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매력적인 상업 서사, K-드라마 속 여성의 성과 사랑: tvN 드라마 "정년이"와 Jtbc"정숙한 세일즈" 등
흥미로운 지점은 대중문화가 남성의 성이나 동성애에 대해 다룰 때와는 다르게, 여성의 성에 관한 이야기에는 비교적 관대하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정 영 희 | 고려대학교 정보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tvN 드라마 “정년이”에 대한 국내외 반응이 심상치 않다. 첫 회 시청률 4.8%로 시작하여 10회는 14.1%로 상승하고, 최종회(11월17일)인 12부는 16.5% 최고 시청률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서비스인‘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10월말 ‘디즈니플러스 글로벌 TV쇼 부문TOP 10’에 진입한 이후, 이번 달 5일 기준 6위까지 점점 순위가 상승했다.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세계 각지에서는 디즈니플러스 TV쇼 부문 1위에 오르고, 덩달아 국극과 판소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중이다.
한국 언론의 보도 역시 ‘여성국극(女性國劇)’이라는 참신한 소재의 화제성과 웹툰 원작과 드라마 간의 비교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웹툰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동성애자 권부용이 드라마에서 사라진 것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년이”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유행했던 여성국극을 재조명하며, 여성들만의 무대를 배경으로 여성 캐릭터의 욕망, 연대, 갈등을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는 여성 서사, 성장 서사, 치유와 화해의 서사, 한과 신파의 정서, 퀴어 서사 등 다양한 서사로 구성되어, 여성에 관해 총천연색 비빔밥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시청률 탄력은 덜 받고 있지만, JTBC의 “정숙한 세일즈”도 여성의 성과 성적 쾌락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는 중이다.
울면서 보는 여성장르?
사실, 전통적으로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는 여성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드라마 서사 자체가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된 여성상을 재생산하면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는 가족 드라마와 멜로 드라마 중심으로 발전해왔기에 이야기는 주로 가정의 일상생활과 갈등, 사랑과 희생이라는 전형적인 주제를 다루며 눈물과 감정을 강조하는 서사로 전개되었다.
이때 텔레비전 드라마는 여성 시청자, 특히 가정주부를 타깃 시청층으로 삼았기에 사랑과 이별, 인내와 희생의 서사를 통해 강한 감정적 몰입을 유도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텔레비전 드라마=눈물과 희생을 중심으로 하는 서사’로 인식되게 만들었고, 그 결과 감정적 요소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드라마는 여성들의 눈물을 짜내는 여성 전용 장르로 폄하되었다. 특히 여성 중심의 멜로드라마는 통속적이고 수준 낮은 서사로 평가되었다.
그러한 시각은 1996년 KBS의 드라마인 “용의 눈물”이 대성공을 거두고, 남성이 드라마 시청자로 대거 유입되면서 변화하였다. 드라마 시청층이 세분화되고 소재와 주제가 다양해지면서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서 여성 캐릭터도 다양하게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드라마 시청자 다수가 여성이었기에 그 이야기는 여성의 욕망과 판타지를 반영하였지만, 드라마 속 여성은 연약하고 의존적이며, 자기 가족의 이익만 챙기거나, 사랑에만 몰두하며 남성이라는 감정적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덜 사회적인 인물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사회적 성취를 욕망하는 여성은 가정에 소홀한 시끄럽고 극성스러운 여성으로 재현되어 종국에는 반성하고 가정으로 돌아오거나 파멸하였다.
