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MZ의 '서열놀이'인가, 아니면 '정답 있는 외모'에 대한 열망인가?...케이팝 미녀 트로이카 ‘장-카-설’에 대한 소고

문제는 이 “장카설”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주로 케이팝의 젊은 소비자들은 “장카설”인지 “카장설”인지, “설장카”인지를 놓고 무의미한 서열 다툼을 반복하는 모습이 지나칠 정도다. 이러한 서열 싸움은 최근 인터넷상에서 각종 밈으로 회자되는 “명품 브랜드 서열 매기기”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Bluedot Admin

정 호 재 | 동국대 한류융합원 연구원


요즘 시대 주류인 MZ세대는 그 위용을 잘 모를 가능성이 크지만, 한국 대중문화계에서는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 “2세대, 3세대 트로이카…”는 말이 한때 관용어처럼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트로이카는 러시아 말로 “세 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를 뜻한다. 즉, 삼두(三頭)마차라는 얘기다. 세 마리의 말 모두,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셋 모두 확연히 뛰어나다는 뜻이다.

1960년대는 한국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로, 당연하게 미디어도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충무로”라는 이름의 한국 영화시스템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콘텐츠 산업이 대개 그러하듯 여배우의 인기에 영화의 흥행이 달렸고, 이 때문에 충무로를 이끄는 대표 여배우를 한데 묶어 ‘트로이카’라고 칭송한 것이다.

1세대 트로이카는 1960년대 중반부터 충무로 영화계를 중심으로 활동한 "윤정희, 문희, 남정임"을 함께 일컫는 말로 시작됐다. 1970년대가 되자 자연스레 2세대 여배우 톱스타(정윤희, 유지인, 장미희)가 등장했는데, 지금까지도 1세대 2세대만을 “트로이카”라는 존칭을 부여한다. 짐작건대 칼러TV의 등장과 군부 통치의 강화에 따른 영화산업의 퇴조, 게다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달로 인해 여배우 숫자가 폭증함으로 이해 3세대 이후의 트로이카는 미디어 상에나 존재하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지는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엔 한국 엔터산업의 폭발로 인해 “트로이카”라는 표현은 시대에 맞지 않는 표현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공식이든 아니든, 1세대부터 4세대까지 트로이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충무로 여배우 트로이카

1960년대

1세대

윤정희(1944), 문희(1947), 남정임(1945)

1970년대

2세대

정윤희(1954), 유지인(1956), 장미희(1958)

1980년대

3세대 전반기

3세대 후반기

원미경(1960), 이미숙(1960), 이보희(1959)

강수연(1966), 심혜진(1966), 최진실(1968)

1990년대

4세대

심은하(1972), 고소영(1972), 전도연(1973)

충무로 여배우 트로이카의 특징은 각기 시대를 표상하는 아름다움(美)의 지향점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1950년대 후반의 미녀 대명사 김지미(1940년생)가 고전적 한국 여인의 모습을 대표했다면, 1세대 트로이카는 서구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트로이카”로 묶인 1940년대 중반 출생의 미녀들은 확실하게 눈이 더 커진 모양새이고, 서구적인 아름다움, 특히나 서구 복식과 헤어스타일을 세련되게 소화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 보인다. 이는 1950년대 중후반부터 물 밀듯이 쏟아지기 시작한 미국 할리우드와 유럽 영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문희 주연의 1966년 작 “초우(草雨)”는 당대 충무로 산업의 혁신적 모습을 대표하는 주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에서 문희 선생은 시대상과는 걸맞지 않은 프랑스풍 저택을 배경으로, 서양식 우산과 비옷을 입고 등장하는데, 이는 1964년에 개봉해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쉘부르의 우산”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프랑스 영화는 한국에 1965년 7월에 개봉해 많은 문화 충격을 남겼다는 언론보도가 적지 않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문희”라는 여배우가 서양 여배우와 비교해 절대로 모자라지 않는 당차고 자극적(비극적) 연기를 펼쳤으니, 당시 관객들이 문희라는 배우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갖고 열광을 보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문희 주연의 1966년 작 "초우"
1세대 트로이카의 막내인 남정임 배우의 "유정"
1981년 무렵의 2세대 트로이카의 주역 "정윤희" 배우. 오늘날 "장원영"과 이미지가 살포시 겹친다
설명이 필요 없는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

