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영원한 청년 김민기의 ‘아침이슬’ 가사 분석 ... 열린 결말의 성장문학
필자가 ‘아침이슬’에서 손꼽는 시어詩語도 ‘배운다’이다. 특히 ‘(작은) 미소를 배운다’를 주목해 본다. 미소를 배운다니, 무슨 말인가? 구글에서 '미소를'을 검색해 보면 '짓는다', '띤다'가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정 길 화 | KOCAF 이사, 동국대 특임교수
김민기(1951~2024)의 ‘아침이슬’.한국 현대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이 노래보다 감동적인 작품이 있을까? 아름답고 서정적인 가사, 유려하면서도 비장한 곡조, 시련과 고난을 감내하는 구도자적인 선언... 이 노래를 접한 사람이라면—그것도 청년기에—엄숙하고 경건한 각오를 다지지 않을 수 없다. 듣다 보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몸을 바쳐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안일한 일상에 사로잡힌 스스로를 겸허하게 돌아보고 치열하게 반성하게 한다. ‘아침이슬’의 힘이다.
“... 김민기 작사 · 작곡의 노래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 한 청년의 실존적 고뇌와 결단을 담은 가사의 이미지 전개도 일관되고 정연하다. 고민과 마음의 정돈, 시련이 예정되어 있는 광야로 나아가고자 결단하는 주인공의 심리적 흐름이, 밤에서 새벽을 거쳐 아침과 한낮으로의 시간 변화, 고민의 어두운 공간에서 아침이슬이 맺힌 동산을 거쳐 묘지가 있는 광야로의 공간 변화를 통해 탁월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평론가들에 의해 ‘한국 대중음악을 세계 수준에 올려놓은 곡’이라는 극찬을 받았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아침이슬’, 집필자는 문예평론가 이영미)
‘찢어진 악보’ 속 기적
왕년의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나온 백과사전에 수록될 정도로, ‘아침이슬’은 은밀히 구전되는 설화가 아니라 정사(正史)의 항목으로 당당히 올라 있다. 더 이상 보태고 고칠 말이 없다. 세간에 알려진 내용을 정리하면 이 노래는 “1970년 8월 28일에 김민기가 만들었으나 악보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양희은은 김민기가 악보를 버리기 전에 노래를 듣고 마음에 들어 악보를 맞춘 다음 그 노래를 자신이 부르고 싶다고 그에게 말했고, 그는 그것을 허락했다...”
실제로 양희은은 “미국으로 떠나는 어느 선배 환송 음악회에서 ‘아침이슬’을 들었다...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콧날이 시큰거릴 정도였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이어서 “친구 분이 ‘민기가 악보에 적는 걸 봤다’고 하셨다. 그 악보는 찢어진 채로 바닥에 버려져 있었고, 악보 조각을 귀한 보물처럼 안고 집에 와 조각을 테이프로 맞췄다...”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침이슬’은 1971년에 양희은의 노래로 음반으로 발표되었고, 얼마 후 김민기의 1집에도 수록되어 그의 20세를 고스란히 웅변하고 있다.
‘아침이슬’은 곡에도 주목을 해야 한다. 더욱이 김민기의 작사 작곡이 아니랴. 예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도 이를 중시해 “4/4박자 장조, A-A’-B-C의 네 도막 형식을 지니고 있다. 구조적으로 잘 짜인 화성과 선율을 지니고 있어 균형감과 안정감을 지니고 있으며, 종반의 절정부는 화려하면서도 크게 스케일을 넓히고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한국 대중가요의 전형적인 전개 방식인 A-A'-B-A에서 벗어나 메인 테마(A)로 돌아오지 않는 파격적인 구조다. 이는 광야로 떠나는 끝 부분의 가사와 맞물려서 ‘혁명적 낭만주의’를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음악시간
누구에게나 ‘아침이슬’과 관련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노래를 50년 전에 접했다. 고등시절 정규 음악 수업 시간에 ‘아침이슬’을 불렀다. 당시는 유신 시절이었지만, 이 노래가 1973년에 건전가요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시절 음악 수업에서는 교과서에 나오는 '선구자', '안니 로우리', '산타 루치아' 등의 곡들을 주로 다루었지만, 가끔 '아침이슬', '아름다운 것들', '얼굴' 등의 노래도 함께 불렀다.
50년 전에 '아침이슬'을 듣고 느낀 감정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히 김민기라는 이름도 몰랐으며 맑고 청아한 양희은의 목소리가 ‘원전’이었다. 송창식, 이장희는 TV프로그램 ‘금주의 인기가요’를 통해서 알아도 김민기나 한대수는 잘 모르던 시절이다. 김창남 교수의 말처럼 세상에는 방송에 나오는 노래 이외에도 많은 곡들이 있었다. 이 시대를 겪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학교에서는 '반공'과 '승공통일'을 주제로 한 숙제들이 있었던 '박정희 시대의 지방 소도시 소년의 일상적 삶'이었다.
