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강 노벨문학상의 함의와 한국 사회의 '민주적 회복력'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의 한 장면에서 문나영은 노벨문학상을 타기 위해(?!) 12살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왜 이민을 가느냐?”는 한국 급우들의 말에 작가가 꿈인 나영은 간단히 답한다. "한국사람들은 노벨문학상 못타..."
정길화 |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전까지 한국문단:
“저 포도는 신 포도야”
수상 후 한국인들:
“우리 포도가 최고여”
일베:
“저 포도는 빨간 포도야”
일부:
“저 포도는 내 취향이 아니야”
황석영:
“다른 포도에 주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문열:
“내 포도가 제일 많이 팔린 포도야”
한강:
“앞으로 6년 동안은 포도농사를 하겠다”
(이상 필자의 페이스북)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 최초다. 아시아 여성 작가로도 처음이라고 한다. 작가 본인의 영광이자 동시에 한국문학과 한국문인들의 쾌거다. 참으로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돌이켜 보면 노벨문학상은 한국문단에서 간절한 숙원(宿願)이었다. 웬만큼 이름있는 작가, 시인에게는 ‘우리는 언제쯤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멍에처럼 따라다녔다. 문인들에게만 그렇겠는가. 서구(西歐)는 그렇다 치고 인도,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의 문인들이 하나둘 노벨문학상을 받자 전국민적 소망이 되어버렸다.
노벨문학상과 관련하여 어렴풋이 기억나는 인터뷰가 있다. 오래 전 어느 각광받는 작가에게 노벨문학상 얘기를 꺼내자 그는 “한국 사람들의 노벨문학상 집착이 심하다”면서 “들판에 핀 꽃이 상을 받기 위해 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라는 나름 고상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어느 작가인지 기억이 불확실함).
이 말을 듣고 어쩐지 “저 포도는 신 포도야”라고 한 이솝 우화의 여우가 생각났었다. 거의 ‘안 받고 말지...’ 수준이다. 이렇듯 합리화를 하지 않으면 사람은 견디지 못한다.
그러다가 덜컥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가 났으니 경천동지할 일이다. 모두(冒頭)에 쓴 글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한국 사회와 문단에서 벌어진 일들을 필자의 페이스북에 함축성 있게 정리해본 것이다. ‘좋아요’가 꽤 많이 나왔다. ‘여우의 신 포도’로 시작하니 포도의 비유로 계속할 수 있었다. 대체적인 한국인, 일베 성향 한국인, 애써 폄하하는 일부 한국인 등은 쉽게 말해 ‘뇌피셜’로 그려본 것이다. 물론 황석영 등 특정 작가의 멘션은 실제로 그들이 하신 말씀에서 발췌, 요약한 것인데 따로 허락은 받지 않았다.
2024년 노벨문학상이 한국의 한강 작가에게 주어진다는 소식은 2024년 10월 10일 발표되었다. 이후 달포 가량 한국에는 한강 작가의 열풍이 불었다. ‘원어’로 된 수상 작품 백 만권이 팔렸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동안 노벨평화상을 필두로, 올림픽에서의 무수한 금메달, 칸느영화제, 아카데미상, 에미상, 골든글로브상, 그래미상, 빌보드상, 토니상, 퓰리처상 등 언론문화예술계의 세계적인 상을 한국 작가 또는 한국계 인물이 거의 석권한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숙제로 여겨졌던 것이 노벨문학상이다.
한강 작가가 이 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인의 숙원이 해결되었다.
‘좀비’에 대항한 ‘민주적 회복력’
노벨상 시상식날은 12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이 주최하는 공식 일정은 12월 6일부터 12일까지였다. 여기에는 작가의 소장품(찻잔) 기증에서 시작해 기자회견, 강연, 시상식, 만찬 등의 순서가 들어 있었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우리 모두가 기뻐하고 축하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충격과 경악의 급보가 타전되었다. 12월 3일과 4일 심야의 ‘(실패한) 비상계엄’이 그것이다. 온 국민들을 ‘계엄 트라우마’에 빠뜨린 이 사건은 국회의 계엄 해제와 두 번 만에 가결된 탄핵소추로 긴박하게 전개되었다.
