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선재 업고 튀고’ 싶은 마음에 관하여 : 달라진 팬덤 문화에 대한 진지한 고찰
"스타와 팬은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스타덤은 팬덤을 통해 생명력을 지닐 수 있으며, 팬은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로부터 행복을 발견한다. 이 드라마의 시작점인 선재의 죽음과 솔의 절망은 누군가를 ‘덕질’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각자의 기억을 이입하여 공감할 수 있는 사건으로 기능한다"
박소정 | 서울대 한류연구센터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가 2024년 5월 말 16부작의 막을 내렸다. 시청률 3.1%로 시작한 이 드라마는 5.8%의 시청률로 종영했다. 단순한 시청률 수치 그 이상의 다양한 화제를 낳아 그 파급력을 입증했다. 극중 유명 아이돌 가수이자 배우인 류선재(변우석 분)와 그의 열성 팬 임솔(김혜윤 분)의 로맨스를 다룬 이 드라마는 이른바 ‘솔-선 커플’이 큰 팬덤을 형성했다.
두 주인공 배우의 이전 출연 작품이 재개봉 및 재방송되기도 하고, 특히 변우석은 연일 국내외 팬미팅을 가지며 새로운 한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선재 업고 튀어" 의 방영 기간 중 OTT 티빙의 이용자 수는 700만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와 비교했을 때 더 긴 평균 시청 시간과 낮은 이탈율을 보여주어 "선재 업고 튀어"의 화제성 효과가 간접적으로 증명되었다.
2024년 최고 화제작
이 드라마는 젊은 남녀의 로맨스에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서사를 보여준다. 2023년 겨울, 선재의 자살 소식이 속보로 보도되자, 절망한 솔은 무작정 선재가 실려 간 병원으로 향하던 중 우연히 타임슬립을 하게 된다. 시간을 거슬러 도착한 곳은 2008년, 선재와 솔이 모두 고등학생이고 심지어 이웃집에 살던 시절이다. 그곳에서 솔은 시간 여행을 하기 전 원래의 삶에서는 몰랐던 선재와의 관계와 사건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예정된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자꾸만 선재와 솔이 사랑에 빠지는 결과를 동반한다.
솔의 선택, 실수, 오해는 모두 궁극적으로는 그의 삶이 선재의 삶과 얽히는 방향으로 향한다. 심지어 솔이 휘청이며 넘어질 때마다 매번 선재의 품에 안착하게 되는 지독한 클리셰도 거의 매 화 등장한다. 운명적 사랑이라는 큰 주제 아래에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는 우연과 클리셰들이 빼곡이 들어찬 이 로맨스 드라마에 왜 이토록 많은 시청자들이 열광한 것일까?
이 드라마는 시청자가 지닌 여러 욕망의 줄기들을 영리하게 한 타래로 엮는다. 좋아하는 스타와의 연애라는 판타지적 주제는 사실 선재가 스타가 되기 전부터 솔을 짝사랑했다는 설정을 통해 더욱 낭만성을 얻는다. 또한, 30대의 솔이 타임슬립을 통해 10대의 선재와 조우하면서 로맨스가 전개되는 설정은 연하남과의 로맨스를 우회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열광의 이유
타임슬립을 한다는 세계관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쾌락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자꾸만 인생의 경로를 바꾸어도, 모든 기억을 잃고도, 결국은 선재와 솔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서사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판타지가 펼쳐지는 배경으로 2000년대 후반의 10대 문화와 대중문화의 풍경이 스치며 20~30대 시청자들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선재 업고 튀어"는 스타와의 로맨스, 첫사랑, 짝사랑, 운명적 사랑, 타임슬립, 복고물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잘 버무려 종합 선물 세트를 제공한다.
이러한 종합 선물 세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테마는 이 드라마의 태그라인에서도 드러나듯 “만약, 당신의 최애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이다. 극 중에서 솔은 여러 번의 타임슬립을 하며 자신과 주변인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는다. 그럼에도 결코 바뀌지 않는 부분은 선재가 스타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 드라마는 ‘그냥 선재’가 아니라 ‘스타 선재’와 솔 사이의 이야기여야만 하는 것이다.
