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OTT 시대의 막장, 왜 반복되는가 ― 감정의 알고리즘과 욕망이 설계되는 방식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감정의 표현을 통제해 왔다. 분노는 무례, 슬픔은 약함, 질투는 비도덕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막장 드라마는 바로 그 금지된 감정들을 공적 감정으로 승인한다. "울고, 소리치고, 때리고, 복수하는" 장면들이 반복되지만, 시청자는 그것을 '비도덕'이 아니라 '솔직함'으로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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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숙 | 대중문화 독립연구자


Ⅰ. 서론
― 막장 드라마, 욕망과 도덕의 경계에서

'막장 드라마'라는 말은 조롱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 그것은 한국 대중문화의 핵심 언어가 되었다. 시청자는 "이건 너무 막장이야"라고 혀를 차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 이 모순된 감정 ― 혐오와 몰입, 비난과 쾌락 ― 은 막장 드라마를 단순한 장르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만든다.

막장 드라마는 한국 사회의 감정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다. 불륜, 출생의 비밀, 재벌가의 음모, 폭력, 복수, 파국적 결말 등은 모두 현실의 도덕 질서가 작동하지 않을 때 등장하는 대리적 정의의 서사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만큼, 서사 속에서라도 정의가 복원되는 과정을 보고 싶어 한다. 막장 드라마는 그 결핍된 정의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킨다.

그렇다면 이 '막장'이라는 감정적 코드가 언제부터 한국 드라마를 지배하기 시작했을까? 막장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한국 TV드라마의 멜로드라마적 전통이 변형·축적되어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이다. 즉, 막장은 텔레비전의 역사, 근대의 가족 윤리, 산업화의 욕망, 그리고 감정 자본주의가 뒤섞인 결과다. 그 역사적 계보를 추적하는 일은 곧 한국 사회의 감정사를 읽는 일과 다르지 않다.

Ⅱ. 역사적 계보
― TV 멜로드라마에서 막장으로

①1970~80년대 ― 가족국가와 멜로드라마의 탄생

한국 드라마의 뿌리는 1970년대의 가족 멜로드라마다. 이 시기 방송은 국가주의적 산업화와 맞물려, 가정을 국가의 축소판으로 그렸다. 《수사반장》과 《전원일기》, 《청춘극장》 등은 가족 내 도덕, 희생, 질서를 강조하며 '착한 사람은 고난 끝에 복을 받는다'는 서사적 도식을 굳혔다.

멜로드라마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근대적 도덕교육의 장이었다. 특히 여성 인물은 '참고 견디는 어머니'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희생과 인내, 가족 유지의 미덕은 당시 국가가 요구한 '근면ᄋ충효ᄋ순종'의 가치와 일치했다. 이 시기 드라마의 감정 구조는 '억제된 슬픔'이었다. 울 수는 있지만, 분노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1970~80년대의 멜로는 '막장'의 정반대 ― 감정의 절제, 도덕의 수호 ― 를 표방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억압이 훗날 막장의 폭발적 감정의 토양이 된다.

②1990년대 ― 민주화 이후, 욕망의 해방과 감정의 혼란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억눌렸던 감정이 분출되는 시기를 맞는다. 드라마 역시 변화했다. 《사랑과 야망》(1987~1990)은 정치ᄋ경제적 격변 속에서  '야망'과 '배신'이라는 단어를 공공연히 등장시켰고, 《아들과 딸》(1992)은 가부장제의 모순을 여성의 시선에서 비판했다.

이 시기 드라마는 더 이상 국가의 도덕 교과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착하게 살아도 잘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체감했고, 드라마는 그 현실의 냉소를 반영했다. 1990년대는 '감정의 민주화'와 '욕망의 노출화'의 시대였다.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소비주의가 교차하면서, 감정은 더 이상 숨기는 것이 아니라 표현해야 할 것이 되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이 감정의 해방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대량 해고, 가족 해체, 파산, 신용불량 ― 사회의 근본 구조가 흔들리면서 드라마는 다시 '눈물의 서사'로 돌아간다. 《청춘의 덫》(1999)에서 주인공 서윤(심은하)은 배신한 남편에게 "행복해?"라며 울부짖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 IMF 시대 여성의 절망과 분노의 집단 감정이었다. "참는 여성"이 "응징하는 여성"으로 변한 바로 그 순간, 한국 멜로는 막장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③2000년대 ― 출생의 비밀과 복수의 구조

