 노력과 품이 든다는 얘기가 되고, 동시에 "팬이다" "아니다"라는 논란이 불필요한 근거도 된다. 아이유는 그냥, 유재석-강호동과 동시에 언제나 한국인 옆에서 이웃집 동생처럼 한류의 발전에 기여해 온 인물이다.

평론가에게 부담을 안기는 또 다른 이유는 그녀가 이처럼 수많은 감독과 PD들의 사랑을 받은 근거가, 매번 자신의 역할, 예를 들어 판매량 및 시청률 측면을 너무도 만족스럽게 충족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유가 등장한 작품 가운데 실패한 작품이 거의 없다. 모난 지점이 없는 육각형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딱히 비판할 대목이 없었다는 뜻이다.

실제 근래 아이유에 대한 비평은 대개 “찬사” 일색인 경우가 많다. 어떻게 더 최고의 수식어를 붙여야 할지 고민이 엿보이는 경우가 많다. 기자나 평론가가 뛰어난 예능인을 칭찬하는 것은 그들의 직업상 당연한 일이지만, 한 사람에 대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칭찬을 이어가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한 것은 아이유의 활동에 대해서는 이제 비판적 기사나 비평이 줄었다는 것. 자연스레 아이유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쉽지 않아 보인다.

5. 국내용 혹은 토종스타?

여튼 여기까지는 분명히2022년 엔데믹 이전까지의 상황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이유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녀에게 향한 단 하나의 소박하거나 억지로 소환환 비판 지점은 “국내용”이라는 수식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유는 지난 10년 넘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 가수이자 배우라는 점은 분명했지만, 한류스타로 불린 적은 없었다. 2010년대 분명히 아이유(IU)는 중화권과 아시아에서 탄탄한 인기를 구가한 스타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가 “한류스타가 아니라”라는 인식은 “한류”의 어제와 오늘을 설명할 때 흥미로운 분석 지점이 될 수 있다.

“아이유는 어째서 한류스타가 아닐까?” 한류스타에 대한 정의는 뚜렷하지 않다. 보통은 한국 국적의 젊은 대중예술인으로 해외에서 크게 히트한 작품이 있고, 이로 인해 현지 국가 입국 시 미디어나 대중들의 선풍적인 주목을 받거나 나아가 티켓 파워 가능성을 가진 현상을 총칭하는 표현으로 통한다.

예를 들어 가수 쪽에선 K팝 아이돌 가수로 현지에서 대규모 콘서트가 가능한 경우이고, K 드라마의 경우 해외 현지에서 선풍적인 시청률을 기록해, 이를 발판으로 유료 팬 미팅을 열어도 좋을 만큼의 상품성을 갖는 경우다. 이를 뭉뚱그리면 한류스타란 일종의 “수출용” 이미지를 깔고 있다는 얘기다. 즉, 아이유는 수출용보다는 내수용이라는 인식이 어느정도는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아이유도 아이돌 가수들과 엇비슷한 나이부터 케이팝 씬에서 장기간 활약했고, 심지어 작심하고 일본과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 노력했던 기간도 있다. 또한 2014년 이후엔 히트 드라마가 많이 때문에 한류스타로 불리는 것은 전혀 어색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유는 분명히 아이돌 중심의 "한류스타"와는 다른 행보를 걸었다. 앞서 언급한 수없이 많은 히트 드라마와 예능이 해외에서 히트한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한국 엔터산업"의 듬직한 구성원 중의 하나라고 느꼈지, 즉, 한국 스타로 여겼지 “수출용” 문화상품으로는 인식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6. 기획사 시스템의 대척점

혹은 그녀가 기획사가 키운 연습생 출신이 아니라 그럴까? 그룹 가수가 아닌 솔로 가수라서 그런 것일까? 혹은 우리가 그녀가 외국어를 잘하지 못할 것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같은 단편적 요인들이 영향을 끼쳤다기 보다는, 종합적으로 아이유에게는 분명한 "토종(土種)"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일 수 있다. 조용필 나훈아 선생이나 혜은이, 강수지처럼, 예능으로 따지면 유재석이나 강호동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꼿꼿하게 한국어로 한국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존재 말이다.

