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웹소설·웹툰이 점령한 TV …"원작이 있어야 성공한다"

웹소설·웹툰의 드라마화는 단순 트렌드를 넘어 콘텐츠 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한국 드라마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다만 이와 더불어 지상파 방송제작사의 단막극 등을 통한 신예 창작자들을 발굴해내는 시스템이 있어야 글로벌 시장에서 K드라마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Bluedot Admin

하 지 수 | 위드온 뉴스


최근 몇 년간 웹소설과 웹툰의 드라마화가 급증하면서 한국 드라마 산업의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신선한 콘텐츠의 원천으로서 다양성과 창의성을 한층 높임으로써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경쟁력과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웹소설 및 웹툰의 드라마화는 일시적인 트렌드에 머물지 않고 콘텐츠 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웹소설·웹툰 기반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원작 특유의 독창적인 설정과 탄탄한 스토리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반가운 상황이다. 웹소설과 웹툰의 경우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전, 이미 온라인에서 인기가 검증된 만큼 흥행보증수표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웹소설은 원작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팬덤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로 만들었을 경우 시청률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선례였다.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 및 캐릭터의 매력이 오롯이 드라마에 담긴 덕분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 사례가 탄생하자 다양한 장르의 웹소설들이 드라마로 만들어져왔다.

웹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태원 클라쓰”나 “스위트홈”과 같은 드라마를 보면 원작 웹툰이 갖고 있던 독특한 비주얼과 감성을 충실히 재현함으로써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웹툰의 경우 연재 형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점이 드라마의 에피소드 구성과 잘 맞는다. 웹툰의 드라마화가 매력적인 선택지로 고려되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다.

한시적 트렌드?

웹소설·웹툰의 드라마화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라는 특징에 의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큰 인기를 끌며 종영한 “선재 업고 튀어”가 좋은 사례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드라마 방영 전후로 원작 웹소설의 조회수는 4배, 매출은 8.2배 증가했다고 한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역시 원작 웹툰 거래액이 드라마 방영 전 대비 17배 증가하며 엄청난 수익을 거두어들였다. 이처럼 OSMU를 통한 원천 IP와 드라마의 상호 성장 가능성이 크기에 웹소설 및 웹툰의 드라마화는 추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웹소설과 웹툰의 활발한 OSMU가 일어나고 있는 현재, 그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이는 한국형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담은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빙”은 성공적인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전형으로 간주된다. 무엇보다 원작 웹툰 작가인 강풀이 직접 각색에 참여함으로써 원작과 드라마 간의 높은 연결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강풀 작가는 직접 드라마 대본을 집필했다. 원작에 미처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더하고 ‘프랭크’나 ‘전계도’와 같은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강풀 작가가 이전에는 원작 판권이 판매된 후 2차 창작에 관여하지 않아 왔던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참여였다. 그리고 이는 곧 드라마의 성공에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매주 시한에 쫓겨 마감을 해야 하는 압박 속에서 캐릭터가 평면화 되고 마는 웹툰의 단점을 보완, 오히려 캐릭터들의 서사를 보다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구현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화의 딜레마

물론 모든 2차 저작물이 항상 흥행했던 것은 아니다. 웹소설이나 웹툰을 드라마로 재창작하는 과정에서는 원작을 드라마 문법에 맞춰 각색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 사건이나 인물이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때로 원작의 매력을 반감시켜 원작 팬층의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22년 최고의 화제작, “재벌집 막내아들”의 경우를 살펴보자. 작품은 동명의 원작이 이미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만큼 흥행은 보증되었다고 여겨졌다. 실제로 방영 후 드라마는 순항을 했고, 최고 시청률 26.9%를 찍어 JTBC 역대 시청률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마지막 회가 방영된 후 시청자들의 엄청난 질타와 혹평을 받았다. 원작과 달리 주인공 윤현우가 금수저로 다시 환생해 재벌집 회장이 되는 서사를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 사이다 같은 청량감으로 대리만족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드라마는 우리 사회를 향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데 무게를 두었지만 원작과 비교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최근 공개되어 혹평을 받았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2”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 역시 웹툰 기반 작품이었지만 “무빙”과 다르게 원작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바로 이 점이 역효과를 낳았다. 세계관을 원작 밖으로 확장시켰으나 오히려 지나치게 복잡한 이야기와 많은 인물들의 얽힌 욕망을 다룸으로써 중심 스토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는 비판이 많았다. 물론 원작 웹툰 작가 김칸비의 자문을 받았다고 했지만 원작 고유의 매력을 잃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요컨대 웹소설이나 웹툰을 영상화할 때 마주치는 딜레마는 원작과 너무 똑같아도, 반대로 너무 달라도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그만큼 원작이 지닌 아우라에 대한 팬덤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드라마로서는 원작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닌 그 자체 넘어야 할 허들이 되고 마는 셈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이나 “스위트홈2”은 웹소설·웹툰 기반 드라마가 시청자의 호응을 얻으려면 원작의 해석이나 변형을 어느 정도까지 가져가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를 남겼다.