2000년대 초반, TV드라마는 본격적으로 '막장 서사의 공식'을 산업화하기 시작한다. 《하늘이시여》(2005), 《왕꽃선녀님》(2003), 《불새》(2004),《내 남자의 여자》(2007) 등은 출생의 비밀, 불륜, 복수, 재벌가의 음모 같은 설정을 반복하며 "시청률이 곧 진리"라는 방송 산업의 논리를 확립했다.

이 시기 막장은 단순히 자극적 서사가 아니라, 경제적 위기의 정서적 보상 장치였다. IMF 이후의 불평등 사회에서 시청자는 '정의' 대신 '응징'을 원했고, 드라마는 그 욕망을 충족시켰다. 예컨대 《하늘이시여》의 주인공은 입양된 신분으로 성장해 친어머니와 재회하지만, 그 관계는 복수와 죄책감의 감정 회로로 얽힌다. 이 복잡한 감정의 구조 ― 사랑과 증오, 죄와 속죄의 순환 ― 이 막장 드라마의 정서적 공식이 되었다.

또한 2000년대 막장은 여성 시청자의 정서적 대리 경험을 전면화했다. 여성 중심의 서사가 시청률을 견인하면서, 여성은 더 이상 '도덕의 수호자'가 아니라 '욕망의 행위자'로 등장했다. 그러나 그 욕망은 언제나 비극으로 끝난다. 즉,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규범의 경계 안에서만 감정적으로 폭발할 수 있었다.

④2010년대 ― '시청률 민주주의'와 막장의 산업화

2010년대 들어, 막장 드라마는 하위 장르에서 주류 장르로 승격했다. 《왔다! 장보리》(2014), 《내 딸, 금사월》(2015), 《황금빛 내 인생》(2017), 그리고 《결혼작사 이혼작곡》(2021) 등은 모두 '막장'이라 불리며 동시에 국민적 화제를 모았다.

이 시기의 특징은 '막장'이 시청자의 투표로 정당화되는 시대라는 점이다. 시청률이 곧 대중의 선택이 되었고, 대중의 선택은 곧 정당성이 되었다. 즉, 막장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으면서도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장르였다. 그 결과, 방송사는 도덕보다 시청률을 우선시했고, 막장은 공식적인 산업 전략이 되었다.

또한, 2010년대 막장은 감정의 속도를 높였다. SNS와 실시간 반응 문화가 결합하면서, 시청자의 감정은 드라마의 리듬을 조정하는 실시간 데이터가 되었다. '댓글의 분노'와 '트위터의 눈물'이 곧 시청률로 이어졌다. 막장은 이처럼 대중의 감정 피드백을 즉시 반영하는 유기적 장르로 진화했다.

⑤2020년대 ― OTT 플랫폼과 감정의 알고리즘화

2020년대의 막장은 더 이상 'TV의 자극물'이 아니다. OTT 플랫폼을 중심으로, 감정은 데이터화되고 자동 추천된다.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2022), 《마스크걸》(2023), 티빙의 《장미맨션》(2022), 쿠팡플레이의 《어느 날》(2021) 등은 기존 막장의 감정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폭력과 복수를 세련된 미장센과 정제된 리얼리즘으로 포장한다.

이전의 막장이 '과잉된 대사'로 감정을 전달했다면, OTT 막장은 '절제된 침묵'으로 같은 감정을 만든다. 카메라의 거리, 색감, 편집의 리듬이 감정을 대체한다. 즉, 감정은 연출의 기술이자 데이터의 함수가 되었다. OTT의 알고리즘은 시청자의 감정 패턴을 분석해 '막장적 감정 구조'를 반복 제공한다. 분노 → 응징 → 위로 → 허무의 감정 순환은 이제 플랫폼이 설계한 정서 루프이다. 막장은 더 이상 작가의 창작물이 아니라, 플랫폼이 계산한 감정의 구조물이다.