서구적 미인상

1세대 트로이카는 필자 세대에게 너무 먼 얘기지만, 2세대 트로이카의 존재감과 그 활약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필자의 어린 시절인 1980년대, 주말마다 “방화(邦畫)”라는 타이틀로 1970년대 영화들이, 주로 야한 장면이 삭제된 채로 방영이 되었던 것이다. 당대 여성잡지 등에 칼러 광고 또한 인기였는데, 그때마다 단골로 나왔던 여자 모델들이 바로 “정윤희-유지인-장미희” 선생이었기 때문이다. 고작 국민학생이던 필자의 눈에도, 이들 세 배우는 “과연 한국인이 맞을까?”라는 의문을 표시할 정도로 컴퓨터로 잰 것과 같은 아름다움과 하얀 피부, 서구적 늘씬함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트로이카라 불린 여배우들은 대부분 18세부터 20대 초반에 전 국민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는 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꽃다운 나이, 순수함에 대한 열망을 갓 데뷔한 신생 여배우에게 투사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2세대 트로이카 체제 이후에는 그리 “압도적”이라고 불릴만한 트로이카 체제는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1980년대에는 섹시함이 시대적인 대세가 되었고, 1990년대에는 故 최진실 배우처럼 “귀엽고 톡톡 튀거나” 아니면 심은하 배우처럼 고상한 분위기와 뛰어난 연기력이 여배우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압도적인 미모와 젊음으로 인기와 영화의 흥행까지 전부 책임진 시대는 사실상 1~2세대 트로이카가 전부였고, 이들은 특히 “서구적인 완벽한 비율의 아름다움”으로 시청자들의 결핍된 욕망을 충족시켰다. 50여 년이 지난 202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의 풍경이 바뀌었다. 영화계의 트로이카처럼 시대를 대표하는 미의 기준이, 이제는 케이팝 아이돌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장카설”의 시대?

최근 케이팝 씬에서는 압도적 미모로 전 세계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여성 팝스타들이 등장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장-카-설”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더니, 케이팝 산업에 있어 주요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나아가, “장카설” “장-카-설-유” “장카설유 안-민-윈-카” 등의 각양각색의 확장 버전까지 등장하며, 케이팝 팬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다.

우선 “장카설”의 의미는 아이브의 “장원영” 에스파의 “카리나” 엔믹스의 “설윤”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이다. 케이팝의 미모를 대표하는 여성 가수들을 젊은 친구들이 뽑아서 이른바 서열을 매긴 것인데, 한눈에 요즘 어떤 미모를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동시에 가수 평가를 노래가 아닌 외모로 한다는 점에서 썩 반가운 신조어는 아닐 것이다.

이 글의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우선 “장카설 현상”은 케이팝의 “퇴행(退行)”일 수 있다는 생각이고, 두 번째로는 케이드라마 여배우 미모 경쟁이, 케이팝의 성장과 함께 판이 바뀌었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일종의 미모 기준을 케이팝 여가수들이 세워가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 두 가지 결론은 조금은 모순될 수 있지만, 어찌 되었든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이니 연관된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1) 서열화

필자가 “장카설” 현상을 일종의 문화적 퇴행 현상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과거 “트로이카”처럼 3인방의 존재감에 대한 집단적 존경이나 찬사가 아닌, 일종의 서열 놀이의 혐의가 짙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이브의 “장원영”은 늘씬한 키와 매혹적인 마스크를 장점으로 하는 케이팝의 간판스타로 꼽힌다. 워낙 미모가 출중한 탓에 여러 화제를 낳고 있는 스타 중의 스타이기 때문에 팬들은 그녀의 스타성에 감탄하며 “만년돌(만년에 한번 나올만한 아이돌)”이라는 찬사를 보내곤 한다. 실제로 그녀의 끼와 여유 있는 발성과 몸짓은 과연 2004년생 21살에 불과한 아이돌인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에스파의 카리나 역시도 미모로 크게 주목받는 인재다. 그녀가 가수로서 부족하다거나 그런 의미는 전혀 아니다. 에스파는 현재 뛰어난 퍼포먼스 실력으로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카리나”는 데뷔 직후부터 케이팝 최초로 “압도적”인 서구적 외모로 큰 화제를 낳았다. 엔믹스의 설은 앞선 두 인재에 인지도와 히트송의 유무에서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역시나 인형 같은 외모로 최근 인지도가 급상승하며, Z세대가 주도하는 신조어 만들기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문제는 이 “장카설”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주로 케이팝의 젊은 소비자들은 “장카설”인지 “카장설”인지, “설장카”인지를 놓고 무의미한 서열 다툼을 반복하는 모습이 지나칠 정도다. 이러한 서열 싸움은 최근 인터넷상에서 각종 밈으로 회자되는 “명품 브랜드 서열 매기기”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시계 브랜드라고 하면, 롤렉스-오메가-까르띠에를 중심으로 “롤오카”라고 명명하고 이를 중심으로 계급도를 만드는 것이 대표적이다. 여성용 브랜드라면 주로 가방이나 패션 명품을 두고,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 디올을 중심으로 “에루샤디”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서열 싸움하는 모습도 있다. 이러한 명품 계급도는 강남 초고가 아파트에서부터, 대학 서열, 공기업, 대기업 등 끝도 없이 확장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서열을 하나의 “공식”으로 여기고 이를 소비하는 자신의 “문화적 계급”을 확정을 짓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2) 외모중심성

