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넷플릭스 한국 진출 10년을 돌아보다: ‘약한 고리 깨기’에서 ‘원숭이 꽃신’까지
정휘창의 동화 『원숭이 꽃신』에는 원숭이가 오소리가 준 꽃신에 길들여져 결국 발바닥 굳은살이 벗겨지고 오소리의 노예가 되었다. 이처럼 국내 미디어 기업들이 넷플릭스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완전한 의존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유건식 | 성균관대 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 초빙교수
시작하며
2016년 1월,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 상륙했을 때, 국내 미디어 업계는 우려와 무시가 있었는데, 초기 몇 년간은 무시가 맞았다는 평가가 대세였다. 그로부터 만 10년이 되는 2025년 12월, 넷플릭스는 단순한 플랫폼을 넘어 한국 미디어 생태계의 문법을 송두리째 바꾼 거대한 변혁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한 이후 한국의 미디어 지형에는 분명히 ‘넷플릭스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넷플릭스 효과』의 편저자인 다니엘 스미스-로우지와 케빈 맥도널드에 따르면 ‘넷플릭스 효과’는 기술과 엔터테인먼트가 융합되어 비즈니스 모델과 소비 행태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킨 현상을 의미한다.
넷플릭스는 국내에서 OTT 플랫폼 중 이용자수가 가장 많고, 유일하게 흑자를 보고 있으며, 제작사가 기획안을 제일 먼저 피칭하며, 오리지널의 경우 매절 계약을 통해 모든 권리를 가져가고, 몰아보기(Binge-watching)를 시청 습관으로 만들었다.
반면,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넷플릭스의 지난 10년은 K-콘텐츠의 글로벌 진출이라는 화려한 성과 이면에, 국내 제작 생태계의 하청 기지화와 플랫폼 종속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심화시킨 기간이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10년 동안의 국내 미디어 업계는 ‘약한 고리 깨기’ 전략으로 공략당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원숭이 꽃신’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지난 10년의 변화를 콘텐츠, 제작 시스템, 플랫폼, 콘텐츠 소비 측면에서 조망해 본다.
1.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 경과
넷플릭스는 2010년부터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국내에는 2016년 1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한국 콘텐츠가 부족하여 고전하였다. 넷플릭스 동북아시아 마케팅전략 총괄 매니저를 역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넷플릭스 인사이드』를 쓴 서보경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아시아 진출 초기에 넷플릭스의 이탈률을 분석하면서 “아시아 고객은 콘텐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해지한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분석 때문인지 넷플릭스는 CJ ENM과 JTBC의 제휴를 통해 당시 인기가 많았던 드라마를 확보하였고, 2024년 말에는 SBS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6년 동안 SBS의 드라마, 예능의 콘텐츠를 공급받고 있다. 특히, 2019년 <킹덤>의 성공이후 한국 오리지널을 제작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하는 2025년 상반기 펀덱스(FUNdex)가 상위 10 중에서 상위 1~3위를 포함하여 5개를 차지할 정도로 콘텐츠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플랫폼을 보더라도 넷플릭스는 2016년 딜라이브로 시작으로 2017년 CJ 헬로비전, 2018년 LG+, 2020년 KT, 2023년 SKT까지 국내 케이블과 IPTV가 넷플릭스를 서비스하며 시장 지배력을 확장하여 모든 플랫폼에서 필수 서비스가 되었다.
넷플릭스는 2016년 150억 원을 시작으로 현재 연 8,250억 원 정도로 증가하여 2026년까지 약 5.4조 원을 한국의 콘텐츠에 투자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월순이용자수(MAU)가 코리안클릭 기준으로 10월에 1,411만 명까지 증가하였다.

2. 콘텐츠와 제작 시스템의 명암:
퀄리티의 향상 vs 제작비 인플레이션
넷플릭스 진출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콘텐츠의 대형화와 장르적 다양성 확대다. 2025년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오징어 게임> 시즌 3를 비롯해 <폭싹 속았수다>, <중증외상센터> 등 블록버스터급 대작들이 줄을 이었고,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 특히 드라마 회당 제작비는 넷플릭스 진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하여, 평균 27억 원에 육박하고, <오징어 게임> 시즌 2의 경우 회당 제작비가 167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자본의 유입은 ‘쪽대본’으로 대변되던 한국의 열악한 제작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넷플릭스는 100% 사전 제작 시스템을 정착시켰고, 충분한 예산과 제작 기간을 보장하며 창작자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주었다. 또한, 국내에서는 가입이 드물었던 ‘제작 전문 보험(E&O)’ 가입을 의무화하고, 촬영 현장의 근로 여건을 개선하는 등 제작 시스템의 체계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소구력을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와 표현 수위가 높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의 콘텐츠가 급증했다. 2022년 기준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66.7%가 19금 등급이었으며, 2020년과 2024년에도 60%에 달했다. 이는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보편적 콘텐츠의 감소를 의미하며, 폭력성과 선정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제작비 인플레이션은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중소 제작사와 국내 토종 OTT 플랫폼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여, 제작 생태계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

3. 수익 배분 구조의 불공정성:
‘코스트 플러스’의 함정
넷플릭스와 한국 제작사 간의 거래 모델인 ‘코스트 플러스(Cost Plus)’ 방식은 넷플릭스 종속의 핵심적인 문제점이다. 이 모델은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100%)과 약 10~15%의 보장 마진을 제작사에 지급하는 대신, 콘텐츠에 대한 모든 지식재산권(IP)과 글로벌 유통권을 넷플릭스가 독점하는 구조다.