⑥정리 ― 막장의 역사, 감정의 진화

1970년대의 멜로드라마가 도덕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욕망의 시대, 2000년대는 복수의 시대, 2010년대는 속도의 시대, 그리고 2020년대는 알고리즘의 시대다. 막장은 이 다섯 시대를 거치며 한국 사회의 감정 구조를 시각화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즉, 막장은 단순히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감정으로 정치되고, 감정으로 소비되는 사회'로 변화한 과정을 집약한 문화적 기록이다. 그리하여 막장은 끝장이 아니라, 한국 근대 감정사의 연속선상에 있는 집단 심리의 산물이다.

MBC 드라마 <인어아가씨>는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방영된 한국 막장 드라마의 '시초'이자 '지존'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임성한 작가의 초기 대표작으로, 일일 드라마 사상 전례 없는 파격적인 복수 서사를 선보였다
《청춘의 덫》은 김수현 작가의 대표작으로, 배신한 연인에 대한 복수와 용서를 그린 대한민국 드라마사의 전설적인 작품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은 파격적인 전개와 강렬한 캐릭터 설정으로 인해 흔히 '피카레스크(악인이 주인공인 작품)' 혹은 현실적인 '막장' 드라마라는 평을 듣는다.

Ⅲ. 감정의 사회학
― 막장의 구조적 욕망

막장 드라마의 핵심은 '과잉된 감정'이다. 그러나 그 감정은 단순히 자극이 아니다. 감정사회학적으로 보면, 그것은 억눌린 감정의 사회적 배출구이자 구조적 욕망의 표출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사회를 '상징적 투쟁의 장'이라 보았다. 드라마의 감정은 바로 이 투쟁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현실의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분노하지만, 직접적으로 권력에 저항하기보다는 드라마 속 대리적 복수로 감정을 해소한다. 따라서 막장 드라마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의 안전밸브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감정의 표현을 통제해 왔다. 분노는 무례, 슬픔은 약함, 질투는 비도덕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막장 드라마는 바로 그 금지된 감정들을 공적 감정으로 승인한다. "울고, 소리치고, 때리고, 복수하는" 장면들이 반복되지만, 시청자는 그것을 '비도덕'이 아니라 '솔직함'으로 인식한다. 그것이 막장의 감정 정치학이다 ― 감정의 폭로가 곧 정의의 실현으로 여겨지는 구조.

감정이 곧 정의가 되는 사회에서, 도덕은 더 이상 기준이 아니다. 시청자는 누가 옳은가보다, 누가 더 '진심으로 분노하는가'에 반응한다. 막장 드라마는 이 감정 중심적 정의관을 시각화한다. 예를 들어, 《청춘의 덫》에서 서윤의 눈물은 도덕적 설교보다 더 강력한 도덕적 힘을 가진다. 그 눈물은 도덕이 무너진 사회에서 감정이 마지막 정의임을 상징한다.

이러한 감정의 구조는 한국 사회의 불의에 대한 정서적 합의와 연결된다.사람들은 더 이상 제도적 정의를 믿지 않는다.그래서 막장 드라마는 '법의 정의'가 아닌 '감정의 정의'를 복원하는 가상의 공간이 된다. 즉, 막장은 정의의 붕괴 이후 등장한 감정 민주주의의 상징 장르다.

Ⅳ. 젠더와 권력
― 악녀에서 생존자로

막장 드라마의 인물 구조를 보면, 여성은 항상 중심에 있다. 그러나 그 여성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녀는 때로 복수자이며, 때로 악녀이며, 때로 생존자다.

1970~80년대 멜로드라마의 여성은 가족의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적 존재였다. '희생하는 어머니'와 '순결한 딸'은 국가가 원하는 여성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사회의 구조적 변화 ― 여성의 경제 참여, 교육 수준 향상, 이혼 증가 ― 는 이 도식을 무너뜨렸다. 여성은 더 이상 가족의 윤리를 지키는 존재가 아니라, 그 윤리의 모순을 폭로하는 존재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악녀 서사'가 등장한다. 《내 남자의 여자》(2007)의 혜린(김희애)은 불륜의 당사자이지만, 그의 욕망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가부장적 도덕의 폭력에 대한 반격으로 해석된다. 막장 드라마의 악녀는 사회가 금지한 욕망의 화신이며, 동시에 그 사회의 위선을 드러내는 장치다. 시청자는 그녀를 비난하면서도, 그녀를 통해 억눌린 자신을 본다. 이중 감정 ― 경멸과 동경 ― 은 막장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감정 회로다.

