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나단이 열어주는 다문화를 향한 길 : 다양성 너머의 목소리를 전달하다
조나단의 인종 유머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다문화 담론을 제시한다. '국민 흑인'에서 '흑인 국민'으로의 전환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다문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소정 |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유튜버이자 방송인인 조나단의 유튜브 채널에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제목의 시리즈가 새롭게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조나단의 유튜브를 꾸준히 시청해 온 구독자라면, 그가 말하는 ‘블랙 프라이데이’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11월 말의 대규모 세일 시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블랙’이라는 단어는 좁게는 스스로의 흑인 정체성을 지칭하며, 넓게는 그가 인종과 관련된 재밌는 무언가를 보여줄 것임을 암시한다.
아직 세 편의 영상만이 업로드되어 있긴 하지만, “조나단 스스로의 편견을 깨기 위한 팟캐스트”라는 소개문이 이 시리즈의 목표와 특성을 잘 드러낸다. ‘조나단 스스로의 편견’이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한국 사회가 특정 정체성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을 깨는 것이 이 시리즈의 목표다. 그리고 이는 조나단 자신이 한국에서 흑인으로서 살아가며 마주한 많은 편견을 기반으로 한 내용이기도 하다.
블랙 프라이데이의 반전
첫 번째 에피소드 “한국 생활 도합 67년. 외국인 편견 깨기”는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생활한지 적어도 15년이 넘은 20대 외국인 셀러브리티들이 모여서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또는 외국인처럼 보이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룹 GOT7의 태국인 멤버 뱀뱀, 미국인 방송인 매도우와 댄서 에밀리가 게스트로 참여했다. 영상 도입부에서 조나단이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한다고 ‘오오오 한국말 잘하시네요’ 하지 않는 그런 세상”을 생각하며 이 콘텐츠를 시작했다고 말하는 만큼, 게스트들은 모두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는 외국인들이다.
이들의 대화 속에는 흥미로운 경험담이 공유된다. 게임을 하다가 상대가 “너네 부모 외노자(외국인 노동자)”라는 비하 의도의 표현으로 공격했지만, 사실은 진짜 맞는 말이라서 타격감이 없다든지, 방송에서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여러 가지를 언급했는데 마지막에 언급한 “김치 좋아요”만 방송에 내보내진다든지 하는 일화들이다. 이 일화들 속에는 한국의 인종주의나 민족주의가 녹아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 “대한 흑인 협회 출동. 흑인 피지컬 편견 깨기”는 국내에 거주하는 나이지리아 출신 모델 두 명과 한국인 UFC 선수 김동현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흑인으로서, 또는 스포츠 선수로서 이들은 흑인의 신체적 특징이나 능력에 대한 편견을 짚어본다. 흑인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피부색이 아니라거나 모든 흑인이 운동 능력이 좋지는 않다는 등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나라별 축구’가 주제로, 축구선수 출신 또는 축구 애호가 셀러브리티들이 출연했다. 앞의 두 에피소드에 비해 인종이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국가 간 차이나 귀화선수 등의 주제가 다루어지며 이문화적(crosscultural) 이해가 드러났다.
웃음으로 도발하는 조나단
"블랙 프라이데이" 시리즈는 팟캐스트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 외에는 조나단 채널이 보여주는 아주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조나단은 꾸준히 흑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노는 방식으로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으로, 흑인으로서의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콘텐츠를 제작해 왔다. 예를 들어, “쏘울 없는 흑인 중창단” 시리즈에서는 흑인들은 ‘블랙 소울’을 갖고 있어 노래를 잘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한국에 거주하는 (하필) 노래를 잘 못하는 흑인 셀러브리티들을 모아 흑인 중창단을 꾸린다.