케이팝은 자체 문화가 만들어질 초창기부터 “비주얼(외모)”에 큰 투자를 아끼지 않는, 영상 산업으로 시작되었다. 1990년대 홍콩의 MTV 문화충격을 교과서로 삼은 1970년대 산 기획자들은 2000년대 이후 “뮤직비디오”에 적극 투자했고,  2010년대 유튜브의 등장으로 이러한 기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자연스레 케이팝은 걸그룹 보이그룹 할 것 없이 화려한 안무와 영상미를 추구해야 했고, 오디션을 통해서 “예쁘고 잘생긴” 비주얼 멤버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아이돌 그룹이란 컨셉 자체가 정식 가수라기 보다는 외모와 퍼포먼스에 특화된 “젊음” 지향적이라는 것도 이러한 외모지상주의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갓 데뷔 멤버의 성형 논란이나 자연미인 인증 과정 또한 케이팝 하위문화의 주요한 구성 요소가 된 지 오래다.

기왕이면 외모가 매력적인 멤버를 좋아하는 것 자체를 시비 걸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정도의 차이는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을 만한 대목이다. 히트곡보다 외모가 먼저 화제가 된다는 것은 케이팝 문화가 날이 갈수록 화려한 치장과 미인 대회식 미모 대결로 흐른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3) ‘올 팬’ 시대의 종언

“장-카-설” 현상의 가장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대목은, 산업 소비자들이 취향이 ‘올 팬(모든 멤버를 좋아한다)’ 기조에서 ‘선택적 취사선택’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목은 아이돌 그룹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남자 아이돌의 경우 지금은 배우로 더 유명한 “차은우”가 속한 “아스트로”라는 그룹이 적절한 예시가 될 수 있다. 보통 보이그룹이라고 하면 대체로 “소속사”와 “그룹” 전체에 대한 호감을 느끼고, 그러한 맥락 속에서 개개인 멤버를 좋아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룹에 대한 호감이 크기 때문에, 적어도 팬들은 멤버 각각에 대한 매력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인기가 상대적으로 처지는 멤버에 대한 의무적인 사랑도 투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차은우”라는 압도적 비주얼의 멤버는 그러한 전통적인 공식을 깨뜨리고, 아스트로라는 그룹에 크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 눈치다. “올 팬” 기조가 깨어진 것이다. 이는 최근 4세대 아이돌의 대부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인데, 멤버 간 인기의 격차가 너무 커진 현상이 왕왕 발생하고 있다. 앞서 말한 아이브에서는 “장원영” “유진”의 인기가, 에스파에서는 “카리나”와 “윈터”의 인기가 압도적인 것도 대표적 사례다.

이것이 아이돌 산업에 있어서 무한 경쟁의 한 결과인지, 개인 활동을 장려한 기획사의 잘못인지, 무한정의 매력만을 뒤쫓는 소비자들의 “체리 픽킹” 현상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4) 동질화(Homogenization)

마지막으로 “장 카 설”의 미모 경쟁과 서열화가 낳은 가장 큰 문제점은, 케이팝 미녀 계보의 획일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늘씬한 키에, 긴 생머리의, 화려한 눈망울에, 하얗다 못해 빛날 정도 순백색의 피부, 그리고 이를 종합하는 신비로우면서도 당찬 태도까지. 모두가 비슷한 미인상을 추구한다.

최근 공중파 연말 가요대상 무대에서는 이들 “장카설유”는 다양한 방식으로 개별 무대나 합동 무대를 펼칠 기회가 많았는데, 어찌 되었든 이들의 화려한 미모가 빛을 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 더 멀리서 지켜보면 엇비슷한 분위기와 태도라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트로이카” 배우들은 누가 보더라도 우열을 가리기 힘든 각자의 특색과 아우라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대결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결론을 대신해

아무래도 “억지 비판”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을 만큼 느슨한 논리일 수도 있다. 동시에 긍정적인 측면을 꼽자면,  이제는 드라마나 영화배우가 아닌, 케이팝의 20대 초반 여성 가수들이 대한민국의 미녀 계보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케이팝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산업으로 성장했고, 자연스럽게 더 많은 인재가 케이팝 산업에 진입해 일찌감치 무한 경쟁 체제를 일구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많은 인재들이 경쟁하며 만들어낸 케이팝의 미적 기준은 젊은 세대들에게 '아름다움의 교과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장카설유안민윈카”를 “태정태세문단세”처럼 줄줄 외우며 서열을 매기는 오늘날의 케이팝 하위 문화는, 그저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로 받아들이고 넘어가야 하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당연히 꼰대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필자 정호재: 기자 출신으로 동남아시아 정치와 문화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을 주로 연구해왔다. 2020년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를 썼고, 현재는 국내 첫 아세안 중심의 아시아 씽크탱크 “아시아 비전포럼” 미디어파트 헤드이자, 동국대 한류융합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