OTT 시대의 여성 서사는 한층 복잡해졌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은 학폭 피해자이자 복수의 설계자다. 그녀는 더 이상 수동적 피해자가 아니라, 감정의 기술자다. 그녀의 복수는 감정의 정당화와 윤리의 붕괴 사이를 오간다. 시청자는 그녀의 폭력을 '도덕적으로 모호하지만 정서적으로 정의롭다'고 느낀다.
이 감정의 역설이 바로 젠더 정치의 감정화다.

막장 드라마의 여성 주체는 이렇게 세 단계로 진화했다.

희생자 (1970~1980년대): 도덕의 수호자이자 가족의 윤리적 중심
악녀 (1990~2000년대): 금지된 욕망의 화신, 규범 파괴자
복수자/생존자 (2010~2020년대): 시스템 안에서 감정을 무기로 사용하는 전략적 행위자

이 변화는 한국 사회의 젠더 질서가 완전히 해체된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감정 규율의 탄생을 의미한다.여성은 여전히 도덕적 책임의 중심에 놓이지만 이제는 감정적으로 '강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즉, 막장 드라마의 여성은 자유로워졌지만, 동시에 감정의 노예가 되었다.

Ⅴ. 가족의 파국
― '정상성'의 신화와 도덕의 붕괴

막장 드라마의 거의 모든 갈등은 가족으로 귀결된다. 출생의 비밀, 불륜, 상속, 입양, 유산 분쟁 ― 모두 가족 내부의 문제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드라마는 여전히 가족을 무대로 삼을까? 그 이유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가족을 도덕의 마지막 보루이자 통제의 장치로 믿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의 가족은 단순한 사적 단위가 아니라 국가의 축소판이었다. 산업화 시대의 가족은 남성 가장 중심의 경제 단위였고, 여성은 그 구조를 지탱하는 정서적 노동자였다. 드라마는 이 구조를 시각화했다. 《전원일기》의 순길이 어머니나 《사랑과 진실》의 여주인공은 '감정의 돌봄'을 통해 사회 질서를 재생산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가족은 더 이상 안정의 상징이 아니다. 이혼, 재혼, 비혼, 동거, 입양 등의 형태가 등장하면서 가족은 불안정한 제도로 전락했다. 막장 드라마는 이 위기의 가족을 '감정의 전쟁터'로 만들었다.

출생의 비밀은 단지 서사적 장치가 아니라, 혈연 중심 가족 이데올로기의 붕괴를 상징하는 메타포다. "부모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곧 "도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치환된다.

2010년대 이후의 막장은 이 가족 이데올로기를 아예 '놀이'의 대상으로 삼았다. 《왔다 장보리》에서, 주인공은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며 새로운 가족 질서를 만든다. 그 과정은 혼란스럽지만, 결국 '정상 가족'의 복원을 통해 마무리된다. 즉, 막장 드라마는 가족의 해체를 다루지만, 그 끝은 언제나 '가족의 회복'이라는 도덕적 결말로 수렴된다. 이것이 막장이 가진 보수적 안정 기능이다. 파괴를 반복하지만, 그 파괴는 결국 체제를 유지시킨다.

OTT 시대의 막장은 이 점에서 다르다. 《마스크걸》의 김모미는 가정폭력, 외모 차별, 사회적 모멸 속에서 가족을 끊어내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다. 그녀에게 가족은 보호막이 아니라 족쇄다. 그녀의 파괴적 선택은 가족 제도의 실패를 증명한다. 이제 막장 드라마는 더 이상 가족의 회복이 아니라, 가족 이후의 감정 정치를 다룬다.

가족의 파국은 사회의 파국이다. 가족이 감정적 돌봄의 단위로 기능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감정을 드라마 속에서 소비한다. 즉, 막장 드라마는 감정 돌봄의 외주화 시스템이다. 현실에서 돌봄이 사라진 자리를, 서사가 대신 채우고 있는 것이다.

