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그녀들이 'K뷰티'에 끌리는 이유: 히잡 스타일부터 K뷰티 챌린지까지…문화를 넘어선 아름다움의 연결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적 배경을 지닌 여성들이 K뷰티를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변용하며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문화 교류의 매개체로서의 K뷰티의 힘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박소정 |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인스타그램에서 돋보기 피드를 무심코 넘기던 중, 흥미로운 영상이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중동 여성들이 한국의 메이크업 스타일을 따라 하고 있다는 내용의 숏폼 영상이었다. 히잡이나 차도르 등을 착용하는 여성들은 대체로 화려한 메이크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 한류의 영향을 받아 한국식의 내츄럴한 메이크업을 시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영상이 인용하는 메이크업 튜토리얼 장면들이 모두 틱톡에서 가져온 것이길래, 몇몇 계정명을 확인해 직접 틱톡에 검색해 보았다. 이 여성 틱톡커들은 한국식 화장이나 패션 스타일이 히잡과 어떤 식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상들을 공유하며 ‘#hijabfashion’, ‘#hijabstyle’ 같은 해시태그를 #Koreanfashion’, ‘#Koreanbeauty’, ‘#Kpop’, ‘#ulzzang’ 같은 해시태그와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게시물들을 살펴 보니 실제 이들이 케이팝이나 한국 드라마의 팬임을 알 수 있었다.
한류와 K뷰티
2000년대 이후 한국 화장품 시장은 연평균 5% 이상의 성장률을 보여주며 발전해왔다. 최근 몇 년 사이 북미와 동남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수출이 급격히 증가했고, 2024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K뷰티는 한국 음식에 이어 가장 인기 있는 한국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류가 본질적으로 문화 현상임을 생각할 때 단순히 화장품산업의 경제적 성과 자체만으로는 한류라고 부를 수는 없다.
‘뷰티 한류’ 또는 ‘K-뷰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동반하는 문화적 함의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K팝이 한국 대중 음악의 완전한 동의어가 아니듯, K뷰티 또한 ‘한국의 미(Korean beauty)’라고만 이해할 수는 없다. 한류 문화 안에서 ‘K’라는 접두사는 콘텐츠의 출신지 이상으로 해외에서 사랑받으며 특정한 문화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K뷰티는 단지 한국 화장품의 수출 현상이라기보다는 한류 콘텐츠를 매개로 하여 전파된 뷰티 형태, 실천, 제품을 포함한 개념이다. 필자가 K뷰티를 ‘미디어-뷰티 복합체’라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K뷰티는 미디어 문화와 뷰티 문화의 밀접한 대화 속에서 생겨난 존재다.
뷰티산업 정의
K뷰티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약 2012년 전후로 보이며, 한류 3.0의 주요 요소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디어-뷰티 복합체로서의 K뷰티 ‘현상’에 대한 인지는 그 이전부터 발견된다. 2002년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 <뷰티(美)산업의 부상과 성공전략>은 드라마 "겨울연가"(KBS, 2002)의 성공을 뷰티산업의 성공 사례로 들고 있다. 언뜻 의문이 드는 부분인데, 이 보고서에서 정의하는 뷰티산업의 범주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뷰티산업’은 미모(美貌), 미관(美觀), 미담(美談), 미품(美品)의 네 개 카테고리로 구성
-미관: 제품의 외관을 아름답게 꾸며 미적 부가가치를 실현 (전자, 자동차 등의 디자인 제품, 고급아파트 등 프리미엄 상품)
-미모: 신체의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과 관련한 산업 (화장품, 미용성형 등)
-미담: 아름다운 이야기와 이미지 (감동적인 스토리, 영상미, 판타지 등의 문화콘텐츠, 광고 분야)
-미품: 아름다움의 극치를 추구,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제품 (명품, 순수 예술품, 미식 등)
주목할 부분은 ‘미모’와 ‘미담’이다. 이 보고서는 화장품 산업과 콘텐츠 산업이 미적 체험의 영역에서 각각 외면과 내면을 구성하는 보완적인 관계라고 위치를 설정한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담에 해당하는 콘텐츠산업 영역에서 "겨울연가"가 멜로드라마 서사, 아름다운 장면 연출, 스타의 아름다움 등의 미적 요인을 통해 TV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목도리가 국내에서 유행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드라마 속 패션의 유행이 곧 ‘미모’와 ‘미담’이 연결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뷰티산업을 좁은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문화콘텐츠가 뷰티산업의 일부이자 화장품산업과 연계된 영역이라고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비록 이 보고서는 2002년 국내 뷰티산업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기에 한류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인사이트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뷰티산업을 서로 다른 영역을 연계하는 패러다임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문화콘텐츠와 뷰티 실천이 교차하며 만들어진 K뷰티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제공한다.
