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청자의 기대를 배신한 드라마들: SBS '보물섬' JTBC '협상의 기술'의 허무한 결말
이러한 드라마 결말에는 정의의 실현이 ‘잠정적 승리’에 불과하며, 악의 근원은 체제와 결탁하여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현실적 냉소를 담고 있다. 이처럼 두 드라마는 통상적인 정의 구현 서사를 전복하고, 복수의 허무함과 악의 생명력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결말을 구성하였다.
정 영 희 | 고려대학교 정보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2025년 4월,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자들이 멘붕에 빠졌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보물섬>(SBS)과 <협상의 기술>(JTBC)이 공통적으로 기존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기대되던 결말과 정서적 보상을 철저히 배반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끝냈기 때문이다. 두 드라마는 각각 15.4%, 10.3%라는 높은 시청률도 기록했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의 복수는 완성되었으나, 그 복수의 결과는 시청자에게 통쾌함보다는 허탈감을 남겼다. 기존의 악은 제거되었으나 새로운 악인이 더 크게 자리 잡았고, 혹은 변형된 형태로 재출현하는 전개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말은 단순한 반전이나 열린 결말을 넘어,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가 70년 이상 이어온 사필귀정과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와 서사적 진행을 완전히 해체해 버렸다. 이러한 서사 진행의 배경은 무엇이며, 이러한 드라마 서사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윤리 서사가 해체된 시대에 시청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권선징악 서사의 해체
윤리적 딜레마
드라마 <보물섬>은 복수를 향해 치닫는 주인공 서동주(박형식 분)의 서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가 죽임을 당한 후 홀로 살아남아 복수를 진행하는 중에 복수의 대상 중 한 명인 허일도(이해영 분)가 알고 보니 친부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정서적으로 혼란을 겪기도 한다.
종국에는 정치 세력과 결탁한 최고 빌런 염장선(허준호 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긴 휴가를 떠나지만, 그 사이에 대산그룹 차강천(우현 분)의 혼외자이자, 서동주의 도움으로 그룹에 들어온 이후 차선우가 되는 지선우(차우민 분)가 허일도의 아들이자 서동주의 이복동생인 허태윤(유상현 분)을 살해하고 그룹을 장악한다. 허태윤은 서동주가 이복형임을 알기 전부터 서동주를 의지하고 따르며 정서적 유대감을 쌓아왔었다.
또한 그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선한 인물이기도 하다. 허태윤의 죽음이 메인 빌런 중 한 명인 차덕희(김정난 분)를 처단하는 방식이라고는 하나, 지선우가 기업 내 권력을 장악하고 그룹의 실질적 오너로 군림하는 결말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서동주의 복수는 완성되었지만, 그가 지키고 싶었던 가족은 모두 잃게 되었다. 또한 시청자의 정서적 충족감도 철저하게 무너졌다. 속된 말로 죽쒀서 개 준 꼴이 된 것이다.
<협상의 기술>도 그리 다르지 않다. 주인공 윤주노(이제훈 분)는 주가조작 사건으로 형을 잃고 복수를 다짐하며, 주가조작의 주범 중 한 명인 산인그룹 내 2인자 하태수(장현성 분) 전무를 몰락시킨다. 그러나 결말에서는 하 전무가 산인에 투자한 펀드회사의 새로운 임원이 되어 그룹 경영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가 되어 돌아온다.
이러한 드라마 결말에는 정의의 실현이 ‘잠정적 승리’에 불과하며, 악의 근원은 체제와 결탁하여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현실적 냉소를 담고 있다. 이처럼 두 드라마는 통상적인 정의 구현 서사를 전복하고, 복수의 허무함과 악의 생명력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결말을 구성하였다.
한국만의 현상?
또는 글로벌 대세?
한국에서 전통적인 텔레비전 드라마 서사는 명확한 선악 구도와 권선징악의 구조를 따라왔었다. 선한 주인공이 고난을 겪고 마침내 악을 응징하며, 정의가 실현되고 질서가 회복되는 방식이다. 이는 시청자에게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사회적 도덕 감각을 강화하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보물섬>과 <협상의 기술>이 보여준 결말은 이 구조를 해체하며, 악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거나, 복수의 결과가 주인공에게 정서적 파국으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서사적 전환은 한국 드라마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는 2010년대에 이미 안티히어로와 도덕적 모호성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적 서사가 확산되어 왔다. 이는 현실 세계의 복잡성, 제도에 대한 불신, 시청자의 비판적 수용 태도 변화, OTT 플랫폼 중심의 서사 실험 등 복합적 요소에 기인한다.
특히 OTT 드라마는 보다 길고 복잡한 서사 구조를 실험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며, 이는 창작자에게 권선징악 서사를 벗어난 다양한 결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국 드라마는 이 흐름 속에서 정서 중심의 감각과 사회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도덕적 서사를 실험하고 있는 셈이다.