소결 ― 감정, 젠더, 가족의 삼각 구조

감정이 사회를 대신하고, 젠더가 감정을 매개하며, 가족이 그 감정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한다. 이 세 요소가 얽히며 막장 드라마는 한국 사회의 감정 질서의 축소판이 된다.

감정은 정의의 대체물이다.
젠더는 그 감정의 윤리를 결정한다.
가족은 그 윤리를 제도화한다.

막장 드라마의 인기는 바로 이 세 축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완결성에 있다. 현실에서는 정의가 작동하지 않고, 여성은 여전히 억압받으며, 가족은 불안하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는 감정이 폭발하고, 여성이 복수하며, 가족이 정리된다. 그 순간만큼은 사회가 '감정적으로라도' 정상화된다. 그것이 막장 드라마가 한국 사회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Ⅵ. OTT 시대의 막장
― 감정의 알고리즘과 자본의 감시

막장 드라마의 서사는 OTT 시대에 들어 감정의 알고리즘화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과거의 막장이 작가의 상상력과 시청률 경쟁의 산물이었다면, 이제는 데이터 기반의 시청 패턴이 서사의 방향을 규정한다. 감정은 창작의 재료가 아니라 계산의 변수가 된 것이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등의 OTT 플랫폼은 사용자의 감정 반응을 정교하게 추적한다. 시청자의 시선이 머문 시간, 일시정지 구간, 이탈 시점, 그리고 추천 알고리즘의 클릭률 ―이 모든 것이 감정의 데이터로 저장된다. 이 데이터는 플랫폼이 어떤 서사적 감정 구조가 '소비에 효율적인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결국 OTT 막장은 '감정의 상품화'를 넘어 '감정의 설계화'로 진화했다. <더 글로리>의 복수 서사나 <마스크걸>의 폭력과 수치의 서사는 단순한 사회비판이 아니라, 데이터로 검증된 감정의 반복 패턴이다. 시청자는 그 감정의 회로 속에서 분노하고 위로받으며 다시 클릭한다. 이 과정은 일종의 감정 피드백 루프다. 알고리즘은 시청자의 분노를 증폭시키며, 그 분노를 다시 자본화한다.

이는 아를리 호크실드의 개념으로 보자면 '감정노동(emotional labour)'의 대중화된 형태다. 시청자는 자신의 감정을 드라마를 통해 표출하면서 동시에 '노동'한다. 감정을 소비할수록 플랫폼은 더 많은 데이터를 얻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감정 자극을 설계한다. 즉, 시청자는 감정의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며, 막장 드라마는 그 감정경제의 순환 엔진이다.

OTT의 막장은 지상파 시절의 '과잉 멜로드라마'와 달리 정제된 이미지와 절제된 리듬으로 감정을 포장한다. <더 글로리>는 폭발적 분노 대신 냉정한 계산의 복수, <마스크걸>은 선정적 서사 대신 내면의 불안과 사회적 모멸을 그린다. 감정은 여전히 폭력적이지만, 표현 방식은 세련되다. 그 세련됨이 바로 플랫폼이 요구하는 '글로벌 감정 상품'의 조건이다.

드라마 <왔다! 장보리>의 메인 악역인 연민정(이유리 분)은 한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악녀 캐릭터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의 등장인물인 최혜정(차주영 분)은 주인공 문동은을 괴롭혔던 학교 폭력 가해자 5인방 중 한 명입니다.