‘아침이슬’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는 앞서 말한 “아름답고 서정적인 가사, 유려하면서도 비장한 곡조...”로 정리할 수 있지만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의 수용과 체험이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에 이렇게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었을 리는 없다. 다만 당시 다른 한국 대중가요들과는 달리, 이 노래가 격이 다르다는 인상을 확실히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노랫말에 ‘묘지(墓地)’가 들어간 것에는 뜻밖의 느낌이 있었다. 다소 생경한 감정과 함께, 이런 말도 대중가요에 담길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탄생 비화
‘묘지’의 내력은 최근에 알게 되었다. “미술대학에 입학하고 집이 정릉에서 수유리 우이동 쪽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기가 야산에 있었고 무덤도 몇 개 있긴 있었는데 반지하창고. 옛날에 연탄들도 갖다놓고. 거기를 처음으로 제 개인 작업실로 쓸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이제 밤에 늘 그림 작업하다가 이 작업이 하다 보면 막히잖아요. 막히면 기타 잡고 노래 만들고 그러다가 또다시 그림 작업으로 돌아가고(....) 한밤중이었는데 그때 그림 작업이 막혀서 노래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침이슬’이었는데....”
고 김민기 선생이 직접 밝힌 ‘아침이슬’의 탄생 비화다. 2018년 9월 13일 JTBC 뉴스룸 문화초대석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의 대담에서 그가 토로한 말이다. 천하의 손 앵커가 감격해 하면서 "어쩌면 오늘 이후로 문화초대석은 그만해도 될 것 같다"고 한 그날, 김민기는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그는 "아무래도 '아침이슬' 얘기를 꺼내실 것 같아서 그래서 이 말씀 드리려고. 그런데 이 얘기는 어디서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얘기라서..."라며 운을 뗐다. 말하자면 ‘저자직강’인 셈이다.
그동안 세간에 ‘아침이슬’은 “어느 날 술을 마시고 공동묘지 근처에서 자다가 아침에 햇빛을 받으면서 깨어났을 때의 경험을 그저 가사로 옮기고 곡을 붙인 노래”라는 설이 있었다. 이제 작가 본인의 증언으로 그 실상이 확인되었다고 하겠다. 69학번으로서 20세 전후의 젊은이가 청춘기에 겪는 명정(酩酊)의 결과물이라고 하면 호사가들에게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작품의 동기를 말초적으로 보는 감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묘지’로 인하여 이후로 작가와 작품에 대한 오해와 수난이 계속된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예술은 체험의 자판기가 아니다.
약관 20세 데뷔작
다른 인터뷰에서 그는 “대학에 막 들어가고 보니까 그전까지 살아오던 생활하고 많이 달라졌고 세상의 모습도 자꾸 보게 되고.. 그래서 아마 어떤 새로운 삶에 대한 각오 같은 것을 담아보려고 하지 않았나”고 답한 적이 있다. 어떤 작품이 개인적인 사연과 정서에서 출발했을 때 이것이 공감을 얻고 보편성을 획득함으로써 감동은 확산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감정이입을 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 세월을 넘는다. 시간의 마모성(磨耗性)마저 극복할 때 우리는 이를 명작이라고 한다. 그렇게 ‘아침이슬’은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이 작품을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실상 그의 데뷔작이기 때문이다(고교시절에 만들었다는 ‘친구’가 있지만 문화계에서는 대체로 ‘아침이슬’을 첫 발표작으로 보고 있다). 작가에게서 데뷔작의 중요성은 여러 경로로 언급된다. 문학평론가 김종회는 이병주의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논하면서 무릇 데뷔작에는 향후 그 작가의 작품체계 전체의 진행 방향, 또는 그가 설정하고 있는 작품의 운명적 존재양식에 관한 예표(豫表)가 여러 유형으로 함축되어 있다고 보았다. 작가의 데뷔작에는 내부에서 불붙기 시작한 예술에의 열망이 집결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침이슬’은 작가가 이후 겪게 되는 행로를 시사하고 있다.
JTBC 뉴스룸 대담에는 ‘아침이슬’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하나 더 나온다. “... (처음에) 가사를 '그의 시련일지라'라고 써놨는데 거기서 음악이 더 진행이 안 되더라고요. 꽉 막혀서 더 나아가지 않아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나의 시련'으로 바꿔봤어요. (...) 바꾸니까 금방 다 풀리더라고요, (....) 그게 당시 젊은이들한테 그 부분이 그렇게 읽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많이 부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얼핏 해 봅니다...” 즉 '그의 시련'에서 '나의 시련'으로 바꿈으로써, 절대자의 고행이 아닌 개인의 시련이 되었고, 이는 공감의 구체성과 시대를 초월하는 소구력을 부여했다.