“미국 남매” 시리즈에서는 동생 파트리샤와 함께 미국에서 온 흑인인 척 흉내를 내며 한국 문화를 탐방하는 연기를 하기도 했다. 흑인 래퍼인 척하며 한국 힙합에 대해 코멘트를 하는 에피소드들도 있다. 한국인이, 또는 여러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흑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활용한 코미디인 것이다. 흑인의 외양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한국인스러움’이 그가 만드는 여러 콘텐츠 시리즈를 관통하는 재미다. 애초에 그가 셀러브리티가 된 것 자체가 10대 시절 "인간극장"에 출연해 여동생인 파트리샤와 말다툼을 하는 장면이었다. 너무나도 이국적인 외양을 한 남매가 영락없는 ‘K-남매’ 싸움을 보여주는 모습이 화제가 되어 오랜 기간 유행하는 밈으로 온라인을 돌아다녔다.
조나단이 다시 한번 셀러브리티로서 부상한 것은 2019년 그의 유튜브 채널 초창기에 올린 짧은 영상을 통해서다. 당시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조나단은 자신의 일상을 담은 짧은 영상들을 업로드하곤 했는데, 한 영상 속에서 친구와 나눈 대화가 한국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흑인 조나단이 대한민국 고등학교에서 사는 법”이라는 제목의 이 영상 속에서 조나단은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 자신이 어떤 친구인지를 물어보며 돌아다닌다. 그중 민석이란 이름의 친구에게 자신이 어떤 친구인지 묻자, 잠시 고민하던 민석이 “밝은 친구입니다”라고 답한다.
이에 조나단은 “아 밝아요? 원래 어두운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고, 민석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격렬히 손을 휘저으며 “아니에요”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에 주변 친구들도 호응하며 민석이 실언을 한 것으로 몰아가는 장난을 이어간다. 이후에도 조나단은 대화 상대방이 색깔, 밝기와 관련해 한 발언들을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몰아가는 장난을 즐기는 모습을 유튜브와 TV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보여주었고, 이는 상대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킨다는 의미에서 ‘암살 개그’라고 명명되었다.
인종 유머의 새로운 지평
조나단의 암살 개그가 흥미로운 이유는 여러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 국내에 인종 유머(race humour)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인종성을 동원하는 개그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특정 인종을 비하하거나 모방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이는 인종차별적 농담(racist joke)이나 종족적 비하(ethnic slurs)라고 지칭될 수 있는 것이다. 조나단의 유머가 이러한 기존의 코미디와 구별되는 것은 그가 지닌 당사자성 때문이기도 하다.
조나단은 종종 자신의 흑인성을 동원한 유머를 구사한 후에 “이건 저만 할 수 있는 거예요. 조심하세요.”라는 말을 재치있는 투로 덧붙이곤 한다. 조나단의 국적은 여전히 콩고민주공화국이지만, 매우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이주해 살았기 때문에 그의 문화적 정체성이나 감수성은 한국인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그가 흑인의 외모를 지니고 유창한 한국어로 하는 인종 유머는 매우 이질적이면서도 한국인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는 방식으로 한국의 개그 코드 속에 정착한다.
우리는 조나단의 유머를 통해 계속해서 정상성을 깨는 경험을 한다. 조나단의 친구 민석이 말한 ‘밝다’라는 표현이 성격이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는 피부색의 차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닐 수도 있고, 그것이 심지어는 공격성을 지닌 발화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조나단의 유머가 환기시킨다. ‘깜시’라는 별명을 친구에게 쉽게 붙이고, 흑인을 ‘깜둥이’로 지칭하는 문화가 공공연히 허용되는 한국에서, 조나단은 금기의 영역을 새롭게 설정한다.
