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신뢰: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에서 시작된 표절의 교훈과 글로벌 창작의 미래
한류의 현장은 더 이상 서울 중심이 아니다. 팬덤은 국경을 넘고, 창작자는 다국적화되고 있으며, 수용자, 향유자들도 또 다른 프로듀서로서 적극적인 생산자 역할에 참여한다. 글로벌한 창작 환경에서는 더욱 엄격한 윤리 기준과 투명한 출처 표기가 필요하다.
홍지영 | 남네바다 주립대학교(CSN) 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인 갈등과 위기가 해소되면, 신뢰와 윤리적 기반을 갖춘 사회가 가장 존경받고 성공적인 모델로 부상할 것이라 여긴다. 특히 음악 산업을 포함한 문화예술 분야는 더 넓은 사회적 가치와 윤리를 반영하는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다.
표절 논란의 불씨
음악 산업은 오랫동안 표절과 불충분한 출처 표기 문제로 고심해 왔다. 한국에서도 명문 교육 배경과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유명 아티스트들이 멜로디, 가사, 또는 편곡을 빌려와 원작과 구분될 만큼만 변형한 행위 때문에 방송 일선에서 물러난 일이 있다. 가장 많이 표절되었다고 여겨지는 일본의 원작자가 마지막 소풍이 정해진 상태여서 너그러이 넘어가 준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그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러한 행위는 사실 창작 생태계 자체를 훼손하는 행위이다. AI 작곡이 나날이 발전해서 산업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이 시점에 창작자들은 AI와 경쟁할지 AI를 도구로 잘 사용할지 기로에 있다.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윤리의 관점을 재고하고, 사회적 가치를 재정립해 한국 문화의 밝은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한국, 동남아, 미국으로 확산된 사례를 보면서 문제점들을 짚어가 보기로 한다. 이원진의 첫 히트송이자 유작이 된 노래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 사건이다. 1971년생 이원진은 1994년 1월, 류금덕과의 듀엣으로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이 곡은 가요순위 상위권에 오를 만큼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원진은 2집 녹음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후 음식 섭취 중 기도가 막혀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문제는 그 4개월 후인 1994년 5월에 시작되었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가수 레히네 벨라스케스(Regine Velásquez)와 홍콩 4대천왕 중 하나인 장학우(張學友)가 듀엣으로 부른 'In Love With You'가 EMI사의 NOW 시리즈 앨범을 통해 발표된 것이다.
장학우는 1984년 데뷔 이후 '가신(歌神)'이라 불리며 중화권에서 독보적인 가창력을 인정받는 가수였고, 레진 역시 1970년생으로 필리핀 음악계의 아이콘이었다. 'In Love With You'는 레진 벨라스케스의 앨범 Listen Without Prejudice의 리드 싱글로 발표되었으며, 이 앨범은 필리핀뿐 아니라 홍콩, 중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발매되었다. 앨범은 아시아 전역에서 70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고, 필리핀에서만 10만 장 이상이 팔려 레진의 커리어 사상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 특히 'In Love With You'는 MTV Asia의 비디오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 두 거장의 만남으로 탄생한 곡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곡을 들은 한국 대중들은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바로 이원진의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와 동일한 멜로디였기 때문이다. 이원진의 곡이 1994년 1월, 레진과 장학우의 곡이 4개월 뒤인 5월에 발표되었기에 어떠한 말을 해도 변명이 될 뿐이다.
뒤늦은 인정과 침묵
특히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아티스트들이 지적 능력과 역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샘플링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는 그 자세가 바로 대중을 기만한다는 것이고, 한국 문화로 세계 문화를 함께 이끌어 나가겠다는 원대한 꿈에 최악의 실수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적절한 인정이나 사과 없이, 이러한 사례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었다. 해당 개인들은 "재능 있는 작곡가" 또는 "혁신적인 음악가"로서의 명성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나도 쉽게 전 세계가 동시에 듣고 보고 알아차리고 단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원진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0년, 세계적인 팝 가수 마라이어 캐리(Mariah Carey)가 'Thank God I Found You'를 발표하며 또다시 같은 멜로디가 사용되었다. 'Thank God I Found You'는 1999년 11월 15일에 발매된 마라이어 캐리의 정규 7집 앨범 Rainbow의 두 번째 싱글로, R&B 가수 Joe와 보이밴드 98 Degrees가 피처링에 참여했다. 이 곡은 2000년 2월 19일자 미국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이는 마라이어 캐리의 15번째 빌보드 1위 곡이었으며, 98 Degrees에게는 유일한 1위 곡이기도 했다. 곡은 미국에서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으며, 캐나다 차트에서는 2위에 올랐고, 영국, 스페인 등 일부 국가에서는 Top 10에 진입하는 등 북미와 일부 해외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흥미롭게도 'Thank God I Found You'는 발표 후 표절 논란에 휘말렸으나, 이는 Xscape의 'One of Those Love Songs'와의 유사성에 대한 소송으로, 이원진의 곡과의 직접적 표절 시비는 공식적으로 제기되지 않았다. 다행히 마라이어 캐리 측은 이후 샘플링을 인정했다. 그녀는 "Jimmy Jam & Terry Lewis와 함께 작업하면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하며, 창작 과정에 대해 투명하게 밝혔다.