선재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수영 선수였으나 부상으로 인해 가수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15년이 흘러 최고의 스타 자리에 있는 선재가 왜 죽음을 맞이했는지 솔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처음 과거로 돌아간 솔은 선재가 연예계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애를 쓴다. 그러나 수영 선수로서의 꿈을 잃은 선재에게 가수란 새로운 인생의 기회임을 알게 된 솔이 다음으로 목표하는 것은 선재가 불행하지 않도록, 그리하여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제목처럼 선재를 불행감으로부터 구해내 업고 튀고자 하는 구원 서사가 이 로맨스의 근간에 존재한다. 그 구원의 주체는 연인이기 이전에 ‘팬’이다. 결국 "선재 업고 튀어"가 수많은 다른 로맨스물과 차이를 지니는 부분은 이 로맨스가 ‘내 새끼의 행복’을 바라는 팬의 마음과 중첩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원(救援)의 관계
본래 스타와 팬은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스타덤은 팬덤을 통해 생명력을 지닐 수 있으며, 팬은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로부터 행복을 발견한다. 이 드라마의 시작점인 선재의 죽음과 솔의 절망은 누군가를 ‘덕질’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각자의 기억을 이입하여 공감할 수 있는 사건으로 기능한다.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이 드라마가 샤이니 멤버 故종현을 연상시킨다는 논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말이다.
종현의 사례 뿐 아니라, ‘노예 계약’으로 불리는 불공정 계약, 스캔들과 루머, 안티팬과 악성댓글, 잃어버린 사생활, 무대 아래에서의 외로움 등 스타를 둘러싼 위험 요소들이 때로는 특정 스타를 우울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례를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해왔다. 그리고 그의 팬들은 자신의 스타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부채감을 안기도 한다. 팬에게 스타란 정서적으로는 가장 친밀함을 느끼는 존재이나, 결국은 무언가의 매개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준사회적(parasocial) 관계의 대상이다. 팬은 그의 욕망만큼 스타의 인생에 직접적 개입을 할 수 없으며, 하면 안 된다는 것이 팬의 윤리이기도 하다.
스타와 팬의 로맨스를 다루는 픽션은 바로 이 준사회적 관계의 제약을 극복하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선재 업고 튀어" 또한 그러한 팬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활용한다. 이 드라마에는 두 명의 스토커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솔 자신으로 선재를 지키기 위해 주변을 맴돌다가 스토커로 오인 받는다. 두 번째는 종종 선재의 집 초인종을 눌러보곤 하는 소녀인데, 선재의 불행과 연결된 것처럼 그려지는 맥거핀이자 선재와 솔을 이어주는 장치 정도로 등장한 인물이다.
두 명의 스토커
사실상 솔과 스토커 소녀의 행위는 다르지 않다. 오히려 솔은 선재의 미래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시간 이동을 한 2008년에서부터 꾸준히 선재의 사적 영역에 무단침입하는 더 집요한 스토커의 모양새를 보여준다. 그러나 솔과 선재는 어차피 운명적인 관계라는 드라마의 전제가 솔의 스토킹을 로맨스를 위한 정당한 장치로 만들어준다. 솔은 스토커 또는 ‘사생’이라는 오명을 피해서 정당하게 스타의 삶에 개입하는 판타지적 인물이다.
"선재 업고 튀어"는 여기서 더 나아가 스타를 위기로부터 구원해내는 팬의 마음과 행위까지를 그려낸다. 이 지점에서 오늘날 팬덤의 존재감과 기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 30여 년간의 케이팝 아이돌 산업에서 특기할 만한 변화 중 하나는 팬의 행위력이다. 팬의 어원인 ‘fanatic(광적인 사람, 광신도)’이라는 표현처럼 팬은 비이성적인 존재라는 점이 팬에 관한 가장 근본적이고도 오래된 스테레오타입이다.
그렇기 때문에 팬의 행위는 팬‘질’로서 폄하되고 팬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기도 하며, 한편으로 자신의 우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와 애정이라는 그 순수성이 팬의 본질이라고 이상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돌 산업이 팬덤을 바탕으로 거대 시장화되고, 팬덤의 소비력이 이 산업을 지지하는 토대가 되면서 팬덤이 스타를 향유하는 방식이 변화했다. 팬은 단순히 스타에 대한 눈 먼 사랑을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타덤을 유지시키고, 관리하고 심지어 육성해내는 위치에 서게 된다.
