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팔리는 콘텐츠를 넘어서: 새 정부의 한류 정책이 담아야 할 철학과 비전

이제 새 정부는 단기적 수출 성과나 산업 수치에만 매몰된 한류 정책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한류는 더 이상 ‘팔리는 콘텐츠’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Bluedot Admin

배기형 | 한국방송공사(KBS) 프로듀서

한류 정책은 단순히 K-콘텐츠의 해외 수출을 촉진하는 산업 진흥 방안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세계와 소통하는 가장 역동적인 문화 언어이며, 기술의 진보와 사회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있는 복합적이고 전략적인 문화 기획이다. 이제 대선을 치르며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키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류 정책의 철학과 방향을 다시 점검하고 근본적인 전환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향후 5년, 아니 한 세대에 걸쳐 대한민국의 문화 정책이 어떤 기반 위에 세워질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특정 정치적 입장이나 진영 논리에 근거한 제안이 아니다. 오히려 정책 설계의 초기 단계에서야말로,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 비전, 정권의 과시보다 문화의 지속 가능성과 철학에 주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존 정책 수단의 단순한 재배치가 아니라, 한류 정책을 움직이는 ‘철학의 전환’이다. 우리는 산업 중심에서 문화 중심으로, 기술 환경을 도구가 아니라 동력으로 인식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콘텐츠 중심에서 수용자의 맥락에 기반을 둔 콘텍스트 중심으로의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새 정부가 한류를 단순한 국가 경쟁력의 수단이나 국가 홍보의 도구로만 접근하지 않고, 한류 정책을 양적 성장 중심에서 질적 의미 중심으로, 나아가 세계 시민들과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문화 전략과 철학으로 재정립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그 미래를 한층 더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바로 그 방향을 함께 모색하고자 하는 성찰과 상상력에서 출발하였다.

Go Culture First

많은 경우, 정부의 한류 정책은 곧 ‘K-콘텐츠 산업 진흥 정책’으로 등치되어왔다. 제작 지원, 콘텐츠 수출 확대, 마켓 참가, 제작 인력 양성 등은 분명 필요하고 유의미한 정책이다. 그러나 한류는 단지 산업 영역에 머무는 현상이 아니다. 산업이 다루는 것은 시장이고, 한류가 품어야 할 것은 ‘세계 시민과의 문화적 소통’이다. 따라서 한류 정책은 K-콘텐츠 산업 정책과는 명확히 구별되는 비전과 논리, 그리고 철학을 가져야 한다. 산업은 수요에 반응하지만, 문화는 방향을 제시한다. 콘텐츠 산업이 성장을 위한 도구를 고민한다면, 한류 정책은 지속 가능성과 문화적 가치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동안 케이팝과 K-드라마의 세계적인 호명은 물론 의미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너머를 봐야 한다. 한류는 단순히 '잘 팔리는 콘텐츠'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감수성, 삶의 방식이 전 세계의 수용자들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보여주는 문화적 파동이자 풍경이다. 한류는 대한민국이 세계와 나누는 문화적 언어이자 정경이다. 정책은 산업적 경쟁력만을 목표로 삼기보다, 한국 문화의 정체성과 다양성이 어떻게 세계 속에서 이해되고 공감받을 수 있는지, 그 틀을 먼저 세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한류 정책’의 출발점이다.

지금 우리가 세워야 할 정책적 방향은 명확하다. Go Culture First! — 문화가 산업보다 먼저 가야 한다는 원칙이다. 문화는 단순히 ‘잘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삶의 방식이자, 시대가 품은 메시지이며, 우리가 공유하는 철학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산업적 성과만을 앞세우는 전략으로는 더 이상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산업으로서의 콘텐츠’가 아니라, ‘문화로서의 콘텐츠’다. 이것은 숫자나 트렌드로 치환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고유한 정서와 기억, 그리고 내면의 이야기들을 품은 콘텐츠다. 한국의 청년들이 느끼는 막막한 불안, 일상의 균열 속에서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공동체의 온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깃든 정서와 책임감, 그리고 광장에서 타오른 촛불이 남긴 잔열까지—이 모든 감정은 오늘의 콘텐츠 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 내란의 어둠 속에서 민주주의의 울타리는 무력해 보였지만, 시민들의 저항과 연대는 무너진 자리를 다시 희망을 세워올렸으며 이것은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하나의 약속으로 되살아났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체험하고 축적해온 민주주의 회복력이자 공동체의 저력이다.