2024년 12월은 한국인들에게 “한강 작가의 수상 시간과 내란 수괴 윤석열 탄핵의 시간이 오버랩”(문예평론가 이동연)된 타임라인이다. 내란 사태는 좀비의 악몽처럼 왔다. 비상계엄만 아니었다면 한국인들은 스웨덴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장면을 라이브로 보면서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숨가쁘게 진행된 계엄령 사태로 이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미디어의 탑뉴스도 바뀌었다. 12월 6일 기자회견, 7일 수상 기념 강연, 10일 시상식에서의 소감 등 한강 작가에게는 의견을 발표할 기회가 3차례 정도 주어졌다. 세계는 한국의 비상 사태에 대해 저자의 육성을 듣고 싶어 했고 한강 작가 역시 이 현안을 회피하지 않았다.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를 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6일 기자회견)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7일 수상 기념 강연)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 폭력의 반대편인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문학을 위한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다. ”(10일 시상식 수상 소감)
한강 작가의 멘션은 시시각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한국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에 나온 수상 소감은 미리 발표된 내용인 “이 상이 주는 의미를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와 달리 현장에서 “폭력의 반대편인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로 수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K-리터러처’는 끝까지 사람들의 긴장을 늦추게 하지 않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한강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통하여 한국 사회의 ‘민주적 회복력’을 극적인 방법으로 보여주었다. K-컬처는 파란만장한 한국 역사와 사회의 소산물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역설적인 한국 문학의 풍요로움’ 덕분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것은 “‘식민지-전쟁-분단-냉전-군사독재-압축성장-민주화-극한 신자유주의,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관통한.... 근대 세계가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역경을 다 거쳐온 한국 현근대사가 만들어낸 역설적인, 문학적 풍요이기 때문이다.”(문학평론가 김명인).
스웨덴 현지에서 나온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은 한국에서 전개된 내란 사태로 그 의미가 더욱 증폭되었다. 한국 사회는 경제발전도 압축 성장을 하더니 역사적 단계도 압축적이다. 5.18이 "소년이 온다"로, 4.3이 "작별하지 않는다"로, 그리고 한국 사회에 미만한 폭력성이 "채식주의자"로 승화되었는데, 작금의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도 미구에 K-콘텐츠의 소재가 될 것이다.
지난 12월 18일 민주연구원 문화예술포럼 창립기념으로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한류의 현재와 한국문화의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 토론자(중앙대 오창은 교수)는 “만약 비상 계엄과 친위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한강 작가는 스웨덴에서 귀국을 하지 못하고 망명객으로 떠돌아야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언즉시야(言則是也)라, 정말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무엇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일단 한 고비를 넘겼으나 사실상 내란은 아직 진행중이다.
수상의 또다른 의미
“이제 노벨문학상 때문에 이민 안 가도 된다”
지난 10월 10일 한강 작가가 스웨덴 노벨위원회로부터 수상 소식을 통보받을 때의 전화 인터뷰를 다시 생각해 본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대목은 작가가 문학적 배경을 밝히면서 “어릴 때부터 한국어로 된 책이나 번역서를 읽으며 자랐다. 매우 가깝게 느끼고 있는 한국 문학과 함께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일찍이 시와 소설로 등단한 작가가 문청 시절 또는 그 이전부터 한국 문학의 토양과 그 전통 위에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겠으나 이를 첫인터뷰에서 새삼 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노벨위원회는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된 작가가 누구인지 물어보았으나 특정인의 이름을 끌어내는 성과를 얻지는 못한다(다음 질문에서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직접 거명한 것으로 보아 필경 누군가의 이름이 나오기를 기대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야속하게도(?) 한강 작가는 답변에서 “제가 어렸을 때는 옛 작가들은 집단적인 존재였죠. (...) 그들의 모든 노력과 힘이 나의 영감이었습니다. 그래서 몇 개의 이름만 고르는 게 힘드네요.”라고 말함으로써 곤란한 상황을 피해 나갔다. 겸손하게 솔직하게 누구누구를 거명했다가는 본인의 의도와 달리 구설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그날의 인터뷰에서 주목한 것은 ‘집단적’이라는 말이다. 한강 작가는 영어 인터뷰에서 이를 collective라고 표현했다(“For me, since when I was a child, all writers have been collective.”). ‘집단적’ 또는 ‘집합적’으로 번역할 수 있을 collective... 만약 한국어로 바로 인터뷰했다면 이 대목을 뭐라고 말했을지도 궁금한 가운데, 이 ‘콜렉티브’라는 단어 하나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100년여에 걸친 한국 근대문학의 흐름 위에 이루어진 빛나는 결실임을 웅변하고 있다. 노벨문학상이 번역된 텍스트를 전제로 주어진 시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원천 콘텐츠인 한국어로 쓰여진 한국문학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당장 떠오른 것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의 한 장면이다. 셀린 송 연출, 그레타 리, 유태오 주연의 2023년작 미국 영화다. 유년 시절 한국에서 알게 된 노라와 해성이 노라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며 헤어졌다가, 20여년 만에 미국 뉴욕에서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 영화의 앞 부분에서 문나영(노라, 그레타 리)은 노벨문학상을 타기 위해(?!) 12살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왜 이민을 가느냐?”는 한국 급우들의 말에 작가가 꿈인 나영은 간단히 답한다. "한국사람들은 노벨문학상 못타"...
