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진부한 부부 사이에 멜로라니!"...K-콘텐츠 스토리텔링의 힘은 어디까지?

가족, 부부, 로맨스는 모든 문화권을 망라하여 보편적인 소재이며, 시청자의 관심이 가장 집중되는 장르이자 소재이다. 하지만 이들 간의 조합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부부 간의 로맨스는 ‘가족끼리 무슨?’ 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웃기는 조합이다. 하지만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그것을 해내는 중이다.

Bluedot Admin

정 영 희 | 고려대학교 정보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2024년 8월, ‘패밀리 멜로’를 표방하며 출발한 JTBC의 드라마 "가족X멜로"가 방영 2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TV(비영어) 1위에 올랐다. 이 드라마에서는 헤어진 부부 사이에 새로이 로맨스가 시작된다는 것이 주요 플롯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부부가 중심인 이야기는 불화, 외도, 이혼, 재혼에 집중되어있으며, 전 배우자 혹은 위기의 부부 사이에서 로맨스의 시작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부부 간의 관계를 재현하는 방식에 변화가 온 것일까?

지난 4월 종영한 “눈물의 여왕”에서도 위기의 부부 백현우-홍해인 커플이 다시 사랑에 빠졌고, “가족X멜로”에서 변무진-금애연도 그럴 것 같다. 종영까지 몇 회가 남았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분명 그러하다.

부부 로맨스

“가족X멜로”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한 남자가 개츠비급 재력가가 되어 가족 앞에 나타나 파란을 일으키며 시작된다. 11년 전, 금애연(김지수 분)은 벌이는 사업마다 족족 말아먹다가 종국에는 마지막 희망인 떡볶이 가게까지 사채업자에게 넘어가게 만든 남편 변무진(지진희 분)을 ‘갖다 버렸다’. 가족이 살기 위해 이혼한 것이다.

하지만 1년 전 애들 고모로부터 무진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고, 장례식에 못 갔으니 제사라도 지내야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으로 제사상을 차렸다. 그런데 제삿날 무진이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불쑥 나타났다. 그것도 가족이 월세로 사는 빌라의 건물주가 되어서.

졸부가 되어 돌아온 무진은 애연에게 재결합을 요구하고, 무능한 어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져온 딸 미래(손나은 분)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피 튀기는 전쟁을 시작한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이게 뭐야? 이러려면 이혼은 왜 했어?!

그렇다면 부부 간의 멜로, 로맨스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 구조로 구성되고 있을까? 완전하게 정착한 장르 혹은 소재라고 판단하기에는 좀 이르지만 ‘부부 멜로’는 캐릭터, 인물 역할, 인물 간의 관계에서 드라마 속 기존의 부부 재현과는 차이가 있다.

이야기의 구조는?

우선, 부부 로맨스의 주인공 부부는 젊고 유쾌 발랄하며, 가족에 대해 애정이 깊으며 규범적이다. 주인공이 젊고 유쾌 발랄하다는 설정은 연애를 젊은 기운의 상징으로 여기는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젊은 시절의 친구처럼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엄마, △△아빠, 혹은 여보/당신으로 부르며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떠올리기 보다는 이름을 부르면서 둘의 직접적인 연결을 강조한 것이다. 그들이 가족 호칭을 쓸 때는 가족 구성원이 위기에 처한 순간 뿐 이었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부부 간의 밀당은 현실 연인 사이에서 벌어질 법한 소소한 말다툼에서 나타나며, 삶의 지혜가 담겨있는 유치한 일상의 로맨스를 보여준다. 부부 사이에 오고 가는 ‘너’, ‘이 자식’, ‘죽을래?’ 등의 대사는 둘이 친구 같이 동등하고 친밀한 사이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 안보고 싶었냐?’, ‘내 인생에서 여자는 금애연 밖에 없다’, ‘나한테 다시 시집 올래?’ 등 연인 간에 주고받을 법한 대화가 부부 사이에 자연스럽게 오고간다.