이제 콘텐츠는 이러한 시대적 감정과 사회적 사유, 그리고 우리가 체화해온 가치들을 담아내야 한다. 단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분단의 경계에서 통일을 꿈꾸며 살아온 이들의 복합적인 정서, 다양성과 생명, 공존과 돌봄이라는 가치를 함께 품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세계의 수용자들은 한국 콘텐츠를 통해 이 땅의 마음결에 다가올 수 있으며, 그 속에서 보편적인 삶의 진실 또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진정한 방식이며, 한국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김구 선생이 말한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는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비전이다. 문화는 단지 경제적 성과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가치, 인격, 태도를 세계에 드러내는 정체성의 근간이다. 오늘날 전 세계가 정체성의 혼란과 사회적 단절을 겪고 있는 이 시기에, 문화의 깊이가 국가의 품격을 결정짓는 시대가 되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새 정부의 한류 정책은 ‘문화 우선주의’를 그 철학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것은 K-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우리의 창의성을 보호하고, 시장의 수요에만 휘둘리지 않도록 버팀목을 제공하며, 수출 실적을 넘어 문화적 의미와 지속 가능성을 설계하는 일이다. ‘Go Culture First’는 막연히 문화가 중요하다는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철학과 배경, 가치와 감정의 층위를 정책의 중심에 두겠다는 다짐이다. 문화 강국은 무기나 자본이 아닌, 정신과 태도로 세계와 소통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수치와 실적 중심의 콘텐츠 지원을 넘어, 한국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을 온전히 담아내는 정체성 기반 정책이야말로 진정한 한류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한류는 결국 ‘팔리는 것’이 아니라 ‘공감되는 것’이 되어야 한다

Go AI & Tech

‘설계되지 않은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파동을 일으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문화가 디지털화되고 연결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며, 그 이면에는 한류 콘텐츠가 변화하는 기술 환경을 기민하게 타고 올라타며 확산의 동력을 확보했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플랫폼의 진화와 알고리즘 기반 유통 구조, 그리고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수용자 참여의 확대는 한류가 국경을 넘어 파급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이었다.

K-드라마는 글로벌 OTT 플랫폼이라는 디지털 레일 위에서 언어의 장벽을 넘어 실시간으로 향유되었고, 케이팝은 유튜브 알고리즘이라는 엔진을 타고 국경을 초월한 팬덤을 형성했다. 콘텐츠는 이제 디지털 플랫폼, 알고리즘, 빅데이터, AI 기술과 긴밀하게 결합되며, 그 유통과 소비 방식 자체가 기술적 환경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다. ‘K’의 확장도 마찬가지다.

K-뷰티는 쇼츠와 틱톡을 통해 바이럴되고, K-패션은 인스타그램 릴스와 스냅챗을 통해 글로벌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과 연결된다. K-푸드는 푸드 앱과 인플루언서 콘텐츠를 통해 전 세계 식문화 트렌드를 선도한다. 이렇듯이 기술은 더 이상 한류 확산의 보조 수단이 아니다. 기술은 콘텐츠의 기획에서부터 제작, 유통, 소비, 확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며, 그 구조와 감각, 도달 범위와 해석 방식을 결정짓는 핵심 인프라다. K-드라마가 글로벌 OTT를 통해 실시간 다국어 스트리밍되고, 팬덤이 만든 2차 창작물이 자동 태깅되어 더 넓은 세계로 퍼져 나가는 구조는 AI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심지어 K-팝 팬덤은 자체적으로 앱 기반 플랫폼을 활용해 실시간 소통과 디지털 굿즈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한류 정책 역시 AI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생태계 혁신과 플랫폼 전략으로 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정책은 현실을 따라잡고 있는가? 문제는 현재의 한류 정책이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은 여전히 콘텐츠 제작과 유통 지원에 머물고 있으며, 기술 기반 콘텐츠에 대한 이해와 준비는 부족하다. 새로운 '경험의 장(場)'이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서 등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대부분 민간에서 분산적으로 시도되고 있을 뿐, 공공 정책이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는 미비하다. 이제는 기술을 단지 ‘도구’나 ‘부가 요소’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AI와 기술은 콘텐츠 생태계를 구성하는 '플랫폼'이며,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기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전략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미래 한류 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성공은 어디에서 비롯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생태계 안에서 그것이 유지되고 확장될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은 명확하다. Go AI & Tech!