‘기대를 저버리는 결말’
혁신인가, 배신인가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드라마의 결말은 단지 스토리의 끝이 아니라, 수십 시간에 걸친 감정 투자에 대한 보상이다. 전통적으로는 정의 실현, 로맨스의 성취, 주인공의 성장과 회복이 그 보상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들은 이 기대를 의도적으로 저버리며, 기존 서사의 틀을 전복하는 혁신을 꾀하고 있다. 문제는 그 전복이 서사적 필연성과 정서적 설득력을 갖추었느냐는 점이다.
<보물섬>에서 지선우가 기업을 차지하는 결말은 극 내내 공고히 쌓아온 주인공의 정의서사와 시청자의 감정선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마찬가지로 <협상의 기술>에서 하 전무의 복귀는, 시청자가 기대한 정의의 귀결을 가볍게 유보하며, 후속 스토리의 장치처럼 기능하였다.
이같은 결말은 시청자에게 ‘이야기를 던져놓고 책임지지 않는’ 창작으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이러한 결말은 현실 세계의 복잡성과 윤리적 모호성에 더 가까운 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권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악은 어떤 형태로든 생존한다.
이러한 서사는 시청자에게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키며, 단선적 해피엔딩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렇듯 ‘기대를 저버리는 결말’은 혁신과 배신이라는 양가적 평가 사이에 놓이며, 그것이 의도한 질문의 깊이와 서사의 설계 밀도에 따라 서로 다른 반응을 유도한다.
드라마 서사, 윤리적 책임
이처럼 권선징악 서사를 해체하거나 유보하는 열린 결말 구조는 서사의 정서적 완결성과 윤리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논점을 제공한다. 열린 결말은 시청자에게 해석의 자유를 제공할 수 있지만, 동시에 정서적 피로와 혼란, 불완전한 이해를 초래한다. 만약 결말이 단지 후속 시즌이나 세계관 확장의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해피엔딩을 피하기 위한 자극적 장치로 기능한다면, 그것은 윤리적 판단에 관한 창작자의 책임 회피로도 간주될 수 있다.
<보물섬>과 <협상의 기술>의 결말은 정서적 납득을 제공하지 못한 채, 권력의 순환과 악의 재등장을 암시한다. 이때 시청자는 충격적 결말에 놀라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정의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라는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이야기 콘텐츠 속 서사적 윤리성의 역할이 시청자에게 정서적 보상이나 도덕적 승리감을 안겨주는 이상으로, 현실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인간 조건에 대한 질문을 야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열린 결말을 수용할 수 있는 시청자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서사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시청자의 인지적 성숙도, 사회적 경험, 매체에 대한 비판적 거리 두기 능력 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열린 결말은 해석과 사유의 여지를 남기며 시청자에게 능동적 수용자 역할을 요구한다.
이는 교육 수준, 사회적 다원주의에 대한 경험, 그리고 드라마 장르에 대한 노출 빈도에 따라 수용 태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복합적 서사 구조와 현실 반영성이 강한 현대 드라마는 열린 결말을 통해 서사의 다층적 확장을 시도하며, 세계관의 지속 가능성과 논의의 여지를 남긴다. 그 자체로 서사의 확장을 이끄는 전략인 것이다.
열린 결말을 수용할 수 있는 시청자는 단지 결말을 허용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이야기의 빈틈을 채워 넣고 내적 의미를 구조화할 수 있는 ‘참여적 해석자’로 기능한다. 이러한 해석 주체는 문화자본이 축적된 환경, 서사에 대한 탐구적 태도, 윤리적 복잡성에 대한 수용 능력과 같은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형성될 수 있다.
윤리 서사 해체의 시대
시청자의 조건
‘시청자의 기대를 져버리는 드라마’는 단순히 기존 문법을 거스르는 서사적 파괴가 아니라, 동시대 사회가 직면한 윤리적 딜레마와 정서적 모순을 드러내는 하나의 장치다. <보물섬>과 <협상의 기술>은 권선징악 서사의 해체를 통해, ‘악은 과연 소멸될 수 있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복수는 누구를 위한 정당화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오늘날의 드라마가 더 이상 단선적인 서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 현실을 반영하고, 시청자로 하여금 능동적 사유를 촉구하는 비판적 매체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사 실험의 명분이 시청자의 정서적 몰입과 감정적 계약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구현될 때,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일방적 해체로 전락할 수 있다.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의미의 완결을 요구하며, 그 완결은 단지 사건의 종결이 아닌, 성찰과 정서적 공명을 포함한다.
결국 창작자는 열린 결말이라는 형식 속에서도, 시청자에게 ‘왜 이 결말이 필요한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서사의 윤리이며, 대중 예술로서 드라마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오늘날 드라마는 오락을 넘어서 사회적 감각과 정서적 윤리를 구성하는 공적 서사다.
이 공적 서사로서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서사의 실험성만큼이나 시청자와의 윤리적 계약에 대한 자각이 요구된다. 기대를 져버리는 결말이 배신이 아닌 질문이 되기 위해서는, 그 낯섦이 사유로 이어지는 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끝)
작성일: 2025년 4월 15일
글쓴이 정영희는 고려대학교에서 언론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수용자연구에 관심이 많다. 현재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이며, 한림대와 수원대에서 매스미디어와 대중문화 콘텐츠에 관해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