그런 방식으로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는 여성의 가족 내에서의 역할 수행을 강조하며, 여성의 욕망이나 독립성을 주변화시켜왔다. 이러한 경향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확연하게 변하였는데 드라마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역활을 명확하게 구분 지어온 전통적인 서사가 약화되고 여성에 대한 재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성서사의 부상
그러한 변화는 2010년 중반에 발생한 다수의 사건 및 젠더 이슈와 맞물리면서 가속화되는데, 이 시기 여성주의 담론이 대중문화에 스며들면서 여성 중심 서사나 젠더 이슈를 다룬 드라마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여성 서사’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여성 서사로 불리는 요소들이 매력적인 상업 서사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최근의 드라마에서는 ‘여성에 대한 전통적 서사가 변했다’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서사가 구성되어 시험되는 중이다’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다.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 다양화나 성역할 전치 정도가 아니라,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탐구하며 여성의 몸과 성에 관한 이야기를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숙한 세일즈”(JTBC)는 여성의 성(성욕과 성생활)과 몸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정년이”는 여성의 직업적 성취에 대한 갈망과 야망 뿐 아니라 자매애와 동지애를 넘어선 동성간 로맨스 감정까지 포함하며 주요 이야기를 구성해내고 있다. 여성이 섹스에 관해 말하다니!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퀴어라니! 10년 전만 되어도 청소년들이 드라마에서 뭘 보고 배우겠냐며 항의가 쏟아질 내용들이다.
여성의 몸과 성
“정숙한 세일즈”는 1992년 한 시골마을, 성(性)이 엄격하게 금지된 시공간을 배경으로 네 명의 여성이 각자의 이유로 함께 성인용품을 판매하며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이다.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한 싱글맘 한정숙(김소연 분), 비출산 약속을 받고 결혼한 전업주부 오금희(김성령 분), 남편 대신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다자녀 가정의 여성 서영복(김선영 분), 미혼모 이주리(이세희 역)는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 재현되어온 이상적인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이 모여서 성인용품 방판사업을 시작하며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등장인물들이 성인 용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서로에게 체험 후기를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여성용 성기구를 테스트한 정숙에게 금희는 “그 기구가 너를 환상의 세계로 인도했어?”라고 묻고 이에 정숙은 “네,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 자칫 논란이 될 수도 있는 장면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왔고, 특히 텔레비전에서 여성이 자신의 성적 쾌락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 시선과 규범의 문제로도 연결된다.
드라마 속에서 여성들이 성인용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서로 경험을 나누는 장면은 한국 사회의 젠더 규범과 성적 금기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코미디 설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과거의 드라마에서는 여성이 성적 주체로서 발화하거나 쾌락을 추구하는 모습이 거의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성(性)을 부정적이고 은밀한 영역으로만 다루던 기존의 서사 관습을 탈피하며,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 장면은 성욕과 쾌락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인정하는 동시에, 여성들의 경험을 웃음과 공감의 장면으로 풀어내며 시청자들에게 성적 금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한다.
자매애와 동지애 너머
자매애와 동지애를 넘어선 여성 간의 로맨스 이야기는 어떠한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퀴어’는 매우 민감한 소재다. 소설, 영화, 웹툰, 웹소설 등 대부분의 매체에서 퀴어가 중요한 소재로 부상했던 2000년대 후반에도 텔레비전 드라마는 동성애를 다루지 못하고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였다.
사실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퀴어 이야기가 등장하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있었다. 성소수자 등장 자체가 드물었고, 등장해도 대부분이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 재현되었다. 중심인물로 등장하여 논란이 인 적이 있는데, 2010년의 SBS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주인공 가정의 아들이 성소수자로 밝혀지면서, ‘가족 드라마 속에 웬 동성애냐?’는 시청자 항의가 빗발쳤고, 결국 퀴어 커플의 언약식 장면은 삭제된 채 방영되었다. 이러한 논란으로 인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커피프린스 1호점”(2007, MBC), “바람의 화원”(2008. SBS), “성균관 스캔들(2010, KBS2)과 같이 동성애 자체보다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가 더 선호됐다.
그렇다고 해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퀴어가 다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며, 대부분 단편 드라마를 중심으로 재현되어 왔다. 혹은 “(아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만)가족입니다”(2020, tvN), “야식남녀”(2020, JTBC), “이태원 클라쓰”(2020, JTBC)에서처럼 주로 주변 인물로 등장했다.