기술은 수단이 아니라 생태계다. 콘텐츠는 이제 기술과 결합되어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있다. ‘Go AI & Tech’는 단순한 디지털 전환을 넘어, 인간의 창의성을 확장하고 문화의 다양성과 접근성을 높이며, 세계와의 접점을 넓히는 전략이다. 기술은 문화의 경계를 허물고, 문화 간 간극을 좁히는 다리다. 새 정부는 이제 기술을 한류 정책의 부차적 수단이 아닌, 중심 플랫폼으로 설정해야 한다. 기술 기반 생태계 없이는 미래의 한류도 없다. 이제 콘텐츠는 기술과 함께 진화해야 하며, 기술은 콘텐츠가 전 세계로 도달하는 방식을 정의한다. 기술은 산업을 넘어 문화를 품고 확산시키는 힘이다.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한다면, 그 출발점은 기술 기반 생태계의 전환이어야 한다.

전 세계의 팬과 커뮤니티가 각자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한국 콘텐츠를 발견하고, 해석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재창조하며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한류는, 전 지구적 문화 현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K-드라마가 글로벌 OTT를 통해 실시간 다국어 스트리밍되고, 팬덤이 만든 2차 창작물이 자동 태깅되어 더 넓은 세계로 퍼져 나가는 구조는 AI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수용자들이 K-콘텐츠를 통해 한국 사회의 정서, 태도, 갈등과 치유의 방식을 이해하고 때로는 비판하며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곧 한류의 문화적 힘이다.

Go Global Context

한류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결정적 이유는 단지 콘텐츠의 품질 때문만은 아니다. 진정한 동력은 수용자에게 있었다. 전 세계의 팬과 커뮤니티가 각자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한국 콘텐츠를 발견하고, 해석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재창조하며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한류는, 전 지구적 문화 현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한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Go Global Context! 이것은 단순히 K- 콘텐츠 수출을 넘어, 전 세계 시민과의 문화적 공존을 추구하는 정책 철학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콘텐츠’를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용자의 문화적 배경, 해석의 방식, 감수성을 존중하는 ‘콘텍스트 중심의 전략’이다. 한류의 주체는 세계의 수용자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K-콘텐츠를 소비하는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해석하고 전파하는 능동적 향유자들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K-컬처는 글로벌한 문화 현상이 되었다. 정책도 이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이제는 ‘더 많은 콘텐츠’가 아니라, ‘왜 사람들이 그것을 사랑하는가’, ‘무엇이 공감을 일으키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한류 정책은 수용자 중심을 넘어서, 수용자의 문화적 맥락과 삶의 언어를 함께 읽어내는 ‘콘텍스트 기반 전략’으로 진화해야 한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수용자들이 K-콘텐츠를 통해 한국 사회의 정서, 태도, 갈등과 치유의 방식을 이해하고 때로는 비판하며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곧 한류의 문화적 힘이다. 이처럼 콘텐츠가 전 세계인의 삶 속으로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단순한 이야기의 소비를 넘어, 삶과 정체성, 공감의 장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콘텐츠의 성공을 논할 때, 늘 그 ‘맥락(context)’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콘텐츠는 빠르게 유통되지만, 진정한 힘은 그것이 어떤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는가에 달려 있다. 콘텐츠는 유통되지만, 콘텍스트는 공감된다.

이를 위해선 ‘콘텐츠’만의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팬덤 참여 플랫폼, 공동 기획 프로그램, 문화 해석과 공유 프로그램 등 수용자와 함께 호흡하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한류는 이제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한류 정책은 K-콘텐츠를 해외에 수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콘텐츠 수출국’에서 ‘콘텍스트 공유국’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은 K-컬처가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시민과 공감하며 함께 성장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류의 미래는 ‘콘텐츠(content)’보다 더 넓고 더 깊은 ‘콘텍스트(context)’에 달려있다. 케이팝, K-드라마, K-무비의 장르별 성공을 넘어서, 그것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생산되고, 어떻게 해석되며, 세계 수용자들에게 어떤 문화적 의미를 전달하는지를 함께 읽어내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은 글로벌 팬덤의 성장, 문화 다양성의 존중, 사회적 책임, 윤리적 생산 구조 등 동시대적 가치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Go Global Context’는 단순한 정책 구호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문화로서 세계와 깊이 소통하기 위해서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연결되는 것이다.