‘배운다’와 ‘가노라’
노래 채집가 주철환은 김민기를 사숙(私淑)했음을 고백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청소년 시절 두 사람은 한밤에 라디오 속에서 내밀히 그러나 일방적으로 만났다. 주철환은 ‘아침이슬’의 가사에서 ‘배운다’와 ‘가노라’를 주목한다. 배우고 마침내 떠나는 것은 치열한 입산 수도 후 구름 타고 사바세계로 하산하는 수행자를 연상시킨다. 이 대목에서 '실천궁행'이나 '알면 행하라'와 같은 금언, 그리고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논어 이인편(里仁篇)에 나오는 이 말의 뜻은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기실 저 거친 광야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필자가 ‘아침이슬’에서 손꼽는 시어도 ‘배운다’이다. 특히 ‘(작은) 미소를 배운다’를 주목해 본다. 미소를 배운다니, 무슨 말인가? 구글에서 '미소를'을 검색해 보면 '짓는다', '띤다'가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운율을 위해서라면 '띠운다'까지 가능하다). 작중 화자는 ‘긴밤 지새우고 아침동산에 올라 진주보다 더 고운 이슬방울을 보고....’ 미소를 짓거나 띠지 않고 왜 배운다고 했을까. 미소를 짓는다면 깨달음의 염화미소(拈花微笑)가 될 것인데 배운다니 뜬금없지 않는가. 이는 ‘아침이슬’이 성장문학(성장소설)의 궤(軌)에 놓여 있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이제는 국민가요가 된 ‘아침이슬’의 가사를 찬찬히 음미해보자. 기본 전개는 '선경후정(先景後情)’이라고 할 수 있다. 교과서적인 설명을 빌리면 ‘선경후정’은 먼저 자연의 경치를 묘사한 뒤에 화자의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두보(杜甫)의 시에서 주로 나타나고 우리 옛 시조나 현대시에도 허다하다. ‘아침이슬’에는 먼저 아침동산에서 본 아침이슬의 정경이 그려지고 작중 화자는 여기서 작은 미소를 배운다. 또한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는 태양과 찌는 더위가 있고 마침내 거친 광야로 떠나는 각성된 자아가 등장한다.
‘성장문학’ 혹은 ‘영웅신화’
형식이 그렇다면 서사적 구조는 어떠한가. ‘아침이슬’은 크게 보아 ‘현실과 일상–인식과 각성–시련과 고행–해방과 실천’의 단계로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성장문학(성장소설)의 전개 방식과 유사성을 띠고 있다. 성장소설이란 ‘유년기에서 소년기를 거쳐 성인의 세계로 입문하는 한 인물이 겪는 내면적 갈등과 정신적 성장,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각성의 과정을 주로 담고 있는 작품을 말한다. 성장 소설의 여섯 가지 모티프 중에서 ’아침이슬‘은 ‘길의 발견’과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성장소설은 ‘위기-극복-승리’의 영웅소설적 유형구조와 함께, 통과의례로서 ‘분리-전이-결합’의 세 단계로 구성된다. 판 헤네프(A. V. Gennep)의 설명에 따르면 1단계에서, 사람들은 현재 상태로부터 멀어져서 다른 것으로 옮기려는 준비를 한다. 동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보고 작은 미소를 배우는 것은 이를 의미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2단계는 한 공간이나 상태를 벗어났지만 다음 공간이나 상태로는 아직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 태양, 묘지, 한낮에 찌는 더위...의 단계다. 3단계에서는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인 후, 사회에 재진입한다. 서러움 모두 버리고 저 거친 광야로 떠나는 것이다. 재진입 전(前)까지의 단계다.
후반부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의 부분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중 ‘그해 겨울’(1979)에서 주인공인 눈 덮힌 창수령을 넘어 겨울 대진 바닷가에 도착한 대목이 연상된다. 대자연에서 깨달음을 얻은 작중 화자 ‘나’는 독극물이 든 병을 편지와 함께 던져버린다. 그리고 무엇을 던졌냐고 묻는 동행 칼갈이 사내에게 “감상과 허영을요. 익기도 전에 병든 내 지식을요.”라고 말하고 상행열차에 탑승한다... 이후 주인공에게 어떤 앞날이 펼쳐지는지 작가는 말하지 않는다. 이 작품 역시 성장소설의 범주에 들기 때문에 어떤 기시감을 준다. 물론 각성의 주체가 된 ‘아침이슬’의 나와, 감상(感傷)에서 벗어난 ‘그해 겨울’의 나는 사뭇 다르다.