아이유에게는 케이팝이나 케이드라마가 자본이익을 위한 투자나 시청률이라는 시장 경쟁을 통해 배출한 “기획된 스타”라기 보다는, 스스로의 역량으로 성장한 예술가의 이미지도 진하다. 케이팝 스타는 보통은 3대 기획사나 4대 방송사 타이틀 딱지가 붙은 프로그램에서 "스타성”을 집중적으로 관리받고 홍보가 되었다. 반면, 아이유는 데뷔 초기부터 완전히 작은 기획사로 출발해야 했고, 소속사 사장의 인맥보다는 오히려 아이유 자체의 센세이셔널한 매력에 중요했다고 보인다(물론 데뷔 초기 로엔엔터 소속이던 그녀는 지금은 카카오엔터라는 대형 기획사와 관계가 있지만 사실상 필요에 의한 결합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한류스타”라는 표현에는 1) 해외에서 인정 받은 수출용, 이라는 이미지와 2) 글로벌 시장에 맞게 특수하게 기획된, 느낌을 알게 모르게 갖고 있다. 그동안 아이유를 해외 시청자들이 사랑 안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주된 활동무대가 한국 연예 산업에 보다 적합하기 때문에 굳이 한류스타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고, 이미 한류스타와는 전혀 다른 맥락의 존재이기 때문에 굳이 "한류"라는 타이틀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7. 침체기 한류

2024년은 “한류 침체”의 뚜렷한 원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더이상 "한류"라고 불릴 수 현상이 나타나지도 않고 과거의 관성에 의해 굴러간다라고 밖에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때는 한국의 온갖 문화에 접두어 “K”를 붙여 “K-컬처”의 확장이라 묘사한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특히 케이팝과 케이드라마의 침체가 심각하다. 케이팝의 전성기를 이끈 방탄소년단(BTS)는 1년 넘게 군대에 머물어 활동이 불가능한 처지며, 블랙핑크는 사실상 뿔뿔이 흩어져 당분간 단체 활동을 기약하기 어렵다. 3~4세대 보이그룹은 해외서 인기는 있다지만 BTS와 비견되는 충격을 안길 힘은 부족해 보인다. 4세대 걸그룹 가운데 단연 뉴진스가 돋보였지만 하이브 내부의 복잡한 주도권 싸움으로 국내에선 양극단으로 호불호가 갈린 상황. 분명 지난해엔 엔터사 주가 폭등해 업계가 축제를 벌였지만, 현재는 많은 상승분도 반납하고 일종의 암중모색기로 접어든 것이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복잡하고 암울하다. 한동안 K드라마를 밀고 끌던 글로벌 OTT의 투자 규모가 주춤해지자, 도미노처럼 시장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 한동안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등의 글로벌한 성공에 열광하던 분위기도 사그라든 지 오래다. 해외 OTT가 투자한 작품은 실질적으로 한류 컨텐츠가 아닐 수 있다는 공감대까지 시나브로 높아졌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제작비, 출연료 역시 글로벌 시대의 새로운 부담이 되었다.

유튜브에 잠식된 예능 시장의 미래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 종합적으로 2021년 정점을 찍은  “한류”라는 어휘가 가진 무게감이나 신선함도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낡은 “한류” 대신 “K-컬처”라는 말이 대체어로 유행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K-컬처가 기존의 한류에 비해 무엇이 새로운 지는 증명된 것은 아니다. 사실상 한국 대중문화의 침체를 직시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가 된다.

8. 아이유의 분전(奮戰)

이같은 한류의 절체절명의 위기 속 가장 돋보이는 존재가 바로 가수 아이유(IU)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 잠시 주목하지 않던 사이에, 아이유가 세계를 향해 웅장하게 날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아이유의 해외 진출은 우리가 잊고 있던 “한류”를 재정의 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아이유는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작심한 듯 전세계 투어를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콘서트 타이틀은 “허” <H.E.R: HEREH>라고 붙여졌다. 실제로 아이유의 섬세한 감각이 온갖 무대장치와 의상 그리고 분위기에 잘 투영된 축제다. 무대장인 아이유의 정갈하고 화려한 무대매너는 이미 정평이 나있다. 해외팬들도 그 특유의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을지가 관건이기는 했다.