팬덤, 체계화 및 산업화
이미 2000년대 후반 2세대 아이돌 시점부터 팬의 달라진 문화실천에 관한 담론이 형성되었고, 이 주제로 논문을 쓴 정민우와 이나영(“스타를 관리하는 팬덤, 팬덤을 관리하는 산업: ‘2세대’ 아이돌 팬덤의 문화실천의 특징 및 함의”, 2009)은 ‘스타(아들) - 팬덤(엄마) - 기획사(아빠)’라는 흥미로운 구도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팬의 관리자로서의 위치는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서 팬들이 ‘국민 프로듀서님’이라는 호칭을 얻으면서 더 가시화되었고, 팬덤 문화는 더욱 체계화되고 산업화되어 가고 있다.
팬심은 가장 사심이 없기에 역설적으로 스타를 둘러싼 이해관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들기도 한다. 2009년 동방신기 3인의 전속계약 해지 소송 시 법정을 드나들며 방청 기록을 공유하고 소송 과정에 대한 리터러시를 기르던 팬들의 모습부터 최근 SM이나 하이브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기획사의 경영권 구조를 도식화하여 공유하고 쟁점을 짚는 팬들의 모습까지, 팬은 자신의 스타를 지키기 위해 미디어 산업과 스타덤의 작동 방식을 익힌다.
스타덤을 관리하기 위한 팬의 적극적 행동력은 때로는 스타 자체를 향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팬들이 자신의 스타에게 ‘연애를 해도 좋으니, 들키지만 말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도 나를 같은 방식으로 사랑해달라’는 요구라기보다는, ‘내가 너를 지속적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스타로서의 너의 명분을 다하라’는 고도의 합리적 요구에 더 가깝다.
최근 한 여성 아이돌의 공개 연애에 대해 팬이 강경하게 대응한 사례를 두고 팬과 아이돌의 관계는 ‘유사 연애’를 넘어 ‘계약 연애’라는 평가가 이루어진 것(이재원&이주현, “케이팝 아이돌의 연애는 왜 ‘위기’인가?: ‘유사 연애’를 넘어 ‘계약 연애’ 시장으로”, 2024)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다.
사랑보다 복잡한 팬심
선재를 지키는 솔의 모습에서도 언뜻 이런 태도가 비친다. 둘의 관계에서는 사랑을 이룩하는 것보다도 선재가 생존한다는 것이 우선순위다. 솔은 선재의 연인이기 이전에 팬이고, 그래서 선재의 ‘지속가능한’ 삶을 성취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 또한 지속하는 방법이라고 솔은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러한 사랑의 방식이 선재의 주체적 선택을 제한하기도 한다.
선재는 솔을 사랑하기 때문에 솔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부터 목숨까지 많은 것을 기꺼이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고, 그것이 자신의 삶이 더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솔은 타임슬립이라는 자신만이 지닌 자원을 활용하여 선재의 ‘탈선’을 선제적으로 막는다. 로맨스를 지우고 본다면, 이는 곧 스타덤을 관리하는 팬의 마음이자 실천으로 읽어낼 수도 있다. 스타를 존재하게 하고, 그의 스타덤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선택들. 팬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지만 팬에게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처럼 팬심이란 "선재 업고 튀어"를 읽어내는 하나의 중요한 경로다. 팬덤이 산업화, 조직화, 합리화되면서 ‘순수한 애정’을 잃어가는 것으로 보이고, 그 과정에서 팬덤의 어떤 목소리들은 팬덤 밖에서는 건강하게 해석되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팬의 존재론은 스타의 존재를 전제로 하므로, 팬덤의 문화실천의 근간에는 항상 스타덤을 지켜주고자 하는 팬의 마음이 존재한다. "선재 업고 튀어"는 덕질과 연애감정의 교집합을 이용하여, 팬심의 역설적 측면들을 죽음을 거스르는 운명적 사랑이라는 장르적 설정 속에서 납득할 만한 것으로 바꾸어낸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대상을 향한 깊고 얕은 팬심을 경험해 본 적 있기에 팬의 감정과 사랑의 감정을 오가며 이 드라마를 즐거이 시청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기꺼이 업고 튀고 싶은 마음, 그것이 이 로맨스 드라마가 자극하는 감정이었으며, 이는 부지불식간에 스타덤과 팬덤의 공생 관계에서 나타나는 많은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끝)
글 작성일 : 2024-06-12
저자 소개: 글쓴이 박소정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 후 동 대학의 언론정보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중문화와 디지털문화 영역을 연구해 왔으며, 한국과 동아시아 사회의 ‘종족-미디어정경(ethno-mediascapes)’에 주목하며 인종∙종족 문제와 미디어 환경이 교차하여 만들어내는 여러 현상을 관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