성장소설의 구조는 자연스럽게 캠벨(J. Campbell)이 밝힌 ‘영웅 신화의 원형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밝힌 신화의 17단계는 ‘출발–입문-귀환’의 3단계로 축약할 수 있다. 즉 1)일상으로부터 분리되는 '출발', 2)시련을 겪는 '입문', 3)회귀와 재통합의 '귀환'이다. 특히 3단계에서는 부활, 귀환, 영생 등의 서사가 주어짐으로써 신화는 완성된다. 그런데 ‘아침이슬’은 그렇지 않다.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은 시련을 감내하고 광야로 떠나겠다는 선언이 있을 뿐이다. 영웅신화로서는 미완성이며 달리 말해 ‘열린 결말’이다. 이 노래의 완성은 수용자들에게 달려 있다. 광야로 떠난 이후, 당신은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작가의 것, 시대의 것
‘아침이슬’에 대해서 김민기는 오래전부터 일관된 입장을 보여 왔다. “‘아침이슬’이나 ‘상록수’ 얘기만 나오면 굉장히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이시던데 왜 그러나? - 그 노래들이 내 몸에서 나간 거긴 한데, 나간 것의 백배가 되어서 돌아오면 내 몸이 버거울 수밖에…” 또한 “(나는) 주변의 모습을 기록했을 뿐인데 (나에 대한 얘기는) 다른 사람의 얘기로 들린다. 이상하다...”는 인터뷰도 보인다. 대학 시절 듀엣으로 ‘도비두’ 활동을 같이 한 다자이너 김영세 역시 “아무리 주위에서 김민기를 ‘운동권의 대명사’처럼 이야기해도,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보아온 민기는 그냥 순박한 예술가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수용자들에 의해 ‘시련’과 ‘나 이제 가노라’의 선언이 민주화운동의 그것으로 적극적으로 해석되었고 저항가요의 대명사가 되었다. 1987년 6월 항쟁 다시 시청 앞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노제 때 '아침이슬'을 100만명이 함께 부르자 김민기는 고개 숙인 채 "이제 내 노래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는 말이 전설처럼 전한다. 창작자의 손을 떠나면 노래는 대중의 것이고 시대의 것이 된다. 아니 그에게는 족쇄였는지도 모른다.
원래 문학 작품에서 ‘이슬’은 신선함과 순수함의 상징이다. 반면 아침에 나타났다가 오후에 사라지는 덧없음으로 일시적인 것에 대한 은유를 나타내기도 한다. 권위주의 시대에 민중은 아침이슬에 ‘작은 미소’의 깨달음을 얻는 작중 화자에 자신을 투사했다. 다만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를 불렀으되 정작 광야로 떠난 이는 소수다. 일관된 길을 걸어간 이는 더욱 적다. 어쩌면 대중들은 시대의 질곡에 굴복한 자신의 나약함과 자책감을 이 노래로 위무했을지도 모른다.
시준화석과 시상화석
그리고 5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2024년 7월 21일 김민기는 세상을 떠났다. 고인을 향한 추모와 경의의 열기가 도처에 미만(彌滿)해 있다. 그를 수식하는 많은 말 중에 ‘영원한 청년’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불후의 작품으로 세인들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살아있음으로써 '영원한 청년'이 되었다. ‘아침이슬’은 계속 시대의 노래, 우리들의 노래가 될 수 있을까. 약관 20세에 만든 '아침이슬'은 아마도 우리 시대의 화석(化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석에는 시준화석(표준화석이라고도 한다)과 시상화석의 2가지가 있다. ‘아침이슬’은 이 중 무엇에 해당할까.
우선 시준화석(示準化石)은 그 생물이 서식하고 있던 시대를 추측할 수 있게 해 준다. 가령 삼엽충은 고생대, 암모나이트와 공룡은 중생대, 맘모스는 신생대를 나타내는 것처럼 그 화석이 포함되어 있는 시대를 특정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시준화석이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지층이 쌓인 시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후세의 사가(史家)가 이 시대를 발굴했을 때 ‘아침이슬’과 ‘상록수’가 출토되면 1970년 이후 반세기의 한국 현대 역사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연지사다.
그에 비해 시상화석(示相化石)은 지층이 형성된 시기의 환경을 보여주어, 특정 지층의 형성 환경을 유추할 수 있는 화석을 의미한다고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번성하여 특정 환경에서 서식이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된 화석이다. 지구과학에서 시상화석이 되는 생물의 조건은 현재도 지구상에 서식하고 있어야 한다. 조개, 참치, 가리비조개, 너도밤나무나 단풍나무와 같은 식물, 산호 등이 해당한다고 학계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대에 따른 변화상을 유추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아침이슬’은 어떤 화석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이제 수용자들에게 달렸다.
(끝)
작성일 : 2024년 8월 9일
저자 정길화 : 1984년 MBC에 PD로 입사해 "세상사는 이야기", "인간시대",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교양 프로그램과 시사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었다. 2021년부터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으로 일하며 국제문화 교류와 한류 진흥을 위해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