Ⅶ. 글로벌 막장의 수출
― 불의의 세계화와 감정의 보편성

한때 '막장'은 한국만의 문화적 코드였다. 그러나 OTT 시대에 들어 막장은 전 지구적 감정 상품으로 재탄생했다. <더 글로리>는 비영어권 드라마로서는 드물게 넷플릭스 월드 랭킹 1위를 차지했고, <마스크걸> 또한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높은 반응을 얻었다. 그 이유는 이 작품들이 '한국적 특수성'을 강조하기보다, 불평등과 복수라는 보편 감정의 회로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막장 드라마가 해외 시청자에게도 통하는 이유는 그 감정이 '도덕'보다 '공감'을 중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불의에 대한 분노, 사회적 모멸, 복수의 카타르시스 ― 이 감정들은 언어나 문화의 경계를 넘는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계급과 젠더, 권력의 불균형은 보편적 경험이 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막장은 세계 자본주의 사회의 불의한 감정 구조를 가장 정확히 시각화한 장르가 되었다.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 막장은 '글로벌 감정 패턴'의 핵심 축으로 편입되었다. 이는 단순히 한국 드라마의 수출이 아니라, 글로벌 감정 자본주의의 데이터 네트워크 안으로의 흡수다. 이제 막장은 'K-콘텐츠'의 한 분류가 아니라, 전 세계의 '감정 상품 데이터베이스'의 일부가 되었다.

이 과정은 문화적으로는 '감정의 식민화'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분노가 글로벌 시청자의 오락으로 소비될 때, 그 감정은 비판의 힘을 잃고 상품으로 전락한다. 한국의 현실은 글로벌 감정경제의 원자재가 된다. 막장 드라마는 한국 사회의 불의와 분노를 세계 시장에서 유통하는 감정 자본주의의 수출품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막장 드라마는 글로벌 시청자에게 감정적 연대의 가능성을 열기도 한다. <더 글로리>를 본 해외 시청자들이  "이건 우리 사회 이야기"라고 말할 때, 그것은 막장이 '한국적 특수성'을 넘어 '불의한 시스템에 대한 보편적 감정 언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막장은 국가를 초월한 불의의 감정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그 보편성이야말로 막장이 가진 가장 역설적인 힘이다.

Ⅷ. 결론
― 막장은 시스템이다, 감정의 구조이자 사회의 언어

막장 드라마는 더 이상 단순한 TV 오락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감정 구조,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의 감정경제를 가장 솔직하고 정확하게 드러내는 거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막장은
① 1970~80년대의 가족주의 멜로드라마에서 출발해
② 1990년대 민주화 이후 욕망의 해방을 거치고
③ 2000년대 경제위기 속 복수 서사로 형성되며
④ 2010년대 시청률 중심 산업 구조에서 확고히 자리 잡았고
⑤ 2020년대 플랫폼 자본주의와 함께 감정의 알고리즘으로 전환되었다.

이 다섯 단계를 거치며 막장은 도덕의 언어에서 감정의 언어로, 서사의 장르에서 시스템의 구조로 변모했다.

막장은 '끝장 난 이야기'가 아니라, 끝이 반복되는 사회의 감정 메커니즘이다. 정의가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감정으로 정의를 대체하고, 플랫폼은 그 감정을 수익으로 전환한다. 그 순환이 바로 현대 한국 사회의 정동 정치학이다. 이 구조 속에서 시청자는 냉소와 위로를 동시에 느낀다. "이건 너무 막장이야"라고 말하면서도, 그 막장에서 잠시나마 정의의 환상을 경험한다. 그 환상은 비판적 사유를 마비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버티게 하는 최소한의 감정적 장치이기도 하다.

막장은 도덕의 폐허 위에서 살아남은 감정의 언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웃고 울고 분노하며, 불완전한 세상에서 감정으로라도 균형을 되찾으려 한다. 그렇기에 막장은 사회의 쓰레기가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가 스스로를 진단하는 감정적 언어체계다.

결국 묻게 된다. 우리가 막장을 소비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막장 속 세상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막장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다. 그것은 감정으로 작동하는 불의한 사회의 자기초상이며, 그 불완전한 거울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본다.


작성일: 2025년 12월 10

필자: 박미숙

박미숙은 한국 대중문화와 플랫폼 시대를 연구하는 독립 문화연구자이다.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대중문화에 대해 공부했다. 그의 연구 관심은  초국적성, 텔레비전 드라마, OTT 시대의 한류와 플랫폼 제국주의, AI와 대중문화의 교차 지점에 놓여 있다. 또한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집단기억 연구,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등 글로벌 OTT 콘텐츠 분석, 그리고 인공지능 기술이 문화 생산과 소비, 팬덤, 저작권 개념을 어떻게 재편하는가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의 글은 온라인 비평 매체에도 발표되며, 비평적 시선으로 드라마, 예능, 플랫폼 산업을 분석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현재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연구와 집필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