드라마가 발원지
이 보고서가 말한 "겨울연가" 목도리의 국내 유행은 이후 국경을 넘어선 미디어-뷰티 연계 현상으로 확장된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일본의 패션, 헤어, 화장품 등 뷰티산업에 고루 영향을 미쳤다. "대장금"(MBC, 2003)의 인기가 중국 성형산업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의도 있으며, "별에서 온 그대"(SBS, 2013)를 통해 특정 브랜드 화장품이 아시아 지역에서 인기를 얻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와 같이 대중문화 콘텐츠가 견인하는 힘을 통해 한국의 뷰티가 해외 수용자 또는 소비자를 만나는 사례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K뷰티의 역량이 형성되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마주한 무슬림 여성들의 K뷰티 메이크업 영상도 이런 계보에 위치한다. K뷰티는 K팝과 K드라마, 한국 스타를 비롯한 한국 문화콘텐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한류가 정점을 맞이했다는 평가도 이루어지는 시점에 한국 메이크업 스타일이 해외에서 한류 팬들을 중심으로 유행하며 각종 소셜미디어에 포스팅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유튜브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유튜버들이 한국의 메이크업 제품을 이용해서 한국식 화장을 하는 이른바 K뷰티 챌린지가 성행한다. 한국에서는 너무 낡은 신조어인 ‘얼짱’이라는 단어가 해외에서는 ‘ulzzang’으로 표기되며 K뷰티 메이크업을 대표하는 용어로 해시태그를 달고 유통된다.
히잡 패션의 변화
그 와중에 무슬림 여성들의 K뷰티 메이크업이 눈에 띈 것은 히잡 패션이 지닌 문화적 거리감 때문이었을까? 필자는 이국적이고 낯선 시각적 스타일이 K뷰티라는 익숙한 미적 양식과 결합하면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충격을 경험했다.
호기심이 생겨 더 찾아보니, ‘Korean Waved Hijab’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논문을 발견했다. 그 논문에 따르면, 무슬림 여성들이 한류의 영향을 받으면서 히잡을 착용하는 이유가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이유 외에도 미적인 이유를 새롭게 추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원색 히잡 대신 한국에서 선호하는 파스텔 톤 히잡을 찾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내포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히잡 문화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무슬림 지역에서의 한류 영향에 대한 맥락적 정보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한류가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들의 정체성 표현 방식에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패션과 메이크업은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을 꾸미는 피상적인 문화 요소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K뷰티가 다른 나라나 문화권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제품이나 트렌드의 수출로만 볼 수 없고, 더 깊은 문화적 흐름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닮고 싶은 '아시아의 미'
한국 화장품이 활발히 수출되고 있는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K뷰티가 단순히 질 좋고 저렴한 한국 화장품을 소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K뷰티는 이들 지역의 여성들에게 새로운 이상적 미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랫동안 글로벌 미의 위계에서 아시아 지역의 이상적 모델은 서구의 스타들이었다.
서구적 아름다움은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며,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는 유럽이나 북미 출신 부모를 둔 혼혈 연예인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류 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의 미디어 환경 덕분에 젊은 여성들은 K팝 아이돌과 한국 배우들에게서 새로운 미적 기준을 발견하고 있다.
한국 스타들의 아름다움은 서구 스타들의 도달하기 어려운 낯선 외모와는 달리, 문화적 근접성(cultural proximity)을 바탕으로 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K뷰티는 이렇게 닮고 싶으면서도, 닮을 수 있는 ‘친근한 이상(relatable ideal)’을 제공하며, 동남아시아 여성들에게 더 큰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친근한 이상’으로서의 K뷰티는 단순히 같은 아시아권이라는 지리적, 인종적 유사성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K뷰티와 관련해 가장 널리 퍼진 개념 중 하나는 ‘스킨케어 10단계 요법(skincare 10 step regime)’이다. 이중 세안을 시작으로 다양한 제품을 사용해 10단계에 걸쳐 피부를 관리하는 이 요법은 실제 한국에서 얼마나 보편적으로 실행되는지와 관계없이, 외국인들이 K뷰티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하는 실천으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K뷰티는 선천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또한, 온·오프라인 쇼핑몰을 통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한국 화장품은 동남아시아 소비자들에게 K뷰티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한다는 느낌을 준다. 더불어, K팝 아이돌 그룹에 점차 동남아시아 출신 멤버들이 포함되면서 K뷰티에 대한 친근감도 커지고 있다. 자국 출신 K팝 스타들을 보며 자신도 K뷰티 스타일을 쉽게 따라 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과 동남아시아를 잇는 여러 문화적, 산업적 경로를 통해 K뷰티는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동경할 만한 이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느슨하고 친밀한 연결
미국의 문화이론가 로렌 벌랜트(Lauren Berlant)는 ‘보철적 체화(prosthetic embodiment)’라는 개념을 언급한 바 있다. 이 용어는 누군가와 동일시한다는 것이 단순히 그 대상을 모방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고정된 것으로부터 해방해보는 경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육체적 논리를 마치 보철(prosthesis)처럼 자신의 신체에 부분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감각이나 경험을 확장하는 정동적 체험을 하는 것이다.
벌랜트는 이러한 보철적 체화를 통해 여성들이 ‘친밀한 공중(intimate public)’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K뷰티 역시 서로 다른 국가의 여성들 간의 느슨하지만 친밀한 연결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국가의 미적 요소를 자기표현의 새로운 방식으로 발견하고 이를 수용함으로써 다른 문화와 연결되며 정체성의 범위를 더 확장적으로 탐색해본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적 배경을 지닌 여성들이 K뷰티를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변용하며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문화 교류의 매개체로서의 K뷰티의 힘을 생각해볼 수 있다. (끝)
작성일: 2024년 11월 22일
글쓴이 박소정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 후 동 대학의 언론정보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중문화와 디지털문화 영역을 연구해 왔으며, 인종∙종족 문제와 미디어 환경이 교차하여 만들어내는 여러 현상을 관찰해 왔다. 현재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