원작 특유의 독창적인 설정과 탄탄한 스토리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최고의 화제작, “재벌집 막내아들”은 원작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원작의 의도를 훼손한 설정 탓에 적잖은 비판과 혹평을 감내해야 했다.
웹툰이나 웹소설 원작의 유무는 영화의 흥행에도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거대 자본이 들어간 영화 "외계인 1부, 2부"는 불친절한 설정과 스토리 전개로 혹평을 받았다.

방송가 지각변동

모든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란 없다. 완전히 실패하거나 부분적으로 비판을 받는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OSMU가 대세인 점은 부인할 수 없다. OTT 플랫폼들의 시장 각축전이 배경으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OTT는 OSMU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플랫폼 간 우수 콘텐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작비와 시간이 덜 소요되는 웹소설·웹툰 IP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온라인에서 성공한 바, 이는 주목도 및 시청률 확보에 대한 불확실성을 크게 줄여주기 때문에 가치 높은 콘텐츠 IP를 확보하려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OTT의 영상 콘텐츠 시장 진입으로 인한 OSMU의 가속화 현상은 우리나라 방송 제작 환경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먼저 긍정적인 변화로는 신인 창작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면서 신선한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지상파 방송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는 편성이나 광고 등의 이유로 확실히 검증된 인기 작가 위주로 기용하려던 관행이 강했다. 반면 지상파 방송의 한계를 갖지 않는 OTT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신인급 작가, 연출진, 배우들에게도 기회가 생겼고, 그 결과 참신한 시각의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티빙의 “어른연습생“으로, 작품을 집필한 김현민, 방소민, 진윤주는 CJ ENM의 신인 창작자 발굴을 위한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작가들이다.

반대로 OTT 플랫폼의 부상이 방송계에 가져온 위기의 징조도 있다. 드라마 제작비 상승 및 편성 감소로 인해 드라마 제작이 침체되고 있는 상황이 그것이다. 수년 전과 비교해 드라마 제작비는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이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드라마 편성이 안 되고, 편성이 되지 않으니 수익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실제로 3~4년 전까지만 해도 방송제작사들의 한 해 드라마 제작 편수는 170여 편이었지만 현재는 3분의 1로 줄었다. 자체 광고 수익을 내지 못하게 된 방송제작사들은 플랫폼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이에 시장을 장악한 OTT는 더욱 보수적인 기획을 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극상위 창작자들만 살아남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K드라마의 미래

웹소설과 웹툰은 그들만의 독특한 매력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K드라마 산업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었다. 드라마는 이들의 장점을 수용함으로써 그 서사 구조를 다양화하고 새롭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창작해낼 수 있다. 현재도 웹툰·웹소설과의 상호작용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매료시키고 있는 K드라마인 만큼, 앞으로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반면 웹소설 및 웹툰이 드라마와의 관계에 있어 원천 IP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양자는 일면 경쟁관계에 있음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바일 시대, 사람들은 드라마를 볼 시간에 웹툰이나 웹소설을 본다. 게다가 이제는 원작 작가들이 직접 드라마 각색에 참여하기까지 하면서 웹소설과 웹툰이 드라마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원작의 디테일을 가장 잘 아는 원작자의 손으로 드라마의 매력을 더하겠다는 의도인데, 이는 OSMU 시스템 바깥에 있는 창작자들에게는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OTT와 결합한 OSMU는 점점 더 신예 작가의 배출을 막고 있는 장벽이 되어가고 있다. 제작 편수가 크게 줄어드는 가운데 웹소설·웹툰의 드라마화가 빈번해지면서 자연스레 방송국들은 신예 드라마 제작자를 발굴하는 일에도 소홀해졌다. 이에 신예 작가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려면 단막극 제작이 필요한데, 지상파 중 유일하게 KBS만 단막극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간 차세대 작가, 배우, 연출을 배출해낸 통로가 단막극이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상황은 매우 안타깝다.

사실 K드라마의 명맥은 전통적으로 단막극을 통해 이어져왔다. 단막극은 신인 PD와 작가를 검증할 수 있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해 낼 수 있는 장이었다. 방송제작사들은 축소와 폐지를 반복해온 단막극을 이제라도 새로운 드라마를 키워낼 수 있는 투자로 봐야 하며, 한류를 이어가기 위한 원천으로 인식해야 한다.

요컨대 K드라마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웹소설과 웹툰을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신예 작가와 제작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단막극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신선한 아이디어와 창의적 인재를 발굴해내는 풍부한 제작 환경이 갖춰져야 K드라마의 미래도 더욱 밝아질 것이다. (끝)

작성일: 2024년 7월

저자소개: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문화콘텐츠 크리에이터이다. 매체 '위드온 뉴스'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