12세 나영이가 한 이 말에는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살며 한국어로 작품 활동을 하다가는 어느 천년에 노벨문학상씩이나 받을 수 있겠냐'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그럴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런 생각은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은 로칼”이라며 ‘저 포도는 신 포도야!’라고 비수를 날린 심정과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한국인은 굳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해 캐나다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지 않아도 된다. 한강 작가가 그것을 시현했다. 한국 작가가 한국어로 작품을 발표해도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한강 작가의 작품은 서구어로 번역이 되었고 이를 통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확실하다.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통해 28개 언어로 80종 넘게 번역됐다고 한다. 데보라 스미스를 비롯해 국내외 한국문학 번역자의 선구적인 노력과 한국문학번역원에 경의를 표한다. 이와 관련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한국문학 번역의 역사는 외국문학을 전공한 한국인 교수들에 의한 제1세대(해방 이후~1990년대), 외국어에 능통한 한국인과 한국어 능력을 갖춘 외국인의 공동번역인 제2세대(1990년대~2010년대)를 거쳐, 한국문화와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전문적인 번역훈련을 받은 제3세대(2010년대 이후 현재까지)로 이어진다고 한다. 앞으로 3세대 번역가를 육성하는 등 한국어 텍스트의 번역 사업은 당연히 계속되어야 한다.
한류의 ‘넥스트 레벨’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한국문학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한류 역사에서 새로운 이정표다. 번역한 텍스트가 평가의 대상이 되었겠으나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모름지기 한류의 시작과 종착지는 한국어다. 드라마 영화 K팝 웹툰 게임... K-콘텐츠의 원천 소스는 대부분 한국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메이드인 한국(어)’의 드라마와 영화를 보기 위해, 또는 K팝 노래를 부르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수용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 재직 시절, 지구촌 곳곳에서 한류 관련 행사를 할 때 한국어 콘텐츠를 직접 향수하는 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문학이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앞으로 한국어 보급과 한국어 콘텐츠 보급 시스템을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머지않아 한국어 원전 텍스트가 널리 수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해외의 대학에서 ‘한국어과’를 넘어 ‘한국어한국문학과’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한강 작가에서 시작해 더 많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읽히고 연구될 것이다. K-컬처는 먼 길을 돌고돌아 마침내 한국어 콘텐츠 즉 K-리터러처로 왔다. 그동안 한류 1.0은 드라마, 2.0은 K팝, 그리고 K푸드에 더하여 게임과 웹툰을 합해서 3.0 이라고 하는 등 이른바 ‘버전붙이기’로 한류를 구분하고 명명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새로운 변곡점이 될 만하다. 한류 4.0이다. 한강 작가 이전과 이후의 K-컬처는 양상을 달리할 것이다.
그동안 K-컬처가 세계인에게 어필이 되었던 것은 먼저 콘텐츠 자체의 힘(소구력) 덕분이지만 그 이전에 소프트파워 강국으로서 K의 브랜드 이미지, 즉 한국이 지닌 매력국가로서의 소구력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태원 참사, 잼버리 사태 등은 국격을 실추시키고 K-컬처에도 타격을 주었다. 그런데 이번 비상계엄-내란 사태는 그런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고 나아가 한류와 K-컬처의 소구력에도 엄청난 균열을 가져올 뻔했다. 이것이 시민들의 ‘민주적 회복력’을 통해 성숙한 K-민주주의를 보여주게 되어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다만세, 응원봉, K-민주주의
2016년 이대생들이 시위 현장에서 ‘다만세(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 이후로 K팝이 집회 현장에 등장한 것은 낯설지 않다. 2019년 10월의 칠레 반정부 시위에도 K팝이 소환되었다. 그러자 칠레 정부는 시위 사태에 영향을 미친 세력 중 하나로 K팝 팬들을 지목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2020년 태국 반정부 시위에서도 소녀시대의 ‘다만세’가 나왔다. 미국의 흑인 생명권 운동 ‘블랙 라이브즈 매터(BLM)’ 시위에서도 K팝 스타들의 영상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번 한국의 탄핵 집회에는 아이돌 팬의 야광봉, 응원봉이 집회장에 대거 등장했다. 그러자 “한국인은 나라가 어두어지면 집에서 제일 밝은 것을 들고 나온다”(외환위기 때의 금반지를 시작으로 촛불, 야광봉, 응원봉 등)는 조크가 나왔다. 젊은이들은 K팝 노래를 부르며 사이사이에 ‘윤석열 탄핵’ 등을 추임새처럼 넣고 있었다. 시위의 주제를 살리면서 분위기도 고조시켰다. 이번 12.3 내란 사태를 ‘응원봉 혁명’이라고 명명하는 듯하더니 최근에는 ‘빛의 혁명’이라는 말이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한류 연구자들은 한류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한류의 선한 영향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해왔다. 상업주의의 조급함이나 빨리빨리, 먹튀보다 진정성을 강조해 왔다. 그것이 K팝에 내재화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번 집회에서 목격한 것은 팬덤의 진화이자 K팝의 진화다. 팬들은 광장에서 소통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하고 입증한 K팝의 ‘넥스트 레벨’이 기다려진다. (끝)
작성일: 2024년 12월 24일
저자 정길화 : 1984년 MBC에 PD로 입사해 "세상사는 이야기", "인간시대",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교양 프로그램과 시사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었다. 2021년부터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으로 일하며 국제문화 교류와 한류 진흥을 위해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