이 방식은 제작사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고 실패의 위험을 넷플릭스가 부담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오징어 게임>과 같은 글로벌 메가 히트작이 나와도 제작사는 추가적인 수익(Upside)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전 세계적인 흥행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로부터 별도의 인센티브나 재상영분배금(Residuals)을 받지 못했다.
반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는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작가조합(WGA) 및 감독조합(DGA)의 규정에 따라 창작자들에게 재상영분배금이 지급되었다. 이는 한국 창작자들이 글로벌 표준에 비해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시사하며, 한국이 글로벌 OTT의 단순한 ‘제작 하청 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4. 플랫폼 전략의 변화:
광고요금제와 번들링 전쟁
구독모델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구독자 성장의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수익성 강화를 위해 비즈니스 모델을 다각화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넷플릭스가 자신의 서비스의 장점으로 광고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고, 광고 모델을 도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광고형 요금제(AVOD)’의 도입했고, 아이디를 공유하라며 권장했던 ‘계정 공유’를 금지했다. 넷플릭스는 2022년 11월 광고형 요금제를 월 5,500원에 출시하여 가격 민감도가 높은 이용자층을 흡수했고, 2023년 11월부터는 계정 공유 유료화를 단행하여 가입자당 평균 매출(ARPU)을 높이는 전략을 취했다.
또한, 넷플릭스는 단독 구독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번들링(Bundling)’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통신사 요금제 결합은 물론, 네이버 멤버십과의 제휴를 통해 쇼핑, 웹툰 등 다양한 서비스와 넷플릭스를 묶어 이용자 혜택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티빙이 KT 및 배달의 민족과 제휴하거나, 웨이브가 SK텔레콤과 결합하는 것에 대응하여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이다. 특히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논의되는 시점에서 넷플릭스의 이러한 전방위적 제휴 확대는 토종 OTT들의 생존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5. 나가며
넷플릭스는 2016년 국내에 진출하면서 프랑스나 스페인에서 실행하여 효과를 보았던 약한고리 전략을 국내에서도 동일하게 펼쳤다. 그 결과 이제는 국내 미디어 산업은 ‘원숭이 꽃신’으로 전락한 듯하다.
정휘창의 동화 『원숭이 꽃신』에는 원숭이가 오소리가 준 꽃신에 길들여져 결국 발바닥 굳은살이 벗겨지고 오소리의 노예가 되었다. 이처럼 국내 미디어 기업들이 넷플릭스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완전한 의존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최근 SBS가 넷플릭스와 2025년부터 6년간 드라마, 예능 등 구작 라이브러리와 신작 일부를 공급하는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은 이러한 전략의 완성을 상징한다.
넷플릭스 진출 10년은 한국 콘텐츠 산업에 양날의 검이었다. 글로벌 시장 확대와 제작 역량 강화라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제작비 상승에 따른 제작 감소, 플랫폼 종속, 불공정한 수익 분배 등의 과제를 남겼다. K-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대응이 시급하다.
첫째, 치솟은 제작비의 변화이다. 현재의 제작비로는 국내 규모로는 채산성이 맞출 수가 없다. 초기 제작비를 낮추고 수익이 났을 경우 투명하게 배분하는 제작 시스템을 만들어야 K-콘텐츠의 지속 가능성이 담보된다. 관련 기관 및 단체들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마련해야한다. 소수만 이익을 향유하는 구조를 탈피하는 새로운 제작 생태계가 구축되기를 바란다.
둘째, 창작자에 대한 공정한 보상 체계 마련이다. 미국의 작가 노조와 배우 노조가 2023년 파업을 통해 재상영분배금의 현실화를 쟁취하였고, 유럽연합(EU)이 ‘디지털 단일시장 저작권 지침’을 통해 창작자에게 적절하고 비례적인 보상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 것처럼, 국내에서도 법적·제도적 장치를 통해 글로벌 플랫폼의 수익 독점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셋째, 글로벌 OTT와 적절한 제휴를 추진해야 한다. SBS나 프랑스 TF1의 사례처럼 넷플릭스와 전면적인 콘텐츠 제공보다는 영국의 BBC 스튜디오처럼 방송사 자체보다는 스튜디오를 통한 콘텐츠 단위의 제휴가 바람직할 것이다. 넷플릭스가 최근 타 플랫폼 콘텐츠의 라이선싱 비중을 늘리는 추세이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넷째, 비즈니스 모델의 다각화다. 넷플릭스가 광고 요금제, 굿즈 판매, 게임 등 부가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듯, 국내 사업자들도 단순 구독료 모델을 넘어선 다양한 수익원을 발굴해야 한다.
2026년은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새로운 10년을 시작한다. 지난 11월에 공개한 넷플릭스 일본 오리지널 <이쿠사가미>(Last Samurai Standing)가 일본 드라마 역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1위를 달성했고, 태국 드라마 <마스터 오브 더 하우스>도 2024년 7월 비영어 TV부문 1위를 기록하고, 올해 5월에 개봉한 <매드유니콘>(Mad Unicorn)도 4위에 오를 정도로 아시아권의 국가들도 K-드라마를 위협하고 있다. 이는 넷플릭스가 한국만 고집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넷플릭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생력을 키우는 것만이 ‘꽃신’ 없이도 걸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난 10년이 넷플릭스에 올라타는 시기였다면, 앞으로의 10년은 넷플릭스와 동등하게 춤추거나 독자적인 무대를 만드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명되면서 미디어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정비될 시점에서 업계의 전략적 결단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