모텔에서 부모님을 마주친 딸 변미래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가족과 멜로를 논하는 착한 드라마라는 평가다

가족 간의 관계도 조금 다르다. 젊은 연인 사이에 부모가 종종 훼방꾼이 되듯, 부부 로맨스에서는 자식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딸 미래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엄마를 지켰듯이, 아버지로부터도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래는 아버지를 신뢰하지 않았기에 아버지에게 ‘우리 가족 앞에서 꺼지라’고 말해왔다. 그런 미래를 무진은 ‘니 엄마 꼬실라고’, ‘나한테 뺏길까봐 불안하냐’라며 도발한다. 남남여, 여여남의 로맨스 경쟁이 아니라 아버지와 딸이 엄마를 두고 경쟁하는 설정이라니!

그렇다고 해서 부부 간 로맨스에 판타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 사람,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의 판타지가 애연을 향한 무진의 감정과 행동을 통해 구현된다. ‘내 인생에 여자는 금애연 밖에 없다’거나, 가족에게서 꺼져달라는 미래의 말에 ‘미안하다 못 꺼진다’며 영상을 보낸 것이나, ‘내게는 가족이 유일한 홈그라운드라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는 변무진의 고백은 애연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자 그녀와 함께 이룬 가족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다.

‘새 여자 만나라, 우리는 예전에 깨진 접시다, 당신 자리는 없다’는 애연의 말에 ‘이딴 얘기나 하려면 이쁘게하고 나오지나 말지, 잔인한 년’이라는 무진의 대꾸는 실연당한 현실의 남성이 내뱉을 만한 개연성 있는 말이어서 드라마적 상상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주목 받는 이유?

그러면 한국 드라마에서 부부에 대한 이야기가 로맨스 소재로 확장된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식의 변화를 통해 추정해볼 수 있다. 먼저, 이혼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넓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혼이 금기시되던 과거에는 드라마 속 부부 해체의 클리셰로 외도가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헤어진 부부간에 아쉬움이나 좋은 감정이 남아 있을 리가 없으니, 헤어진 부부 간의 로맨스는 설정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드라마 속에서 부부 갈등과 이혼의 원인이 다양하게 재현되면서 이혼한 부부의 관계 재설정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결혼을 사랑의 완성으로 재현해온 클리셰가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결혼생활에서의 어려움과 복잡성이 드라마 서사에 반영되면서 결혼을 사랑의 완성으로 재현하는 경향이 약화되었다. 그 결과 사랑->결혼->위기->이혼->사랑->(재)결혼의 순환고리가 형성될 수 있었다. 드라마가 결혼을 이상적인 형태로 그리기보다는 현실적인 성숙의 과정으로 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부 이야기에는 자연스럽게 어른들의 성장 서사가 담길 수 있게 되었다. 부부 관계의 회복을 다루는 이러한 드라마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커플들이 경험하거나 목격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하기에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파국이나 가정해체 혹은 권선징악으로만 끝나지 않는 어른들의 성숙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쓰는 부부 이야기

가족, 부부, 로맨스는 모든 문화권을 망라하여 보편적인 소재이며, 시청자의 관심이 가장 집중되는 장르이자 소재이다. 하지만 이들 간의 조합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부부 간의 로맨스는 ‘가족끼리 무슨?’ 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웃기는 조합이다. 하지만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그것을 해내는 중이다.

부부 간의 로맨스, 부부 멜로 소재는 K-콘텐츠의 스토리텔링 영역 확장을 위한 부단한 노력의 좋은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야기 창조의 오랜 역사 속에서 새 것을 찾아내기는 어려우나 새로운 방식으로 써 내려가는 것은 가능하다. 이혼이나 관계 회복을 다루는 드라마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경험하거나 목격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한다.

다시 쓰이는 부부 이야기는 가족 사이에 발생하는 복잡한 사안을 슬기롭게 해결해가는 성장의 서사를 구성해내며 시청자들에게 더 큰 감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끝)

작성일: 2024년 9월 8일

글쓴이 정영희는 고려대학교에서 언론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수용자연구에 관심이 많다. 현재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이며, 한림대와 수원대에서 매스미디어와 대중문화 콘텐츠에 관해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