궁극적으로, 조나단의 유머는 우리가 인종에 대해 더 폭넓게, 그러나 캐쥬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한국이 OECD 기준으로 본격적인 다문화 국가에 들어서고 있음에도 인종 담론이나 인종 감수성은 빈약한 실정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BLM 운동이나 AAPI 운동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또는 문화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의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성장하면서 인종을 바라보는 시선에 좀 더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인종 감수성의 성장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인종이란, 뭔가 새로운 이해와 감수성을 요하지만 ‘잘 몰라서’ 함부로 말하기는 꺼려지는 그런 주제가 되었다. 조나단이 인종 유머를 구사할 때마다 영상 속 다른 한국인 등장인물이나 한국인 스탭들이 크게 웃지는 못하며 ‘판사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라든지 ‘슬픈 생각, 슬픈 생각..’과 같은 자막이 따라붙는 것은 그런 사회 맥락을 반영한다. ‘재미있기는 한데, 어떻게 대꾸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성찰해보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가 인식하는 인종에 관한 지평이 넓어질 수도 있고, 무겁게 다루어야 할 주제와 유쾌하게 대화할 수 있는 주제를 식별하는 감각을 기르게 되며, 무엇보다 ‘타자’라는 존재 자체를 우리 울타리 ‘안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필자는 조나단의 유머가 갖는 효과를 ‘담론적 인종화(discursive racialization)’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싶다. 이 용어가 너무 학술적인 느낌이 든다면, ‘적극적 인종화’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이 표현은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담론적 탈인종화(discursive deracialization)’를 변형한 것이다. 담론적 탈인종화란 인종 문제인 것을 마치 인종 문제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처럼 담론화함으로써 인종 문제를 지워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난민을 반대하는 근거로, ‘그들이 다른 인종이어서가 아니라 일자리 등 경제적 문제 때문에 반대한다’라는 논리를 앞세우는 것이다.
조나단은 이와 반대로 많은 것을 인종의 문제로 치환한다. 암살 개그가 곧 상대는 전혀 인종적 차원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인종적 의미로 프레이밍하는 방식이다. 조나단 채널에 업로드된 많은 영상 제목에는 ‘흑인 조나단’이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 영상의 내용이 인종과 관련된 것이 아닐 때도 ‘흑인’이라는 용어를 포함한다. 유튜브의 주목 경제를 활용하는 전략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조나단이 자신의 흑인성을 계속해서 노출함으로써 우리는 그의 흑인성을 우리 일상 안에서 수용하게 된다.
'국민 흑인'에서 '흑인 국민'으로
조나단의 사례는 점차 화두가 되고 있는 문화다양성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과연 한 사회에 다양성이란 어떤 형태를 지칭하는 것일까? 넷플릭스가 지향하는 다양성과 포함성 정책을 언급하며 넷플릭스의 다양성 재현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한 Mareike Jenner는 ‘다양성의 수량화(quantification of diversity)’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성의 수량화를 핵심적으로 정의하는 대목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다양성의 수량화란 다양성 문제를 단순한 숫자로 축소하는 방식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백인 중산층, 건강한 몸을 가진 이성애자 시스 남성이라는 규범적인 기준과 다른 '차이'를 가진 이들은 그들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시간이나 대사의 양으로 평가됩니다. 이 과정은 '가시성 정치'로 축소되며, 이는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쉽게 수량화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현재 미디어에서 다양성이라는 이름 하에 목격하는 진보는 이런 수량화된 다양성에 더 가까워 보인다. 즉, 서사 속에 소수자 캐릭터를 끼워 넣음으로써 확보하는 다양성이다. 물론 이렇게 가시성을 획득한다는 것 자체가 다양성의 주춧돌이긴 하다. 그러나 ‘얼마나 재현되는가’와 더불어 ‘어떻게 재현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양성이 단지 구색 갖추기식 관습으로 변질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조나단은 한국 주류 미디어의 수량화된 다양성 너머에 있는 목소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한다. 인종 유머라는 것이 자칫 인종 문제를 가볍게 만드는 포스트인종주의적 위험이 있기도 하고, 실제로 엔터테인먼트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조나단의 콘텐츠를 통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매우 폭력적 형태의 인종차별까지 성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인종 유머가 우리 사회에 비어 있던 어떤 담론적 간극 혹은 공백에 유쾌한 이음새를 가져다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나단은 언젠가 자신이 이루고 싶은 최종 꿈은 ‘국민 흑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국민 흑인’으로서 아이콘이 되는 것을 넘어 ‘흑인 국민’이 차별적 시선 없이 받아들여지는 때가 우리 사회가 진짜 다문화 사회가 되는 때일 것이다. (끝)
작성일: 2024년 9월 12일
글쓴이 박소정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 후 동 대학의 언론정보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중문화와 디지털문화 영역을 연구해 왔으며, 인종∙종족 문제와 미디어 환경이 교차하여 만들어내는 여러 현상을 관찰해 왔다. 현재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