그러다가 “마인”(2021, tvN)에서처럼 동성애자가 주인공으로 나타났다. “마인”에서 주요 인물의 동성애를 파국으로 재현하지 않은 것은 파격적인 서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도 동성애는 주인공 캐릭터를 구성하는 하나의 설정일뿐 드라마 전체에서 퀴어 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았다.
“정년이”에서 여성만으로 구성된 국극단과 그 안에서 공연 파트너 간에 발생한 로맨스 감정과 질투는 동성애를 단지 암시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윤정년(김태리 분)-홍주란(우다비 분), 서혜랑(김윤혜 분))-문옥경(정은채 분)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선 감정적 연결을 보여준다. 특히, 정년에 대한 주란의 감정과 내면적 갈등, 옥경을 향한 혜량의 갈망은 금지된 사랑의 서사인 동성애 이야기를 강력하게 구성해낸다.
“정년이”는 퀴어 서사를 단순한 서브플롯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주요 서사의 한 축으로 배치하면서 기존 드라마에서 은유적이거나 암시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퀴어 서사와는 차별적으로 접근했다. 옥경이 혜랑에게 이별을 고하며 건넨 말 ‘너는 날 한 번도 완전히 가진 적이 없다’는 대사는 분명하게 퀴어적이다. 이 과정에서는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가 여성간의 갈등과 경계를 재현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사용해온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서사"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매력적인 상업 서사
흥미로운 것은 대중문화가 남성의 성이나 동성애에 대해 다룰 때와는 다르게, 여성의 성에 관한 이야기에는 비교적 관대하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2024년 현재 한국의 대중문화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대신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이야기할 때 수용자들이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에는 크게 두 가지의 배경이 작동한다. 먼저, 대중문화에서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지만, 여성 스스로 성적 욕망을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서사적 전개는 그리 많지 않다. 소설이나 영화 같은 텍스트에서는 종종 나타났지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이제야 등장한 새로운 이야기 소재인 것이다.
“정숙한 세일즈”가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전통적인 재현 방식의 틀을 깨고,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새로운 소구점을 만든 것이다. 다른 하나는 2010년대 중반 이후 페미니즘의 확산과 젠더 감수성에 대한 강조가 이러한 서사에 대한 시청자의 수용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다. 드라마가 남성의 성이나 동성애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도 강력한 저항에 노출될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동성 간 사랑을 말할 때는 그 행위가 일종의 진보적 표현으로 해석되며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현실에서 남성의 동성애는 비정상적이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여성 이야기의 확장
텔레비전 드라마는 소설이나 영화에 비해 서사의 변화가 느리게 진행되는 텍스트다. 익숙한 서사와 장르적 관습을 바탕으로 약간의 변주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 텔레비전 서사 전개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익숙한 서사에 낯선 요소를 양념처럼 가미하는 형식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특징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드라마 “정년이”는 새로운 요소가 많다. 여성국극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여성 간의 자매애와 동지애를 중심에 두며, 기존의 남성 중심 서사에서 벗어난 여성 이야기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남성 존재가 완전하게 배제된 드라마적 상상은 비현실적인 배타성을 포함한다. 아버지, 남편, 연인 등 남성 인물이 부재하거나 문제가 있는 인물로 재현되고 혹은 일찍 죽어버리는 설정에서 여성의 이야기는 반 쪽짜리 서사로 남을 수밖에 없다.
여성만의 집단을 통해 전하는 여성 이야기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지만,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가 여성 서사에 주목하며 서사적 지평을 넓히는 작업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시청자 모두가 드라마를 통해 수용한 변화된 시각은 쉽게 후퇴하지 않는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특정한 성별이라는 이유만으로 편견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텔레비전 드라마가 해야 할 역할은 여전히 크다.
한국의 드라마가 보다 다양한 집단과 세대의 이야기를 포용함으로써,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고 긍정적인 담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게 기여하기를 바란다.
작성일: 2024년 11월 18일
글쓴이 정영희는 고려대학교에서 언론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수용자연구에 관심이 많다. 현재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이며, 한림대와 수원대에서 매스미디어와 대중문화 콘텐츠에 관해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