‘3 Go’ 한류 정책의 변곡점

이제 새 정부는 단기적 수출 성과나 산업 수치에만 매몰된 한류 정책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한류는 더 이상 ‘팔리는 콘텐츠’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오늘날 전 세계 팬들과 수용자들이 한국 콘텐츠를 통해 공감하고, 토론하며, 자신의 삶과 연결짓는 것은 단지 상업적 히트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삶의 감정과 시대의 맥락, 문화적 정체성 때문이다.

‘문화 우선주의(Go Culture First)’, 기술을 통한 생태계 확장(Go AI & Tech), 세계와의 콘텍스트 공감(Go Global Context) — 이 세 가지 명제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다. 이는 그동안의 정부 주도형 산업지원 모델이 놓쳤던, 그리고 앞으로의 글로벌 문화 환경 속에서 반드시 반영해야 할 정책의 철학적 기반이자 전략적 비전이다.

우리가 이 세 가지 원칙을 정책에 담아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문화 우선주의’는 K-콘텐츠의 진정한 가치를 만들어낸다. 콘텐츠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을’ 이야기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겪어온 역사, 공동체적 정서, 청년의 불안, 자본주의와 물신주의의 폐해, 상실의 기억, 촛불의 희망, 민주주의의 회복력 등은 글로벌 팬들에게도 깊은 감정적 울림을 준다. 콘텐츠는 결국 삶의 이야기이며, 문화는 그 삶을 관통하는 보편적 정서의 언어다.

둘째, ‘기술 생태계 기반 전략’은 콘텐츠의 확산력과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동력이다. 오늘날 콘텐츠는 기술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세계로 뻗어갈 수 없다. 단지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콘텐츠가 어떻게 유통되고, 어떤 경로를 통해 소비되며, 누구에게 도달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기술 기반 생태계다. 한류는 넷플릭스, 유튜브, 틱톡 등의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의 접근성을 확장해왔지만, 그 의존 구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국내 OTT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와 새로운 유통 모델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다. AI 기술, 메타데이터 체계, 디지털 팬덤 플랫폼, 창작자-수용자 간 엔터 테크 등 기술 기반 콘텐츠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절실하다. 이제 기술은 문화의 전달 구조를 다시 짜는 한류 생태계의 중추다.

셋째, ‘글로벌 콘텍스트 전략’은 수용자와의 진정한 ‘관계 만들기’를 가능하게 한다. 세계 시민은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그들은 향유자, 해석자이며 창조자이고, 콘텐츠를 통해 자신들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동반자다. 우리가 콘텐츠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문화적 감각을 공유하고 언어를 나누며 가치와 맥락을 함께 읽어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철학이 정책으로 구체화되기 위한 결정적인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새 정부는 한류와 K-콘텐츠를 ‘산업’의 프레임이 아니라, ‘국가 문화 전략의 중심축’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이 전환은 단지 새 정부의 홍보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앞으로 문화 강국으로 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우리는 이제 한류를 통해 단순히 세계에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함께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K-컬처는 전 세계의 ‘문화 공공재’로 자리잡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선 콘텐츠의 양이 아니라 깊이가, 수출의 숫자가 아니라 공감의 밀도가 중요하다.

“문화의 힘이 강한 나라”란 단순히 문화산업이 발달한 나라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문화를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중심 가치로 삼는 나라, 문화적 상상력과 공감 능력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나라를 뜻한다. 오늘날 한류는 그런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서 가장 강력한 동력이며, 우리가 세계와 함께 나누는 새로운 언어이자 감성이다. 이제 그 담대한 철학을 실천으로 옮길 시간이다.(끝)


작성일: 2025년 5월 16일

글쓴이 배기형은 KBS에서 <TV는 사랑을 싣고> 등 다수의 교양 및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한 PD다. KBS 국제협력실장과 에미상 등 다수의 국제상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KBS 콘텐츠와 채널의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국제문화교류와 한류 콘텐츠 전문가로서 주요 국제포럼과 해외 대학에서 수십차례 마스터클라스 진행했다. 문화콘텐츠학 박사다.