이번 월드투어의 기착지는 아시아와 북미, 그리고 유럽까지 포괄한다.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 마닐라와 자카르타도 있고, 런던과 베를린을 넘어 아틀란타와 워싱턴 DC까지 포괄했다, 케이팝이 현재 가장 뜨거운 장소이자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목적지가 된다. 반응도 뜨겁다. 매번 현지에서 티켓 예매 서버가 다운될 정도의 인기를 끌며 매진과 완판 행진을 이어가는 것이다. 아시아에서의 인기는 검증이 되었지만, 이제는 유럽과 북미에서도 아이유는 뚜렷하게 “한류 스타”의 이미지를 굳혔다.

아이유의 콘서트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국내로 한정한다면 우선 콘서트를 즐기는 남녀노소 전세대가 아이유 콘서트에 참가를 원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잠실주경기장과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3일 연속 공연을 유일하게 채울 수 있는 가수가 아이유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류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지금 해외에서도 엇비슷한 평가가 나온다. 특히 중화권에서의 아이유는 절대적으로 높은 인기다.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는 대개 아시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북미 지역에서는 아이유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과 한국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혼재되어 있다. 아이유 노래를 즐기게 되는 경로는 다양하지만, 한류를 즐기는 팬이라면 “아이유”의 연기와 노래를 피해갈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9. 한국어 가사의 중요성

3대 기획사가 만드는 케이팝의 특징으로는 "중독성 높은 영어 가사의 높은 비중과 댄스 음악적 특징"이 지목된다. 영어에 비해 소수언어인 한국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최근 “케이컬처”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는 이유도 “영어”와 “미국문화”의 높은 영향력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현실이다.

앞선 언급대로 아이유의 노래와 음악이 세계적인 반향을 얻지 못한 이유는, 결정적으로 언어의 한계를 꼽을 수 있다. 아이유는 한국 가요의 맥락을 잇는 가수이니만큼 당연히 한국어 가사로 한국적 정서를 노래한다. 다인조 댄스 가수도 아니다. 당연히 아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한국어 실력을 필요로 한다. 짤막한 관심으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과거 아시아에 대만의 등려군(鄧麗君)이라는 가수가 세계적인 가수로 도약한 계기는 그녀가 중국어를 쓰는 화교네트워크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어 화자는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에도 미치지 못해 중국어와 비교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아이유의 인기는 한국어 전도사 느낌을 전한다. 현지 팬들이 “한국어 가사”를 정성스레 암기해 와 아이유 노래를 가수에게 함께 불러준다. 가수와 팬이 하나가 되는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느껴졌다.

아이유의 소통 노력도 대단하다. 우선 아이유의 영어 실력이 우리의 예상을 깨고 대단히 훌륭하다는 점을 언급해야 한다. 자신의 모든 대사를 영어로 처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부분은 직접 “영어”로 관객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또박또박하게 펼쳐내고 있다. 무려 3시간이라는 콘서트 모두를 통역으로 처리했다면, 관객과의 정서전달이 불가능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아이유의 위대한 점은, 현지의 문화를 반드시 주요 콘텐츠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홍콩에 가서는 “광둥어” 노래를, 독일에서는 “독일어” 노래와 문장을 반드시 준비한다.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모두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팝스타들이 현지 콘서트를 할 때 현지말로 인사말을 준비하기는 한다. 그런데 아이유의 노력은 이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비쳐진다. 사실상 월드투어 와중에 현지어로 된 노래와 문장을 그렇게 완성도 높게 여러 가지 버전으로 준비하는 것은 필자의 콘서트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10. 공통의 성장 드라마