반면 레진과 장학우의 'In Love With You' 표절 문제는 명확한 결론 없이 흐지부지되었다. 당시 이원진의 작곡가 황영철은 일본 기린저작권협회에 중재를 요청했고, 무산될 경우 홍콩 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사건이 공식적으로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일부에서는 필리핀 작곡가의 사과로 마무리되었다고 언급하기도 하지만, 장학우, 레진, 혹은 필리핀 작곡가가 공식적으로 표절을 인정하거나 사과했다는 공식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신뢰의 훼손과 책임
우리는 아티스트들의 이러한 행동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그 답은 단호한 '아니오'여야 한다. 창작 전문가들이 자신의 영향을 받은 원천을 적절히 표기하지 않을 때, 그들은 동료 아티스트들을 존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청중을 기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뢰의 훼손은 개인 경력을 넘어 창작 산업 전체의 진실성에 손상을 입히는 심각한 행위이다.
전세계적으로 Ethnocentrism이 심화되고 있는 시기에 창작물 신뢰의 문제가 제기되면 그것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싸늘히 식게 한다. 유행이 왜 있겠는가?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인간 심리를 잘 이용한 자본가들의 마케팅 전략 때문에 유행이 있는 것이다. 유행이라는 주도권 싸움에서 자본가들이 이 문제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다.
이원진 사건이 특히 심각한 것은 원작자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이원진이 살아있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취약한 위치에 있는 창작자들의 작품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단순한 표절을 넘어 창작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일이다.
해결책: 투명한 출처 표기
해결책은 영향과 영감의 원천에 대해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많은 성공적인 아티스트들이 이것을 우아하게 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APT에서 'Hey Mickey'를 인터폴레이션한 사례가 그렇다. 이러한 투명성은 그들의 성공에 날개를 달았고, 신뢰성을 높였다.
마찬가지로, 영화 제작에서도 봉준호 감독은 그의 영화 '설국열차'가 프랑스 만화 Le Transperceneige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로얄티를 지급했다. 이 프랑스의 만화 Le Transperceneige는 1970년대에 자크 로브(스토리)와 알렉시스(그림)의 구상으로 시작되었으나, 1977년에 알렉시스가 사망하여 장 마르크 로셰트가 새로 참가하여 1984년에 1권 '탈주자'를 발간했다. 이후 1990년 자크 로브마저 사망하여 뱅자맹 르그랑을 새로 영입해서 1999년에 2권 '선발대', 2000년에 3권 '횡단'을 발간했다. 그의 창작적 영감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영화의 독창성이나 성공에 영향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영향력에 대한 존중과 자신만의 창작적 기여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마라이어 캐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Thank God I Found You'에서 샘플링을 인정한 것은 그녀의 명성에 전혀 손상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정직한 태도로 더 많은 존경을 받았다.
글로벌 시대의 창작 윤리
이 문제는 음악 산업을 훨씬 넘어서 확장된다.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최고의 학벌을 가진 이들의 속임수와 조작이 "재능" 또는 "영리함"으로 재해석되는 사례를 보아왔다. 이는 결국 대중을 상대로 한 기만행위라는 점에서, 의심스러운 제품을 판매하거나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정교한 사기를 치는 행위들과 다를 바 없다.
한류의 현장은 더 이상 서울 중심이 아니다. 팬덤은 국경을 넘고, 창작자는 다국적화되고 있으며, 수용자, 향유자들도 또 다른 프로듀서로서 적극적인 생산자 역할에 참여한다. 이원진의 노래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 사건이 보여주듯이, 한 국가에서 만들어진 창작물이 필리핀, 홍콩, 미국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창작 윤리 정책 또한 국내 중심의 일방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국제 공동 협력, 현지화 전략, 팬덤 기반의 참여형 문화 거버넌스로 확장되어야 한다. 글로벌한 창작 환경에서는 더욱 엄격한 윤리 기준과 투명한 출처 표기가 필요하다.
비윤리적 행동을 정상화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몰입된 젊은 세대들은 교정하기 어려운 왜곡된 가치관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의미 있는 결과 없이 지속될수록, 그것들은 우리의 문화적 구조에 더 깊이 뿌리내릴까 우려스럽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재건
전세계적인 정치적, 경제적 도전에서 벗어나게 되면, 사회는 가치 재평가의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진실성, 투명성, 그리고 윤리적 관행을 우선시하는 사회는 장기적으로 번창할 것이라 판단한다. 신뢰는 단순한 도덕적 개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제적, 문화적 발전의 실질적인 기반이 될 것이므로.
출처표기에 관한 명확한 규범이 필요하다. 영감의 원천을 솔직히 인정하는 아티스트를 존중해야 한다. 진정한 재능은 속임수가 아닌 정직한 창작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어떻게 더 많이 해외에 콘텐츠를 수출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더 깊이, 그리고 더 정직하게 연결될 것인가' 를 물어야 한다. 창작의 미래는 단순한 '확산'이 아니라, 세계 속 에서의 '공존과 재창조', 그리고 무엇보다 '상호 존중'에 있다.
한 번 깨진 신뢰는 다시 쌓기 어렵다. 우리가 미래를 바라볼 때, 책임성과 투명성의 환경을 조성하는 사회와 산업이 진정한 재능과 지속 가능한 성공을 끌어들일 것이다. 이원진의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가 기억되고, 그의 창작이 존중받는 그런 세상 말이다. (끝)
작성일: 2025년 6월 6일
필자 홍지영(Amy Hutchinson)은 남네바다 주립대학교(CSN) 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로서, 네바다주립대학교(UNLV)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문적 연구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융합한 독창적인 방법론을 통해, 한국인들의 초국가적 정체성과 문화적 통합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