아이유의 콘서트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류”를 언급할 때 반드시 경험해봐야 할 현대의 고전(클래식)으로 격상된 지 오래다. 그 명성 때문에 이번 월드투어가 한류팬들로부터 뜨거운 반응과 열광을 이끌어 내는 지도 모르겠다. 티켓 가격의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유의 팬들이 특히 많은 것으로 유명한 미국에서는 백 만원도 훌쩍 넘는 가격을 치러야 한다. 당연히 그 가격은 문제가 아니라는 팬들이 적지 않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유 노래의 매력은, 콘서트가 주는 분위기 자체가 “한류 드라마”를 떠올리게 할만큼 아름답고 서정적이라는 데 있다. 아니 오히려 "한류 드라마"가 내면에 깔고 있던 가치, 즉 오랜 갈등을 끝내는 화합과 이를 거친 인간 성장의 아름다움에 대해 노래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10대 후반 가수로 데뷔해 자신의 사춘기와 성장 과정을 노래에 녹인 그녀의 노래에는, 한국 드라마 특유의 아름다움과 서정성, 그리고 사랑의 감정이 잘 녹아 있다. 동시에, 지난 17년간의 추억과 본인의 성장통이 느껴진다. 한류 드라마에서 펼쳐졌던 정서들과 잘 일치한다.

때문에 많은 팬들에게 아이유는 자신의 10대 청춘과 20대 사랑과 성장의 시절을 대변한다. 일종의 “추억의 보석상자”가 된다. 아이유를 좋아한 이들 모두가 지난 시간 아이유와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중학생 어린 가수의 도전을 응원하면서 우리도 그로부터 용기와 영감을 얻고, 어느새 그랬던 소녀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가수로 거듭난 사실에 감격하기도 한다.

11. 한류, 그 자체

앞서 언급한 다양한 이유와 배경으로 인해 아이유의 월드투어가 국내에서 신드롬급 화제를 모으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콘서트장의 작은 규모 탓과 아직은 미흡한 해외 현지 언론이 원인으로 비친다.

방탄소년단(BTS)은 글로벌 시장 공략 시기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무엇보다 5만석 규모를 골라서 투어하며 뚜렷한 성과를 거일궈냈다. 한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고, 혹은 국뽕에 차기 충분한 규모의 대규모 콘서트였다. 블랙핑크 역시 멤버의 영어 실력이나 특유의 서구적 분위기가 “월드스타” 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자연스레 케이팝의 상징으로 “BTS”와 “블랙핑크”가 오랜기간 회자된 것이다.

반면 아이유는 1만~2만에 이르는 중급 규모의 실내 아레나 공연에 집중하고 있다. 관객들과 더 긴밀한 감정을 나누기 위해서는 이정도 규모도 충분하다. 노래와 등장인물 모두가 “한국적” 콘서트임도 분명하고. 아이유의 콘서트를 통해서 케이팝 팬들의 폭과 깊이가 넓어졌음을 확인시킨다.

이미 아이유는 대한민국 케이팝 여자 가수들의 “롤 모델”로 자리잡았다. 10대 20대 가수들이 심리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가수가 바로 “아이유”다. 물론 아이유보다 경력도 길고 경험도 많은 가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유만큼 후배들에 깊은 영감과 감동을 주는 선배는 쉽게 찾기 힘들다. 아이유가 케이팝의 롤모델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과거 가수 지망생들은 서양의 팝스타를 롤모델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와 브랜드, 그리고 비즈니스적 성공까지 모두 거둔 (여성) 스타가 손에 꼽을 정도로 귀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이유는 거의 모든 측면에서 완성형 케이팝 스타로서의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즉, 지난 17년 아이유의 모든 행보가 바로 “한류”와 “케이팝”의 “최선”이며 “최전선”이라는 증거도 된다.

제이팝의 전성기인 1980년대엔 영원한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와 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가 있었다. 그리고 중화권에는 등려군(鄧麗君)이 있었다면, 케이팝 전성기인 2010년대 이후 우리에겐 아이유 “이지은”이 있었다, 라는 평가가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

한류드라마 2018년작 <나의 아저씨> 가운데 한 장면.
배우 이지은의 얼굴에는 "한류 드라마"가 꿈꾸는 인간 승리와 성장의 드라마가 함께 배어 있다

작성일 : 2024년 8월18일

저자 정호재: 기자 출신으로 동남아시아 정치와 문화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을 주로 연구해왔다. 2020년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를 썼고, 현재는 국내 첫 아세안 중심의 아시아 씽크탱크 “아시아 비전포럼” 미디어파트 헤드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